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의원이 선대위 좌장을 맡으면서 당권을 향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오른쪽은 또다른 유력 당권주자 김무성 의원. 박은숙 기자
지난 5월 15일 새누리당 대표실에선 첫 선대위 회의가 열렸다. 대표 자리가 공석일 경우 회의 주관은 사실상 당 대표 역할을 하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맡는 게 관례다. 이날 역시 비대위원장이기도 한 이완구 신임 원내대표가 탁자 중앙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다. 이 원내대표는 “공동선대위원장들 중 가장 연륜과 경륜이 풍부한 서청원 의원이 앞으로 회의를 주관해줬으면 하는 간곡한 부탁을 드린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 원내대표는 “이의가 없으니까 서 의원이 고생을 좀 해줘야겠다”며 자신의 자리를 서 의원에게 양보했다.
서 의원 역시 별다른 반응 없이 이 원내대표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서 의원을 중심으로 오른편엔 이완구 원내대표와 황우여 전 대표 등이, 왼편엔 이인제·김무성 의원 등이 자리를 잡았다. 서 의원이 자연스레 공동선대위원장들 중 ‘좌장’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서 의원은 “세월호 사고에 대한 깊은 반성 속에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면서 “이번 선거는 공동선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후보 각자가 겸허하고 겸손하게 치를 수밖에 없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한 번 국민 신뢰를 받아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노력하자”고 밝혔다.
이날 회의 장면을 지켜본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선대위원장들 간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사회자 교체는 사전 협의가 없었다. 느닷없었다”는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 원내대표와 서 의원이 회의 시작 전에 교감을 하지 않았겠느냐. 향후 당권 경쟁에서 이 원내대표가 서 의원을 밀어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서 의원과 당권을 놓고 경쟁할 위원장들, 특히 김무성 의원으로선 탐탁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당장 이 회의가 끝난 직후 김무성 의원이 크게 불쾌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공동위원장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는 회의를 주관해야 한다. 이 원내대표는 당에서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서 의원이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당권주자 ‘양강’으로 꼽히는 김 의원과 서 의원이 선대위 활동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낼 것이란 관측이 끊이질 않는다. 7월 14일 치러지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번 지방선거가 ‘당심’을 얻을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세월호 참사 후 지방선거 판세는 새누리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해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당권을 얻는 데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겠느냐. 자신의 정치력을 입증할 좋은 기회”라면서 “선대위원장들 중 당권주자들은 때로는 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밑에서의 주도권 싸움도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권주자들이 선거운동을 활용해 지역 관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세월호로 인해 조용한 선거를 치르자는 데 공감대가 모아진 상황이다. 예전처럼 선대위원장들이 전국을 누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당권주자들로선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지역을 다니며 바닥 표를 다지려 하지 않겠느냐. 지방선거가 그들에겐 좋은 선거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 당권주자들의 선대위원장 기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방선거 운동이 전당대회의 전초전 성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선대위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서 의원이 당권 레이스에서 기선을 잡은 듯한 모습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지방선거 경선에서 비주류 측 인사들이 선전하자 김 의원이 서 의원보다 한 발 앞서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서 의원은 선대위에서의 역할을 통해 당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권의 최고 어른’으로 통하는 서 의원은 지난해 국회에 입성한 후 정중동 모드를 유지해 왔다. 서 의원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대신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며 ‘내실’을 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서 의원은 최근 들어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서 의원이 본격적인 당권 행보에 나섰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서 의원이 지난 5월 14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자리에서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오늘 당장 사표를 내라”며 호통을 쳤던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친박 의원들 사이에선 인사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박, 그것도 ‘원박(원조 친박)’이라 불리는 서 의원이 장관 사퇴를 꺼낸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서 의원이 비박계를 염두에 두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서 의원이 장관을 향해 물러나라고 한 것은 예사롭게 흘릴 수 없다”면서 “서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오면 친박은 저절로 교통정리가 될 것으로 본다. 관건은 비박 표다. 서 의원이 집토끼보다는 산토끼를 잡으려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 의원 측은 “장관의 무책임한 답변을 보고 순간적으로 한 말이다. 그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당권을 향해 일단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서 의원의 당권 가도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비주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의원과의 승부를 낙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최경환·윤상현·홍문종’으로 대표되는 친박 신주류가 서 의원을 지지할 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전당대회의 핵심 변수인 ‘박심’의 향배 역시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집권 2년차를 맞아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을 뒷받침 할 대표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그런 점에서 반드시 친박 인사가 이겨야 한다. 그런데 친박 내에선 서 의원 외에 김 의원을 이길 만한 카드가 별로 없다. 지금 이런 저런 말들이 있지만 결국 친박은 서 의원에게로 ‘헤쳐 모여’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방선거가 서 의원 발목을 잡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새누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선대위를 주도했던 서 의원을 향해 ‘책임론’이 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수도권은 물론 텃밭인 영남권에서조차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서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선거에 졌다고 책임을 묻는 게 말이 되느냐.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어디 가서 선거운동을 할 여건도 아니다”라면서 “서 대표를 포함해 선대위원장들이 힘을 합쳐 지방선거를 치르려고 한다. 전당대회와 결부하는 것은 앞서 나간 얘기”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