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내우외환’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사진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의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원내총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지금은 검찰의 대대적인 정치자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당이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표류하고 있는데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원래 최 대표는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는 2월 말에 당 개혁 프로그램과 총선 준비에 관한 모든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 통과 등으로 당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자 소장파 등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기에 이르렀다.
최 대표측은 이런 당 안팎의 비난에 대해 처음에는 “무슨 수습을 하라는 것이냐”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미온적인 대응이 지도부의 무능력으로 비쳐지면서 당의 혼란이 깊어졌고 이에 홍준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위파’들이 대표 권한 강화를 외치며 반격에 나선 상황이다.
최 대표는 ‘퇴진과 전진’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는 자신도 살고 당도 살리는 ‘양득’을 노리고 있다. 그렇지만 최 대표가 ‘양득’을 노리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당 안팎의 경고의 메시지도 적지 않다. 과연 최 대표는 정치일생 최대의 도박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지난 2월12일 밤 최병렬 대표는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자택에서 출입기자들에게 ‘피를 토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소장파들이 ‘소리내어 울면서’ 당을 걱정하고 있다면, 자신은 아무 말이 없어도 속으로 피를 토하며 지내고 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최근 공천 갈등,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 통과, 삼성 불법자금 2백20억원 추가 유입 등 잇단 악재에 당 내외로부터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소장파 리더격인 남경필 의원은 지난 2월15일 “대표가 많이 버리면 버릴수록 리더십은 커진다. 지도부의 자기희생만이 난국 돌파의 지름길”이라며 “최 대표의 결단을 지켜본 뒤 대응할 것”이라고 일전불사의 결의를 밝혔다.
이에 대한 최 대표의 반응은 격렬하다. 그는 “나는 이벤트 정치를 안 하는 사람이고 누가 등을 떠민다고 밀리지도 않는다”며 “내 거취와 당을 결부시킬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최 대표의 측근들도 소장파들의 요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측근 A씨는 “대표의 불출마 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선언해 버리면 더 지도력이 없어지고 힘도 잃게 된다. ‘불출마한다’고 이벤트성으로 한번 발표하면 뭐 하나. 만약 대표가 그렇게 손을 빼버리면 완전히 당이 개판 되는데 누가 수습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소장파들의 대안 없는 공격에 일침을 가했다.
최 대표도 소장파들의 개혁 요구에 ‘사심’이 있다고 판단하며 매우 불쾌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피 토하는 아버지론’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런 시각에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 대표가 ‘피를 토하는 아버지’에 자신을 비유하는 현실인식 자체가 너무 편협하고 안이하다는 것. 소리내어 우는 소장파들의 눈물은 거짓이고 자신만이 한나라당의 현 위기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해결책을 ‘피를 토하며’ 찾고 있는데 그것을 몰라준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 지난해 12월 최 대표는 단식투쟁으로 ‘재신임정국’을 정면돌파했다. | ||
한나라당의 관계자 B씨는 이에 대해 “소장파들이 왜 최 대표를 보고 나가라고 하나. 이런 식으로 하면 자신들도 모두 총선에서 떨어질 것이 뻔하니까 그렇게 떼를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소장파들은 결코 자기희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영악한 사람들인가. 지난 2000년 총선 전에 민주당의 소장파 정동영 신기남 의원 등이 권노갑 고문을 밟고 총선에서 살아남은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소장파들은 지도부 희생을 요구하지만 결코 자기들이 죽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소장파들의 이런 ‘흑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준표 김문수 의원 등 대표의 최측근들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표 권한 강화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는 것.
현재 홍 의원 등 주류들은 내부 조율을 통해 몇 가지 개혁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먼저 젊은 의원들을 대거 내세운 뒤 선거대책위원회를 조기 발족시켜 여기에 당의 권한을 대폭 이양시키는 방안이 있다. 당명 변경, 당직 대폭 개편 등 ‘제2 창당 프로그램’을 전격 가동하는 카드도 고려중이다. 또한 당사를 국가에 현물로 기탁하는 방안과 네티즌 전국구 의원 선출 등 다양한 이벤트성 개혁안들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대 변수는 역시 최 대표의 퇴진 여부다. 사실 여기에 최 대표 개혁안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대표가 자신의 직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대표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안’이 마련된다면 당 내외의 거센 비난을 받을 전망이다. 이 경우 당이 더 깊은 혼란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치권 관계자 C씨는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대표의 총선 불출마나 전국구 후순위 배치는 ‘손 따라 둔 악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조기 전당 대회를 소집해 차기 당권 주자를 총선과 연계해 띄우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최 대표의 입지는 일부 줄어들 수 있지만 오히려 당의 고문으로서 제2선에서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길만이 최 대표가 살고 한나라당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D씨는 당 쇄신론과 관련해 “지금 당장 당사를 비우고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말로만 개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총선 이후 지도부를 50세 이하로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지금부터 그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 또한 서청원 전 대표 측근 등 당 노선에 반기를 드는 비주류들에게 당에서 나가도록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과연 그가 희생해야 죽어 가는 한나라당을 살릴 수 있고 그 자신도 다시 살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에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