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고 안상영 부산시장 영결식에 참석한 여야 3당 대표들. 국회사진기자단 | ||
안 시장의 자살이 가져온 여야 간 정치적 득실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한나라당으로선 이번 ‘기회’가 텃밭인 영남에서의 지지율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제동장치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공들여온 ‘PK 공략작전’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안 시장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데 정치권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안 시장 자살과 각 당의 이해득실을 따져봤다.
“이번 사건으로 부산·경남지역(PK) 선거는 끝난 것으로 보면 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안 시장의 죽음이 선거에 미치는 정치적 파급 효과에 대해 이렇게 ‘후한’ 평가를 하고 있다. 이 관계자뿐 아니라 한나라당 지도부도 안 시장 자살을 두고 갖가지 ‘정치적’ 발언들을 쏟아내며 총선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먼저 최병렬 대표는 지난 2월5일 열린 상임운영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은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으로, 협박해서 생긴 일 이상, 이하도 아닌 사건”이라면서 “부산시민이 선택한 민선시장을 무참히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사덕 총무도 “안 시장이 만약 김혁규 전 경남지사처럼 변절했더라면 저런 지경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는 명백히 권력에 의한 살인이자 테러”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안 시장의 죽음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자신들의 텃밭인 PK지역에서의 지지율 회복을 염두에 둔 다분히 정략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올해 1월 중순을 기점으로 대구·경북(TK)과 PK를 제외한 전국에서 열린우리당에 밀려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고향인 김해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지지율 면에서 앞서고 있는 등 PK지역의 경우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런 악조건에서 안 시장의 갑작스런 자살은 한나라당의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PK 공략에 정성을 쏟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역 여론과 배치되는, 실망스런 행동을 많이 보였다. 김혁규 경남지사를 빼가고 김영일 전 사무총장을 구속시키고 안상영 부산시장까지 구속시킨 뒤 자살까지 이르게 하는 등 몹쓸 짓들을 많이 했다”고 전제한 뒤 “안 시장 죽음을 계기로 반 노무현 정서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본다. 또한 흩어졌던 한나라당 지지 세력이 다시 한 곳으로 결집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안 시장 죽음이 PK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노 정서’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 PK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이는 ‘정동영 효과’에 한나라당의 물갈이가 지지부진한 데 대한 반사 이익이 더해져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하지만 PK지역에서는 여전히 ‘반노 정서’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안 시장의 죽음은 이런 ‘반노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 또 다른 노 대통령 비난거리만 제공하면서 양측간의 거리를 더욱 멀게 했다는 것이다.
부산 대현동에 사는 한 시민은 “기어이 노무현이가 사람을 잡았다. 얼마나 사람을 압박했으면 그런 몹쓸 짓을 했겠나”라면서 “김혁규라고 문제가 하나도 없었겠나. 그 사람은 결국 회유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으로 간 것이고 안 시장은 그런 변절을 하지 못한 죄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종하 의원(경남 창원 갑)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PK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안 시장을 죽였다는 얘기가 파다하고 탈당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에 대한 ‘배신자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9월 경남 진해 부산신항 공사현장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생전의 안상영 시장(왼쪽)으로부터 현황 설명을 듣고 있다. |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박창수 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안 시장 죽음 변수에 대한 여론조사는 아직 실시하지 않았다. 약간의 변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이것이 쟁점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유가족들이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도 않고, 현지의 얘기를 들어보면 부산시민들도 이번 사건을 정쟁화시키는 데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현재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낮다고 해서 성급하게 이번 사건을 지지율 반전의 호재로 이용한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안 시장 죽음에 대한 조심스런 반응은 부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먼저 부산의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안 시장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부산시지부 전종민 정책부장은 “많은 사람들이 안 시장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을 정치적인 의도로 이용할 경우 상당한 역풍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경남도지부의 한 관계자도 이에 대해 “일단 PK 민심이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총선이 60여 일이나 남았기 때문에 더 두고 봐야 한다. 총선과 이번 일을 무리하게 연결시키면 오히려 구태 정치로 낙인 찍혀 더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나라당으로선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직접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반노 정서’를 선거 때까지 끌고 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양지’만 좇는 처신과 안 시장의 죽음을 계속 대비시켜 열린우리당에게도 도덕적인 타격을 입힌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이런 ‘네거티브’ 전략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부산 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안 시장 자살 뒤 모 방송국에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번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초원 복국집’ 사건 때처럼 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건이 호재로 작용할 것이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대선자금 수사로 촉발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워낙 광범위하고 뿌리깊게 퍼져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안 시장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전형적인 구태정치인 동시에 ‘짜증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부산민심을 전했다.
사실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 등은 안 시장의 죽음을 노무현 정권의 ‘올인’ 전략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번 총선에서 PK 공략의 일환으로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안 시장 등을 영입하려 했고 그 선택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
또한 당 진상조사단은 “안 시장 자살은 인권침해를 넘어선 공권력에 의한 사법적 살인사건”이라며 “노 대통령은 부산시민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총선 올인’을 중단하고 본분을 지키라”며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당의 총공세를 두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안 시장 자살 뒤 당 지도부가 보인 ‘과잉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족들이 이미 안 시장의 정치적 이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그리고 이미 간 사람은 간 사람인데 그것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하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부산 현지 여론도 당 지도부의 이런 ‘가벼운’ 대응에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계속 덮어씌우기에 발목잡기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반문하면서 “현 지도부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너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 전략적 마인드로 접근하지 못해 문제가 있다”며 최 대표와 당 지도부의 적절치 못한 대응을 꼬집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죽은 제갈공명(안상영 시장)이 산 사마중달(열린우리당)을 잡아 주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혁명적인 물갈이와 당내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