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9일 기자회견중인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 왼쪽부터 강만수 강혜련 이춘호 위원, 김문수 위원장, 이계경 나경원 심규철 위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주당이 현역 의원을 거의 대부분 공천하고, 열린우리당은 경선으로 상당수 후보를 결정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공천심사위에서 예비후보들의 ‘운명’을 대부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러나게 될 최병렬 대표의 개입 여지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공천심사위에 절대적 권한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더구나 한때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됐으나 갈수록 외부 공천심사위원들의 입김이 거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회창 전 총재 측근과 김영삼 전 대통령 측근 인사에 대한 물갈이 공천도 외부인사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반기 공천심사위를 김문수 홍준표 이방호 의원 등이 주도했다면 당내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주도세력이 교체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의 대대적인 ‘권력 이동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은 김문수 위원장을 비롯해 모두 19명으로 구성돼 있다. 최병렬 대표가 힘을 크게 갖고 있던 시절 막강 권한을 누렸던 사람은 김문수 홍준표 이방호 의원 등 ‘3인방’이었다. 주로 홍준표 이방호 의원이 공천 여부에 대해 기조연설을 장황하게 하면 나머지 위원들이 거의 반대하지 못했다.
홍준표 의원은 사석에서도 “누구는 공천이 되고, 누구는 안돼”라는 말을 여러 번 했고, 공천심사 결과 실제로 나타났다. 이방호 의원의 경우 공천심사위 회의실 문앞에서 “장관님, 제가 잘 알겠습니다”라고 전화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전직 장관을 지낸 의원의 ‘부탁 전화’다. 초선인 이방호 의원에겐 의원들의 민원전화가 쇄도, 막강 권한을 실감케 했다. 이들은 최 대표의 측근으로 그간 최 대표와의 교감 아래 공천심사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섰던 인사가 이성헌 의원이다. 한 심사위원은 “홍준표 이방호 의원이 일방적으로 회의를 끌고 가려 하면 유일하게 제지하는 게 이성헌 의원이었다”고 전했다. 한번은 홍 의원과 이 의원 사이에 회의장 밖에서 들릴 정도로 고성이 오가며 ‘싸움’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당시 이성헌 의원은 여러 번 공천심사위원회를 그만둬야겠다고 말을 하며 홍준표 의원의 독주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같은 공천심사위 분위기는 최병렬 대표의 퇴진 발표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홍준표 이방호 의원의 입김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대신 외부인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외부인사들은 공천초기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대부분 비례대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당 지도부에 미운 털이 박히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대체로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이 주도하는 대로 따라갔다는 것이다.
외부 심사위원이 목소리를 높인 대표적 케이스는 박종웅 의원 심사 때다. 한 심사위원은 “박종웅 의원의 경우 부산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면서 “하지만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았다”고 전했다. 물론 박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운 이 당에서 어떻게 나를 제외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박 의원에 대한 공천심사는 두 차례에 걸쳐 투표에 부쳐졌다. 1차 투표에선 5:4(일부 위원 불참), 근소한 차이로 박 의원의 공천배제 결정이 내려졌으나 워낙 찬반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다음날 다시 투표를 해 7:4로 박 의원 공천배제가 결정됐다. 외부 인사들이 대거 박 의원 공천배제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 이문열 위원 | ||
이들 중 강력하게 자기 논리를 펴는 인사는 강혜련 이화여대 교수와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문열씨는 생각과 달리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열씨는 또 보수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용갑 정형근 의원에 대한 옹호론을 펴고 있고, 박종웅 의원 공천도 찬성했다는 것이다.
이문열씨는 아침 회의에 늦게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씨는 상당 부분 오전 회의엔 참석하지 못한 채 오후에 회의장에 들른다는 것. 한나라당 공천심사위 회의는 오전 7시30분에 시작한다. 이밖에 외부인사들로는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 김영수 병원장,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 이춘호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등이 있다.
외부 인사들이 공천심사위 활동을 하면서 점차 당내 사정을 많이 알게 된 점도 목소리를 높이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 이들은 의원들이 여론조사, 의정활동, 지역구 사정, 정치적 역학논리를 등을 장황하게 제기하며 공천 분위기를 주도할 때 구체적으로 ‘응대’할 수 없었다. 실상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상당수 외부 심사위원들이 의원들보다 더 정치적인 논리로 회의를 주도한다고 한다. 외부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밀어야 할 후보가 생기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다른 심사위원이 지원하는 후보를 먼저 지지해주는 등 ‘노련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한나라당의 쇄신운동에 불을 지핀 것도 공천심사위였다. 이들이 최 대표의 ‘총선 불출마’를 결정, 소장파에 힘을 싣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이 살기 위해선 최 대표의 자기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당시 김문수 위원장이 최 대표와 교감 아래 국면돌파용으로 총선 불출마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국면을 뒤바꾼 결정이었다.
이회창 전 총재의 특보 출신인 나경원 변호사도 역할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심사위원회에 포함된 ‘여성 4인방’(강혜련 나경원 이계경 이춘호)은 수시로 별도 모임을 갖고 여성 공천을 중심으로 공천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눠왔다. 서울 서초갑에 이혜훈 연세대 교수를 공천한 것도 이들의 힘이다.
김용갑 정형근 의원의 공천여부에 대해서는 공천심사위원 내부에서 의견이 크게 갈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문열씨 등은 오히려 보수이념의 정착을 위해 공천을 해줘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달 27일 확정된 김용갑 의원 공천의 경우 하루 사이로 ‘가부’가 오락가락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고 한 심사위원이 전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