최근 외국인 선수들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 12일 FC서울과 경남FC의 경기에서 서울 하파엘이 경남 스레텐의 수비를 뚫고 슈팅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FC 서울
# 싸고 좋은 용병은 없다!
요즘 프로축구의 최대 화두는 연봉 공개였다. ‘선수들의 몸값에 끼어있는 거품을 줄여서 유소년 축구 육성과 구단 마케팅 활성화에 사용하자’는 긍정적인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축구연맹의 야심 찬 프로젝트였지만 곳곳에서 불만이 터졌다. 몸값을 아낀다고 해서 확보한 자금을 다른 분야에 투자할 수 없는 현실에 오히려 선수단 재정만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선수단의 살림살이가 빠듯해지면서 구단들은 주저 없이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이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이들이 희망하는 몸값을 구단들은 도저히 맞춰줄 수 없었다. 프로스포츠의 생명은 돈. 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잔류할 이유는 없었다. 구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던 용병들을 내보내야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지난 시즌까지 FC서울에서 뛰며 K리그 정규리그 득점왕 3연패를 달성한 동유럽 특급 스트라이커 데얀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로 둥지를 옮겼다. 전북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왔던 브라질 출신의 측면 공격수 에닝요도 지난해 여름 창춘 야타이로 떠났고, 데얀과 함께 서울의 ‘원투 펀치’로 명성이 자자했던 콜롬비아 골잡이 몰리나는 부상 후유증으로 휴업 중이다.
나가는 선수가 있으면 들어오는 선수가 있어야 하는 게 선순환 구조의 정상적인 축구 시장인데 이 역시 K리그의 현실에서 바랄 수는 없었다. 기존 선수들을 비싼 몸값을 받고 넘긴 뒤 오히려 보다 싼 가격의 외국인 선수들을 찾는 쪽에 주력했다.
당연히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 구단들은 B급 이하의 외국인 선수들을 스카우트해야 했다. K리그는 생각보다 거칠기로 정평이 나 있다. 수비도 단단하고, 대인방어가 타이트해 적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다보니 시행착오가 불 보듯 뻔하다. 자연스레 클럽하우스 훈련장에만 나타나고 정작 실전 그라운드에는 서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하다. 안 쓰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모두 부담스러워졌다.
복수의 에이전트들은 “100만 달러(약 10억 원) 이상의 몸값이 매겨지는 A급 용병들은 요즘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많이 받으면 70만~80만 달러 내외의 급여를 받는 B급 용병들도 극히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축구계와 타 프로 스포츠를 오가며 10년 넘게 활동한 한 유력 에이전트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겨울 선수이적시장이 형성됐을 때 우리 구단들의 주문은 아주 간단했다. 괜찮고 싼 용병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몸값이 싸면서도 실력 좋은 선수는 없다. 몸값은 그 선수의 가치를 증명한다. 많은 돈을 받는다는 건 결국 그만큼 좋은 선수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 거대자본이 움직이는데 우린?
이제 K리그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매력적인 무대가 아니다. 거친 플레이에 다칠 위험이 굉장히 높을 뿐 아니라 몸값 책정 역시 아주 박하다. 반면 중국은 물론, 한동안 정체됐던 일본 J리그는 다시 자금을 풀기 시작했다. 부동산 재벌 구단주의 등장으로 아시아 최고의 클럽이 되기 시작한 광저우 에버그란데, 그 아성을 깨기 위해 또 축구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눈에 들기 위해 축구단 운영에 뛰어드는 재벌들이 많아 본격적인 재건이 이뤄지기 시작한 중국 프로축구의 거센 도전은 두려움을 줄 정도다. 이탈리아 국가대표까지 큰 무리 없이 영입할 정도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동안 경기 침체로 웅크리고 있던 일본의 기세도 굉장히 높다. 한물 간 선수로 취급은 받지만 여전히 명성이 높은 우루과이 특급 공격수 디에고 포를란을 세레소 오사카가 영입한 것처럼 다시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지에서는 아예 외국인 선수들로부터 세금을 떼지 않는다. 많게는 봉급의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떼어가는 유럽 무대 입성이 해당 선수의 명예를 향하는 길이라면, 중동 입성은 곧 부를 보장한다.
A 구단 감독은 “기본적으로 우리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근성과 실력, 잠재력이 아주 우수하지만 그것만으로 프로축구가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선수를 보며 우리 선수들이 깨우치고 배우는 것도 많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준수한 외국인 선수가 많이 안 보인다는 건 그만큼 K리그가 뒤로 밀려간다는 걸 입증한다”고 꼬집었다.
B 구단 감독도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게 프로스포츠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외국인 선수들을 벤치에 썩혀두는 게 좋을 리 있겠는가. 하지만 적응기가 유난히 긴 이들이 많아졌다. 영입 과정에서 코칭스태프보다는 구단 차원의 의지에서 이뤄질 일이 잦다. 3월 한 달을 통째로 건너뛰고, 4월이 한창 지나도록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는 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현장은 현장대로, 구단은 구단대로 답답한 일이라며 한숨을 내쉰다”고 말했다.
물론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과거 K리그에 몸담았던 선수들을 다시 컴백시키는 것이다. 한국에서 좋은 플레이를 하다 큰 돈을 받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다시 되돌아온 외국인 선수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드로겟, 전남 드래곤즈의 스테보 등이 그렇다. 아무래도 이들은 한 번 실패를 겪어서인지 자존심 회복을 위해 더욱 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 용병들의 수급에 매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프로축구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