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관심의 대상이었던 강금실 법무장관이 장관직에서 사퇴하지 않아 지역구 출마가 불가능해졌으며 얼마 전 사퇴한 문재인 전 민정수석도 출마에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어 ‘올인’ 전략의 김이 다소 빠졌다는 평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 정부 관료 출신 인사들은 총선 현장에서 각기 상대 정파 거물급 인사들을 상대하거나 지역구도 극복의 선봉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인사들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승부를 펼치느냐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입지가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적표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지역구 출마가 확실해진 ‘징발 인사’들의 총선 경쟁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역 정가의 평가와 각 정당 및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이들의 ‘전력’을 가늠해 본다.
- 1.수도권 ‘모 아니면 도’
현 구도대로라면 ‘징발 인사’들 가운데 수도권에 나서는 인사들은 대부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지명도가 높은 의원들과 맞상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좋은 성과를 낼 경우 상대 정파에 치명타를 입히며 열린우리당의 제1당 등극 가능성을 높이겠지만 반대로 ‘몰패’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당 안팎에서 ‘모 아니면 도’라는 소릴 듣는다.
정부 관료 출신들 중 총선 대열에 막차로 합류한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과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여권에서 ‘대어를 잡아줄’ 희망으로 떠올랐던 인물. 한 전 장관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강남 갑이나 박진 전 대변인의 종로 지역구 출마를 권유 받았으며, 김 전 부총리는 한나라당 소장파 리더인 남경필 의원의 지역구인 수원 팔달 출마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보가 애초 당에서 구상한 밑그림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한 전 장관은 최근 경기 일산 지역 출마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동영 의장의 한 측근인사는 “한 전 장관이 전략지역인 종로나 강남에 출마해주길 바랐지만 본인이 고사해 일산 지역 출마로 일단락됐다”고 밝혔다.
일산 지역은 지난 16대 총선 때 민주당이 강세를 나타냈던 곳. 공교롭게도 해당 지역구 의원인 우리당 김덕배 의원(고양시 일산 을)과 민주당 정범구 의원(고양시 일산 갑)이 모두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어 한 전 장관으로선 다소 부담을 던 상태다.
김 전 부총리도 수원 지역 출마 방침만 정했을 뿐 아직 구체적으로 지역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수원 지역 사정에 밝은 언론인들은 “노무현 정부 경제 실정 책임론의 중심에 있는 김 전 부총리보다 선친(남평우 전 의원) 대부터 기반이 탄탄한 남경필 의원이 우세해 보인다. 김 전 부총리가 팔달구에 나서는 데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평한다.
그런가 하면 스스럼없이 ‘강적’과의 한판을 선언한 경우도 적지 않다. 유인태 전 정무수석은 민주당 설훈 의원이 버티고 있는 서울 도봉 을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고, 권선택 전 인사비서관은 대전 중 지역에서만 4선을 한 5선의 강창희 의원에 도전장을 냈다. 김만수 전 보도지원비서관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대 노무현’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김문수 의원과 대적할 예정.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내부 여론조사 결과가 압승임을 들어 이 세 지역의 ‘수성’을 자신하고 있다. 이에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도봉 을 지역에서 유 전 수석 출마가 확정된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 설훈 의원을 곧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권 전 비서관과 김 전 비서관의 지역구의 경우 내부 여론조사 결과 아직은 다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변수가 많다”며 “이들 지역에서 두 사람만 한 후보가 없다. 본격적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징발 인사’들이 나서는 수도권 지역구들 중 다소 ‘여유’가 있어 보이는 곳도 눈에 띈다. 경기 의정부 지역에 나설 문희상 전 비서실장은 이미 이 지역에서 재선을 한 저력이 있는 데다 이번 총선에서 이 지역구의 분구가 예상돼 현역 의원인 한나라당 홍문종 의원과 맞붙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경기 하남에선 지난 8·8재보선에 이어 재대결을 펼치는 문학진 전 정무1비서관과 한나라당 김황식 의원이 수도권 최대의 접전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들 중 영남권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모두 10명. PK(부산·경남)지역에만 김두관 전 장관(경남 남해·하동)을 비롯해 총 7명이 나서고 TK(대구·경북)지역에도 3명이 ‘투입’됐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표밭이던 영남권에서 이들이 ‘지역의 벽’을 허물고 얼마나 선전하느냐가 최대의 관전 포인트.
몇몇 곳에선 ‘이변’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김두관 전 장관은 최근 지역 방송사 여론조사 결과 상대 후보인 박희태 의원에게 오차 범위 이내까지 접근한 것으로 나타나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상황.
우리당이 전략 지역구로 지정한 대구 수성 을에선 한나라당 윤영탁 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으며 전국구 박세환 의원의 지지자들이 공천탈락에 집단 반발을 하며 내홍 기미를 보이고 있어 윤덕홍 전 부총리의 선전이 예상된다.
