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수임기구가 구성될 경우 노무현 후보는 단일후보를 정하기 전까지만 후보지위를 유지하는 시한부 생명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당연히 노 후보측은 당무회의 개회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반면 지난 4일 출범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를 구심점으로 삼은 비노 및 반노파는 당무회의만 소집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노측 관계자는 “현재 민주당 당무위원은 1백3명인데 친노파는 소수에 불과하다. 당무위원은 10명의 최고위원들이 나눠서 지명했다. 최고위원 1인당 직접 지명한 케이스만도 6명이다. 따라서 표결에 들어가면 수임기구안은 반드시 통과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최고위원 10명의 성향은 절반씩 엇갈린다. 정대철 추미애 신기남 이협 문희상 최고위원 등 5명은 친노파로, 한광옥 정균환 박상천 김태랑 이용희 최고위원 등 5명은 비노 및 반노파로 분류된다. 비노파측은 당무위원을 지명하는 과정에서 친노파 최고위원은 제몫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친노파가 당무회의 소집 자체를 반대하는 것을 보면 표 대결에서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화갑 대표의 대응도 미묘하다. 한 대표는 “당헌·당규에 의해 당무위원 3분의 1 이상이 당무회의를 요구해올 경우 소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노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한 대표가 노 후보를 벼랑끝으로 몰 수 있는 당무회의 소집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두고 ‘이상기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두 길’을 보고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비노측은 당무회의가 무산되면 즉각 다음날 자파 소속 원내외 지구당 위원장 모임을 갖고 신당창당 준비위를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1백12명인 현역의원 숫자면에서도 양측 세력은 50 대 50 정도로 팽팽하다. 친노파는 지난달 30일 출범한 선대위에 참여한 50여 명의 의원이 친노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대위 참여인사 중 K, J, 또다른 J의원 등 상당수는 친노파라고 보기 힘들고 ‘관망파’라는 해석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한편 비노파측은 지난 4일 출범한 후단협에 참여한 35명을 포함해 총 76명이 후보단일화에 찬성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비노파측이 주장하는 잠재적 후단협 참여파 중 상당수는 이미 선대위에 참여하고 있다.
양 진영의 승부에서 친노파의 최대 강점은 노무현이라는 분명한 대선후보가 있다는 점. 비노파는 정몽준 의원을 잠재적 후보로 지목한 상태에서 뛰고 있지만 정 의원측에서 뚜렷한 메시지를 주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노측은 이 같은 분석을 단호하게 반박한다. 비노측 핵심인사는 “정몽준 의원과는 협의가 거의 끝난 것으로 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는 지분 상의까지 마무리됐다. 이한동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한화갑 대표도 당 대표로서 최후의 순간까지 중립을 지키려는 생각이지만 마음은 우리쪽으로 기운 지 오래다.
이달 말까지는 통합신당 창당 작업이 완성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비노측은 통합신당 창당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민주당에 잔류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에 남아 최대한 노 후보측을 흔드는 게 유리하다는 것. 일부 강경파 의원들만 조기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비노측 통합신당 구상을 가로막는 변수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자민련과의 통합이 성사되기가 쉽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자민련 의원 5명 이상은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JP에게 건의하고 있고, 민주당 비노파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의원은 두세 명에 불과하다”며 “때문에 JP가 막판까지 선택을 유보하면서 이탈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고 말했다.
비노파 중 박상천 최고위원도 정몽준 의원이 적극적 연대 의지를 밝히지 않을 경우 차라리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정국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은 존속하기 어렵다는 게 박 위원의 판단이라는 후문이다. 박 위원과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는 다른 비노파 인사들도 적지 않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비노파측이 염두에 둔 파트너 중의 한명인 박근혜 의원측도 부정적 기류다. 박 의원측 인사는 “민주당 비노파가 정몽준 의원을 후보로 영입한다면 우리와는 손잡기 어렵다. 정 의원 측근인 강신옥 전 의원은 고 박정희 대통령 암살범인 김재규씨 복권운동 등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박 의원이 강 전 의원을 데리고 다니는 정 의원을 대선후보로 밀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털어놨다.
단 이한동 전 총리는 비노파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리가 7일 대선후보 출마선언을 했지만 최종 목표는 비노파가 창당하는 신당에 합류하는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친노측의 반격도 거세다. 친노측은 유시민의 개혁신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등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초강경 대응이다.
게다가 현재 당 사무총장이 장악하고 있는 인사권과 재정권도 선대위가 접수한다는 방침을 밀어 붙이고 있다. 친노측이 한 대표 측근이면서도 비노파로 분류되는 유용태 사무총장 경질을 요구한 것도 소위 비노파에 대한 정면 공격이 막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전민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