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찬씨의 수원 아파트를 찾은 기자에게 부인 강씨는 이번 사건으로 너무 힘들다며 곧 이혼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강씨는 지난 2월19일 오후 수원 자택에서 가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복잡하고 괴롭다”면서 “남편(민경찬씨)과 이혼하겠다”고 털어놨다. 강씨는 “남편 사건이 터진 이후 언론 등으로부터 시달려왔다”고 말했다.
90년대 초반 민씨와 연애 결혼한 강씨는 현재 아들 두 명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강씨의 이 같은 의사에 대해 남편 민씨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강씨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혼 의사가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가족과 상의된 것인지, 아니면 언론을 피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내비친 것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민씨 사건이 불거진 이후 강씨에게 닥친 상황이 어려운 데다 인터뷰 도중 “아이들의 위해서…”이라고 밝힌 점 등을 감안할 때 그의 이혼의사는 확고한 듯했다.
이와 관련해 민씨의 한 주변 인사는 “민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아이를 포함한 가족의 상황이 매우 어려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언론이 가족의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제대로 외출을 못하는 등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며 강씨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러나 이 인사는 “이혼의사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자녀가 셋이나 되는데…”라며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2월19일 민씨 부인 강씨를 만나기 위해 민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수원 영통동 D아파트를 찾아갔다.민씨의 집은 D아파트 7XX동 17XX호였다.
주민들에 따르면 민씨는 이 아파트 2층에서 전세로 살다가 지난해 2월 현재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 아파트의 평수는 50여 평이며, 주변 부동산업소에 확인한 결과 아파트의 시세는 3억5천만∼4억원선이었다.
민씨 부인과의 인터뷰는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외출을 하려던 강씨와 우연히 마주쳤으나 기자임을 확인하고는 “할 말이 없다”며 도로 문을 닫아 버렸다.
이때 강씨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강씨의 친구를 통해 의사가 전달되면서 곧 강씨와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남편(민경찬씨)이 구속됐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한가.
▲너무나 복잡하고 괴롭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그렇다. 입 터지면 할 말 많다. 하지만 민감한 때 아닌가. 애 아빠(민경찬)가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고 당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남편하고는 오늘 통화했다.
―최근 언론보도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잘못된 게 뭐 한두 건 인가. 오늘 한 월간지를 보니 남편이 노무현 대통령을 ‘자형’이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펄쩍 뛸 노릇이다.
─무슨 말인가.
▲애 아빠가 원래 발음이 안 좋다. 사투리가 심하다. 사람들이 정확하게 못 알아듣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남편은 실제 대통령을 ‘사형’이라고 불렀다.
발음이 잘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자형’이라고 불렀다니 이해가 안 간다(<월간조선>은 2004년 3월호 ‘왜 민경찬은 사돈인 노무현 대통령을 자형(姉兄)이라고 불렀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98년 민씨에게 의료사고 소송건 해결을 의뢰한 박아무개씨의 말을 인용, “민씨가 노무현 변호사를 자신의 자형이라고 불렀다”며 민씨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실제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호화생활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는 너무나 놀랐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나. 나는 여태까지 아이들에게 유명 브랜드 옷을 입혀본 적이 없다. 백화점 옷도 사 준 적이 없다. 나 역시도 백화점 옷은 사 입어 본 적이 없다.
한 일간지 기자에게 한 이야기도 기억난다. 나는 그 기자에게 (푸른솔)병원을 운영하다 문제가 생긴 남편이 채무 관계를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 다른 병원을 지으려 했다고 말했더니 다음날 기사에는 남편이 10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해 일을 벌였다는 식으로 나오더라.
▲ 민경찬씨는 현재 성동구치소에 수감중이다. | ||
▲애들이 어리니까 그나마 낫다. 먹고살 만하면 되지 않나. 친정에서 많이 도와준다.
―시어머니도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나.
▲같이 사신다. 이번 일로 충격을 받아 몸이 안 좋아지셨다.
―남편은 어떤가.
▲좋다. 식사도 잘한다.
―혹시 청와대에서 연락이 없었나.
▲뭐 연락 있겠나.
―푸른솔병원 운영과 관련해 피해자가 많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사람일이 계속 꼬이는 걸 어떡하나. 일을 하다 보니 그리된 건데….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그랬다면 용서할 수 없지만 일부러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 않나. 더 이상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 우선 변호사와 애 아빠하고 상의해보고 전화하겠다.
다음날 기자는 강씨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우선 인터뷰를 할 의사가 있는지 재차 확인하려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강씨는 더 이상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편 민씨가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은 듯했다.
―인터뷰에 응할 것인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면 해명해야 될 것이 아닌가.
▲(기사를) 안 써 주는 게 도와주는 거다.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아니다.
―민씨에게 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피해사례가 기사로 나갈 수 있다. 반론을 해야 하지 않은가.
▲들은 그대로 써도 좋다.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 미안하다.
기자는 이날 오후 다시 강씨의 수원 아파트로 찾아갔다. 문 앞에서 집에 연락을 취하자 어린 딸이 전화를 받았다. 딸이 “<일요신문> 기자 전화야”라고 비교적 또렷하게 말했지만 강씨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지 5분쯤 후 강씨와 두툼하게 옷을 차려입은 큰딸과 두 아들이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서 서성이던 기자는 아이들이 나오면서 열어둔 아파트 안을 살폈다. 바깥에서 목격한 민씨 아파트에는 호화스러운 가구나 전자제품 따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 뒤 강씨가 아파트를 나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씨와 짧은 대화가 이뤄졌다.
강씨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청와대 입장 조율 파문과 민경찬펀드 투자자 존재 여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에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강씨는 계속되는 질문에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과 함께 “남편과 이혼하겠다”는 말을 느닷없이 털어놓았다.
―10분만 시간을 달라.
▲녹음기 이젠 지겹지도 않나(기자는 손에 녹음기를 들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찾아오지 마라.
―(녹음기를 끄고) 민 원장이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대해 무슨 말이 없었나. 사실이 아니라고 하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애 아빠하고 이혼할 거다.
이 한마디를 남기고 강씨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말하는 표정이나 단호한 태도 등에 미뤄 중대결심을 한 듯한 모습이었다.
기자는 왜 이혼하는지, 민씨와 상의를 한 것인지에 대해 물었으나 강씨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뒤에도 차를 향해 가는 그를 뒤따르며 질문을 던졌으나 강씨는 “할 이야기 없다. 더 이상 찾아오지 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강씨는 승용차를 타려다 말고 “지금 애 아빠 면회 간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한 뒤 아파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