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한다는 뉴스를 봤다. 지난해 기억이 되살아나더니 온몸이 떨렸다. 그날 저녁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다음날 바로 진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7월 18일 충남 태안 앞바다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이후식 씨(46·고 이병학 군 아버지)는 세월호 침몰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진도를 찾았다. 안전보다 영리가 우선인 부실업체와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정부 그리고 무고하게 희생된 아이들이 지난해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진도로 향하는 이 씨는 ‘죄인된 마음’이었다. 해병대 캠프 사고 당시 정부를 상대로 더 강력하게 싸웠다면 이런 일이 반복됐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진도에 도착한 이 씨가 목격한 정부의 대처는 10개월 전 그날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 씨는 “그날과 세월호 침몰 당시 정부의 말이 똑같았다. 공허한 메아리 처럼 들렸다”며 “당시 정부를 믿고 장례를 신속하게 치른 우리는 하루하루 지나면서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길 바랐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진도를 찾은 이 씨와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들은 실종자 가족에게 다가갔지만 경황이 없는 실종자 가족들은 이 씨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했다. 이 씨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을 찾은 장관에게 안일하게 대응해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당부하는 것과 목포해양경찰서를 찾아가 초동수사를 정확히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밖에 없었다.
지난달 25일 이 씨는 또 다시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던 실종자 가족들이 이번에는 먼저 이 씨에게 다가왔다. 먼저 다가온 실종자 가족이 이 씨에게 건넨 첫마디는 “죄송하다”였다. 이 씨는 “팽목항에 모여 있던 실종자 어머니 중 한 분이 오시더니 ‘우리가 해병대캠프 참사가 일어났을 때 너무 무관심했다. 죄송하다. 그리고 무책임했다’고 사과하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며 “실종자 가족이나 유족에게는 위로라는 말이 우습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 속마음을 나누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상대로 한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고 당시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난해 7월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회원과 학생들이 해병대캠프 사고와 관련해 교육부 장관, 교육감, 교원단체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의 유족 이 씨는 “태안 군청과 태안 해경이 사고업체에 대한 허가과정에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이 드러났다. 업체 사장은 안전보다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확실한 책임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관련 책임자들은 1~2년의 금고형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지만 억울하다며 항소한 상태다. 나라에서 죄를 정확하게 묻질 않았다”며 “이번 세월호 참사도 태안 사고와 닮은꼴이다. 일차적 책임은 선장이지만 관리감독의 주체인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 한국선급 및 해운조합 등의 얽히고설킨 유착관계와 사전에 안전조치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이번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와 당시 유족들은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유족들은 당시 수사가 짜맞추기식 수사였다고 주장한다. 이 씨는 “해경에서 조사해서 발표했던 (실종 익사사고의 원인으로) 갯골이라든지 너울성 파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사당국에서는 수중촬영까지 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엔 이마저도 말을 바꿨다. 사고 원인이 갯골과 너울성 파도라고 하는데 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 아이들 사인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이 씨는 “우리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봤지만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판례를 적용했다. 책임자는 빠져나가고 하청업체만 처벌을 받았다. 몸통이 다 빠지고 꼬리만 처벌한 격”이라며 “우리 사건에 H 재단이 있었던 것처럼 세월호 사건에는 유병언 회장이 있다. 이번 사건은 달라야 한다. 정부 당국도 확실하게 수사 기관이 밝혀낼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한다. 또 구조당국이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족 측이 재발방지대책으로 합의한 학생 안전의 날 제정과 인솔교사 안전교육문제도 진척이 없다. 이 씨는 “우리가 계속해서 주장했던 것은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들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 달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안전교육 시설이 전국에 단 한 곳일 정도로 열악하다”며 “세월호에도 학생들을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다수 희생됐다. 선생님이 갑판에 나가 배 상황을 봤다면, 선실로 돌아가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다독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면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고 토로했다.
해병대캠프 사고 희생자들에게는 사망의 원인도 책임주체도 없다는 것이 유족 측의 입장이다. 이 씨는 “사고 당시 정부부처가 약속한 아이들 명예졸업장조차 받아보지 못한 상태다. 장학재단 설립도 안전교육도 모두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은 앞으로 생업을 포기 하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식사도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도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정부의 관심에서 잊히면 더 힘든 싸움이 될 거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싸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의 경과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임을 말해주는 ‘부표’와 같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청와대 앞 ‘1인시위’ 르포 300일간 실무자 한 명도 못 만나… “끝까지 싸울 것” 어버이 날이었던 지난 8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는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겠다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1인 시위’ 중이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에서 아들 김동환 군을 먼저 떠나보낸 김영철 씨(50)와 이성자 씨(45) 부부였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김영철 씨가 도로에 붙여 놓은 사고 전날 해병대캠프 훈련 모습 사진과 김 씨가 품안에서 꺼낸 아들 김동환 군의 생전 사진(오른쪽). 세월호가 침몰하던 지난 4월 16일에도 김 씨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 중이었다. 김 씨는 “속보로 전원구출 소식이 떴는데 나는 믿지 않았다. 우리나라 해경이 이렇게 유능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소식이 뜨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군의 어머니 이 씨는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가 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사진을 치웠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씨는 “박 군의 아버지 심정이 이해가 된다. 해경이 해경을 수사하는데 어떤 부모가 답답하지 않겠나. 장례가 축제가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김 씨 부부와 인터뷰를 나누는 사이 5명의 경찰이 차례로 신원과 인터뷰 진행사항을 확인하고 갔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한 방송사의 인터뷰 도중 해경 정보관계자가 엿듣다 발각된 사실이 떠올라 씁쓸했다. 김 씨 부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좀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며 “경비를 서는 경찰은 많이 보지만 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실무자는 아직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들은 검찰, 사법부, 교육부를 방문해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부탁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곳이 이곳 청와대 앞이었다. 김 씨는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순진했느냐 하면 청와대 오면 누군가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매번 청와대가 철옹성이라는 것만 확인하는 요즘이다”며 자리를 옮겼다. 고 김동환 군 어머니 이성자 씨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모습. 자리를 옮긴 김 씨는 어버이 날임을 그제야 알았던지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아들의 편지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어버이 날 아들이 써준 편지라고 했다. 한자한자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이 가득했다. 김 씨는 “편지랑 사진이랑 이렇게 보고 있으면 옆에 있는 거 같다. 너무 이쁘지 않나?”고 되묻는다. 김 씨는 “어떤 며느리 데려올지도 너무 궁금했다. 아들이 아버지 술 한잔 언제 사주실 거냐고 해서 맥주 한잔 줬다. 대학 가면 좋은 레스토랑 가서 비싸고 좋은 술 한잔 하자고 했는데 이제 못하게 됐네”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김 씨가 주머니에서 약봉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김 씨는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이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 감정기복도 심해졌다. 운전하고 가다가도 눈물이 난다”며 “세월호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도 앞으로가 더 많이 힘이 들지도 모른다. 나라에서 예의주시하고 보살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1인 시위도 언젠가는 끝이 나길 바란다고 했다. 김 씨는 “먼저 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이민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치대책이 될 때까지 이 땅에서 끝까지 진상을 밝히고 싸울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며 다시 피켓을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몇 시간 뒤 세월호 침몰 참사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