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대표선수 명단을 발표하는 홍명보 감독.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대회 개막 한 달 전까지 출전 32개국 축구협회가 대표팀 예비엔트리 30인 명단을 전달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홍명보호가 예비엔트리가 아닌 최종엔트리를 일찌감치 발표해버린 건 대표 선수들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들려올 숱한 잡음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만약 예비엔트리에 포함된 30명이 동시에 훈련을 진행하게 될 경우, 7명 탈락자에 포함되지 않기 위한 동료들 간 경쟁이 과도해질 수도 있고 이 경우, 팀 내 화합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더불어 일종의 배려라고도 할 수 있다. 월드컵 본선을 가지 못할 선수들이 받게 될 심적 충격과 아픔을 털어낼 시간을 줘 소속 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기에 자신의 속상한 운명을 직감한 선수들도 있겠지만 최종엔트리 발표까지 가슴 졸이던 이들이 탈락하게 되면 그 후유증이 상당하다. 과거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던 K리그의 한 베테랑 선수는 “(탈락의 충격에) 폭음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고 털어놨다. 이를 의식한 홍 감독은 “승선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따로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선수들을 추리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6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처음 치른 동아시안컵을 마친 뒤 홍 감독은 “이제부터는 선수들을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쪽에 주력 하겠다”고 밝혔지만 간단하지는 않았다. 선수를 잘라내는 일이 훨씬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사상 첫 원정 16강으로 이끌었던 허정무 전 감독(현 축구협회 부회장)도 “함께했던 기간이 짧든, 길든 정들었던 제자들을 내쳐야 할 때처럼 가슴 아픈 일은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단 대표팀 명단은 항간에서의 예상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대부분이 수긍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그 중에서도 눈에 가장 띄었던 건 베테랑 선발이었다. 홍 감독이 큰 고민거리라고 누차 밝혀왔던 ‘베테랑 멤버’로 곽태휘(알 힐랄)가 뽑혔다. 최종엔트리 합류가 아주 유력해 보였지만 2010년 남아공 대회를 앞두고 전지훈련을 가진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에서 치러진 동유럽 벨라루스 평가전에서 다리 부상을 입고 탈락한 아픔이 있다.
사실 곽태휘는 엄밀하게 말해 홍명보호의 주전을 보장받지는 못했다. 현 대표팀의 주전급 중앙 수비라인은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와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이다. 하지만 후배에 대한 따스한 배려와 품성이 홍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곽태휘는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책임졌던 최강희 전 감독(현 전북현대) 시절,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였고, 주장 완장까지 찼다.
그런데 홍 감독이 부임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는 포함됐지만 어느 순간 백업으로 밀렸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고 곽태휘의 표정도 조금 딱딱하게 굳었다. 지난해 10월 홍 감독은 그와 면담을 했다.
“서운할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이미 구상한 멤버진이 있다. 아쉽지만 네가 주전은 아니다. 그래도 네가 꼭 필요하다. 너만 약속한다면 난 널 꼭 월드컵에 데려가고 싶다.”
그 순간 곽태휘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예, 갈 수만 있다면 주전이든 교체든 할 수 있는 임무에 매진하겠습니다.”
적어도 곽태휘만큼은 일찌감치 브라질행 티켓을 예약한 셈이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든 충실하고 성실하면서도 밝게 후배들을 다독여줄 수 있는 고참을 찾은 홍 감독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곽태휘의 경우와는 달리 끝까지 알 수 없었던 포지션이 있었다. 포(4)백 수비라인의 좌우 측면을 책임질 풀백들의 백업 자원들이었다. 지난해 동아시안컵을 통해 깜짝 부상한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는 왼쪽, 반대편에는 이용(울산현대)이 있었지만 즉시 투입이 가능한 대체 자원은 마땅치 않았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박주호(마인츠05)와 윤석영(퀸즈파크레인저스·QPR)이 맞선 왼쪽은 나름 풍성했으나 오른쪽은 자원 자체가 적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일조한 김창수(가시와 레이솔)가 있었지만 컨디션이 완전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차두리(FC서울)의 합류 이야기가 잠시나마 수면 위로 부상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운명을 가른 건 최종엔트리 발표 시점의 컨디션과 부상 회복 여부였다. 고민 끝에 홍 감독은 마음을 정했다. 한동안 어려움을 겪다 2013~2014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막바지에 좋은 몸놀림을 보인 윤석영이 극적인 승선을 했고, 박주호는 봉와직염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생애 첫 월드컵 앞에서 쓰디쓴 좌절을 맛봤다.
정성룡(수원삼성)-김승규(울산현대)가 일찌감치 낙점된 가운데 제3의 골키퍼 주자를 놓고 경합한 이범영(부산아이파크)과 김진현(세레소오사카), 수비형 미드필더 한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박종우(광저우 푸리)와 이명주(포항 스틸러스) 중 각각 이범영, 박종우가 웃었지만 홍 감독은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 못했다”며 어려운 결정의 순간을 회상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