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구 공천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지난 9일 국회 정개특위가 의원 수를 현행 2백73명으로 동결하고 인구 상·하선 10만5천~31만5천명으로 선거구를 조정키로 잠정 합의해 비례대표가 현재보다 10석 정도 줄어들게 된 것이 그 원인. 전국구 상위 순번을 기대하거나 약속 받고 입당한 영입인사들이 다른 당에 비해 많아 이들에 대한 대규모 ‘교통정리’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 총선이 다가오면서 인지도 있는 여성 인사들을 내세우려는 각당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왼쪽부터 지역ㆍ전국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윤선희 위원(우리당), 김강자 전 총경(민주당), 나경원 전 특보(한나라). | ||
애초 전국구 상위 순번이 예상됐던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이나 박영선 대변인, 김현미 총선기획단 부단장 등에 대해서도 당 지도부 일각에서 지역구 출마를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 여성 얼짱’으로 유명한 윤선희 당중앙위원(28)도 당초 전국구 상위 배치가 유력시됐는데 최근엔 광주 남구 지역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들 인사들은 대부분 “지역구 출마에 뜻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역구에 나서 힘든 선거전을 치르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영입된 한 여성계 출신 인사는 “전국구 보장 약속을 (당 지도부가) 어기려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밝힌다. “전국구 보장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지역에) 출마하라니…”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인 전직 고위 관료도 있다.
당내에서도 이들 인사들에 대한 ‘교통정리’ 작업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당의 한 상임중앙위원은 “지역구에 투입돼 당의 정체성을 살려줘야 할 인사들이 이기심 때문에 지역구 출마를 꺼리고 있어 걱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의 경우엔 지지율 회복을 위해 전국구 공천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향수를 자극하는 인사들을 전국구 상위 순번에 배치시킬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일단 ‘탈당 서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복당한 김 전 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의 전국구 상위 배치가 유력시된다.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지만 옥중 출마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해서도 그가 지닌 ‘상징성’을 고려해 전국구 상위 배치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DJ 가신 출신 김옥두 의원에 대해서도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에게 지역구(전남 장흥·영암)를 양보하는 대신 전국구 윗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당 개혁을 주장해온 소장파 인사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정당 이미지 타파’를 위해 ‘호남 물갈이’의 당위성을 역설해온 것이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강자 전 총경처럼 애초 전국구 상위 순번을 약속 받았던 일부 영입인사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최근 지역구 차출론이 나돌고 있는 김 전 총경은 “지역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우리당과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 지도부의 전국구 공천에 대한 고민의 수위는 ‘일단’ 낮아 보인다. 최병렬 대표의 ‘전국구 전원 교체’ 발언 이후 기존 전국구 의원들이 ‘정리’되는 분위기인 반면 전국구 상위 순번을 보장해야 할 정도로 중량감 있는 거물 인사의 영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빈 자리’가 많아진 만큼 막판 ‘혼탁 경쟁’ 양상도 우려된다. 이미 경쟁력 있는 전국구 후보가 넘치는 우리당이나 민주당에 비해 함량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대거 전국구 공천 경쟁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것. 지역 안배를 위한 최 대표의 ‘호남지역 비례대표 3석 배정’ 약속도 지역구 출마 엄두를 못 내던 호남권 인사들이 대거 전국구 공천 경쟁에 뛰어들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한나라당 지도부는 젊은 전문가 집단의 전국구 상위 순번 포진을 고려하고 있다. 최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차떼기’ 정당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젊고 참신한 인사들 위주로 전국구 공천을 하게 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사들이 영입되면 함량 미달의 전국구 후보 난립 위험도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이에 합당한 후보군으로는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대표, 이재웅 다음 사장과 지난 대선 당시 ‘미모의 법조 출신 인사’로 화제가 된 나경원 전 이회창 후보 특보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젊은 인재들이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한나라당의 비례대표직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까’라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자민련의 경우 아직 별다른 전국구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보다 낮은 정당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국구 선호도가 떨어진 탓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의석 수가 정당지지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현 추세대로라면 여러 석의 전국구 의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자민련 의원들은 “김종필 총재가 전국구 1번으로 나서 충청권에 바람을 일으켜줄 것”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걸출한 지역구 후보가 적지만 대신 정당지지도를 끌어올려 10석 이상의 의석 확보를 기대했던 민주노동당은 여야의 ‘전국구 의석 수 축소’ 결정에 분노와 실망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1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여 5명 안팎의 전국구 의원 배출을 자신해 온 민노당에 국회 정개특위안이 찬물을 끼얹은 셈. 민노당은 흥행몰이를 위해 전국구 1순위 지명자에 대한 당내 경선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