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을 준비 중인 씨스타와 인피니트.
가요계는 SM엔터테인먼트가 먼저 움직여야 준 것을 몹시 반기는 분위기다. 가장 영향력 있는 대형 기획사가 포문을 열어주면서 중소 기획사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엑소는 지난달 15일 쇼케이스를 열고 21일 공식 컴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면서 ‘올스톱’됐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엑소는 세월호 사태로 인해 가장 먼저 컴백 일정을 조절한 그룹이다. 이후 컴백 계획을 갖고 있던 팀들이 연이어 활동 계획을 수정했다. 결국 엑소가 가장 먼저 움직여줘야 다른 팀들로 향후 일정을 짤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엑소 이전에도 몇몇 가수들이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했다. 가수 박정현 등이 음원을 발표했고 이승환은 ‘너에게만 반응해’의 후속곡 ‘화양연화’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듣는 음악’인 발라드였다. 무대 퍼포먼스를 앞세우는 ‘보는 음악’으로 분류되는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엑소가 세월호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중의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가요계, 특히 아이돌 그룹의 활동 재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더딘 구조작업으로 인해 아직도 실종자 수십 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6일에는 수색 작업을 벌이던 민간잠수사가 목숨을 잃으면서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음원을 발표해도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이 방송을 재개하지 않으면 노출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그들의 퍼포먼스를 대중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무대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컴백한 가수들이 팬들과 호흡을 기회 역시 줄어든다.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체계화된 팬덤의 지지를 받는다. 팬들은 그들의 컴백 일정에 맞춰 함께 래핑 버스 운영 등 홍보 방안을 고민하고 가요 프로그램 대기실로 도시락 등 응원 물품을 보낸다.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이 계속 결방되면 속수무책이다.
당초 5월 초 컴백을 계획했던 한 가수의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은 신곡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큰 도구다. 음원과 뮤직비디오 발표로는 한계가 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가요 프로그램 현장에서 팬들과 직접 호흡하며 퍼포먼스를 선보여야 홍보 효과가 배가된다”며 “유명 가수의 경우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이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이런 결과가 또 다시 기사화되면서 홍보의 선순환이 이뤄지는데 지금으로선 그 고리가 끊어졌다”고 토로했다.
최근 음원을 발표한 박정현(왼쪽)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이승환.
엑소 외에도 컴백을 준비 중인 아이돌그룹과 가수는 즐비하다. 비스트, 인피니트, 2PM, 씨스타 등 엄청난 팬덤을 바탕으로 컴백과 동시에 음원 차트를 휩쓰는 톱그룹을 비롯해 지나와 블락비 등도 컴백을 타진 중이고 컴백 연기를 선언한 버벌진트와 에피톤 프로젝트 역시 이미 앨범 작업을 마친 상황이라 언제든 음원을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이들에게 5월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세월호 사태로 인해 컴백 일정이 늦춰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6월에는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있다. 뒤도 막혀 있다는 의미다.
물론 선거와 가요계의 직접적 상관관계는 없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세월호 이슈는 후보자들의 당락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선거를 전후해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슈가 또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관련 이슈가 커질수록 가요계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월드컵은 범세계적인 행사다. 세계인의 시선이 축구로 쏠린다. 과거 사례를 비추어볼 때 어떤 가수도 월드컵보다 큰 관심을 모을 순 없다. 또한 이 시기엔 깜짝 스타도 등장한다. 유명가수의 신곡보다는 월드컵 특수를 노린 월드컵송이 음원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김수로 윤도현밴드 싸이 노브레인 등과 같이 월드컵 바람을 탄 스타들이 탄생하면 새 앨범 발표 효과는 줄어든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세월호 사태 속에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선거와 월드컵이라는 큰 산이 앞에 놓여 있다. 이미 앨범 준비를 모든 마친 그룹들은 결국 6월 전에 활동을 마치려 할 것”이라며 “설 수 있는 무대는 한정돼 있으니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고 정해진 파이를 나눠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신인을 준비 중인 중소 기획사들의 시름은 더 깊다. 신인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유명 가수들이 5월 대거 컴백하게 되면 그들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이 관계자는 “가요 프로그램의 방송이 재개되더라도 한동안 유명 가수들의 컴백 스테이지 일색일 것이다. 신인들의 무대는 1분 30초를 배정받기도 힘들 것”이라며 “현재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런 고충을 토로할 수 없다는 것 역시 고충이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