우리당이 전략지역으로 여기는 경북 경산·청도 지역도 현 지역구 의원인 박재욱 의원이 구속수감된 이후 한나라당 후보들간의 내부 경쟁이 치열해 이 지역에 나선 권기홍 전 장관의 자신감을 높여주고 있다.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이 출마하는 경북 영주도 비슷한 상황. 한나라당 내 물갈이 바람 탓에 이 지역에서 재선을 한 박시균 의원의 공천을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어 일찍부터 준비해온 이 전 실장의 도전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의 출마 여부가 차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당 후보들이 한나라당이 영남지역에 갖고 있는 프리미엄을 극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지역 정가의 분석도 신빙성을 얻고 있다. 부산 진 갑에서는 〈부산일보〉 선후배지간인 한나라당 김병호 의원과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이 맞붙는다. 이들의 승부에 대해 부산지역의 언론인들은 대체로 “이 지역에서 다진 기반을 볼 때 조 전 처장보다는 김 의원이 한수 위”라고 평하고 있다.
포항 남·울릉 지역에 출마하는 박기환 전 지방자치비서관은 한나라당 이상득 사무총장과 상대해야 한다. 지역 정가에 정통한 몇몇 언론인은 “여론조사 결과 이 전 총장이 훨씬 우세한 상황”이라고 밝혀 박 전 비서관의 ‘발품’이 좀 더 바빠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재호 전 정무2비서관은 당 공천을 받을 경우 부산 남 지역에서 김무성 의원과 맞붙게 된다. 김 의원은 현지 여론조사에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 1~2위로 꼽혀온 인물이라 지역 정가에선 김 의원 관련 대형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박 전 비서관이 역전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고 있다. 반면 박 전 비서관측은 “지역 민심이 차츰 달라지는 상황”이라며 “결과로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부터 부산 중·동 지역에 내려가 출마 준비를 해온 이해성 전 홍보수석도 당내 경선의 관문이 남은 데다 아직은 지명도에서 뒤지고 있어 현역 정의화 의원과의 힘든 승부가 예상된다. 이밖에 대구 지역에 출마할 김정호 전 농림부 차관과 부산 지역에 출마할 이정호 전 국가균형국정과제 담당비서관은 아직 출마 지역구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 텃밭으로 자리매김해온 호남 지역에서도 채일병 전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전남 해남·진도), 서갑원 전 정무비서관(전남 순천)이 도전한다. 해남·진도에선 민주당 이정일 의원의 기세가 높다는 평이며 전남 순천이 지역구인 민주당 김경재 상임중앙위원은 수도권 지역구 이전이 확정돼 서 전 비서관이 해볼 만하다는 평이다.
‘징발 인사’는 아니지만 염동연 전 노무현후보 특보가 광주 북 갑 지역에 출사표를 던져 민주당 중진 김상현 의원과의 ‘대첩’을 준비하고 있다.
염 전 특보와 열린우리당 인사들은 “당내 여론조사에서 염 전 특보가 김 의원을 앞설 것으로 예측돼 염 전 특보가 호남에서 ‘노무현 바람’을 일으켜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다. 염 전 특보가 열린우리당의 예상대로 선전을 펼칠 경우 호남 지역에 출마하는 ‘징발 인사’들의 득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 3.집안싸움부터 걱정돼
정부 관료 및 비서관 출신들이 도전하는 지역구들 중 이들의 공천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내부 경쟁이 치열한 곳도 있다. ‘본선’에 앞서 ‘1차 관문’을 잡음 없이 통과하는 게 이들로서는 시급한 과제다.
권오갑 전 과기부 차관(경기 고양 을)과 김용석 전 인사비서과(인천 부평 갑)은 지역 정가와 언론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게 샀던 인사들이지만 지난 2월22일 당내 경선에서 나란히 패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충북 청원에서 출마 채비를 하고 있는 변재일 전 정통부 차관은 이 지역에서 터를 닦아온 당내 인사들의 거센 견제를 받고 있다. 이달 초 변 전 차관 영입설이 나돌자 집단적 반발 움직임을 보이던 이 지역 당내 출마 예상자들은 지난 9일 변 전 차관이 전격 입당하고 출마 선언을 하자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해성 전 홍보수석이 나선 부산 중·동 지역과 박재호 전 정무2서관이 나선 부산 남 지역도 당내 경선 준비자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지난 16일 부산 4개 선거구 경선출마자들이 모여 ‘경선결과에 승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했는데 이 회견장에 이들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이 전 수석과 박 전 비서관은 각자 개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지만 다른 출마자들은 “낙하산식으로 쉽게 공천을 못 받은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라 성토하고 있다.
▲ 징발인사들 총선 기상도 | ||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경선에서 패하는 장·차관 및 청와대비서관 출신인사가 또 생겨날지도 모른다”며 “아무리 본선 경쟁력이 높아도 경선에서 패한다면 당 지도부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징발인사들 총선 기상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하는 장·차관 및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들의 경쟁력에 대한 전망을 기상도로 정리해봤다.
이들이 출마하는 각 지역 정가와 언론의 평가를 기준으로 해서 예측한 경쟁력 정도에 따라 ‘맑음’ ‘맑음+흐림’ ‘흐림’ 등 세 단계로 나눠 표기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는 인사는 ‘맑음’으로 표기했고 현재 타 후보에 뒤지고 있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거나 박빙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인사는 ‘맑음+흐림’으로 표기했으며 2월 중순 현재 타 후보에 크게 뒤지고 있거나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인사는 ‘흐림’으로 표기했다. 전 직책과 출마 지역구에 관계없이 출마자들의 이름은 가나다순으로 나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