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메이커는 박주영?
박주영(왓포드)은 예나 지금이나 축구 담당 기자들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취재원이다. 개인적인 인터뷰 요청은 물론이고, 심지어 A매치 등 공식 경기가 끝난 뒤에도 박주영의 코멘트를 듣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논란을 딛고 홍명보호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 지난 3월 그리스 원정 평가전에서도 박주영은 골 맛을 보고도, 경기장 믹스트존(선수들과 기자들이 뒤섞이는 공간이라 붙여진 명칭)에서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휴가 기간 중의 개인 인터뷰는 거부할 수 있지만 팀에서 잡아주거나 대표팀 간 A매치에서 인터뷰를 하는 건 당연한 선수로서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대표팀 박주영이 그리스 아테네 파니오니오스 스타디움에서 동료 선수들과 훈련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훈련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그런데 박주영이 인터뷰를 꺼리는 이유는 사실 뚜렷하게 알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미스터리다. 그저 과거 기자들에게 혹독하게 ‘까임’을 당한 적이 있어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있고, 축구계 일각에서는 “박주영은 축구 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인터뷰는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역시 소문일 뿐이다.
확실한 건 기자들과 마주칠 때면 대개는 어둡고 왠지 위축돼 보이고, 목소리마저 떨릴 정도인 그가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박주영은 그야말로 대표팀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들 누구에게나 “현재 대표팀 내에서 가장 분위기를 주도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물음을 던지면 거의 백이면 백, 박주영을 거론한다.
무엇보다 스스럼이 없다고 한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선배 박주영은 후배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선다. 말을 먼저 걸고, 장난도 먼저 친다.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건 다반사. 그러다보니 가장 다가서기 편한 선배로도 박주영이 꼽힌다. 기성용은 “(박)주영이 형은 본래 말이 많은 타입”이라며 기자들에게 뼈있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벼운 이야기만 늘어놓는 건 아니다. 이번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도 박주영은 후배들에게 “지금까지의 영광스러웠던 기억은 모두 지우자”는 조언을 했다. 올림픽 등 지금의 선수들이 일군 기분 좋은 추억은 월드컵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선수들에게 박주영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쓴소리꾼? 아줌마?
물론 이청용의 경우, 전면에 나서는 걸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맡은 바 임무라고 생각할 때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오해가 있으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 국내 선수들과 해외 리그 선수들이 편을 가른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몇몇 선수들의 돌발행동이 이어지며 선수단이 어수선했던 과거 최강희호 시절에 이청용은 “대표팀에 직접 와보니 서로 대화가 너무 부족했다는 걸 느꼈다. 대표팀이 좋은 방향으로 가려면 구성원들이 가급적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일부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 세심함도 갖췄다. 앞서 거론했듯이 선수들의 훈련장 밖 생활이 즐겁고 유쾌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바로 이청용이다.
구자철의 경우, 항상 진지모드다. 여기에 자신의 스승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9 이집트 20세 이하(U-20) 월드컵,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을 거치며 홍 감독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 동료들의 일거수일투족에도 관심이 많다. 선수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유독 세심하게 챙긴다. 그래서 ‘구줌마(구자철+아줌마)’라는 용어도 선수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다.
#넉살좋은 자 & 장난치는 자
손흥민과 김신욱은 대표팀 단짝이다. 최준필 기자
최근 막을 내린 2013~201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간을 보낸 손흥민은 이번 소집을 위해 파주NFC 정문을 통과하며 “우리가 많이 친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콘셉트일 뿐이다. 대표팀에 모이면 괜히 친한 척하는 거다. 일단 서로 밖에 있으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물론 이마저 농담이다. 아니나 다를까. 첫 훈련부터 둘은 착 달라붙어 있었다. 대표팀이 본격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단체 러닝을 할 때조차 항상 김신욱의 곁에는 손흥민이 붙어 있다. 심지어 서로 다리를 들어 올리는 모션을 취하며 유쾌한 웃음꽃을 피운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포스트 박지성’ 또는 ‘제2의 박지성’으로 손꼽히는 재목이지만 대표팀에서는 어디까지나 막내일 뿐이다.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고 형들을 웃기게 해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이럴 때 김신욱처럼 만만한 상대는 없다. 어떠한 도발을 하고, 또 어떤 짓궂은 장난을 걸더라도 다 받아주다 보니 편안할 수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훈련 초기 레크리에이션 형식의 가벼운 트레이닝을 진행했을 때 홍 감독은 둘의 편을 갈라 선수들의 내기를 진행할 정도였다. 결과는 손흥민의 패배였고, 돌아온 벌칙은 ‘마트 털기’(파주NFC 인근 편의점에서 동료들이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해 바치는 것)였다. 선수들은 “(김)신욱이의 넉살은 당해낼 자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손)흥민이의 독특한 장난에도 장사가 없다”며 활짝 웃었다. 이래저래 재미있는, 화기애애한 대표팀의 요즘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파주NFC 기자들 소리 없는 전쟁 자리 경쟁 치열… 주차장도 기자실로 대표팀이 소집되면 파주NFC는 항상 북적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곳에는 비단 태극전사들만이 머무는 건 아니다. 지원 스태프가 있고 파주센터에 상주하며 근무하는 인원들이 있다. 홍명보 감독이 파주NFC에서 공식 단복 공개 행사를 마친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취재진이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보도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파주NFC 메인 건물 옆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의 1층에는 약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자실이 있는데, 몰려드는 기자들로 인해 자리 경쟁이 치열해지자 대한축구협회는 아예 인근 주차장을 통째로 비워놓고 간이 천막 3개를 세워 임시 기자실을 구축했다. 여기에는 인터넷 전송 시설과 전원까지 연결해 그럴싸한 모습을 갖췄다. 축구협회의 최만희 파주NFC 센터장은 “월드컵 때는 평소보다 많은 인원들이 몰려드는 탓에 새벽부터 부산을 떨지 않으면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여러 미디어 담당자들의 건의가 오래전부터 있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포츠 매체에서 파견된 인원들만 파주NFC를 찾는 것은 아니다. 연예 매체 리포터들도 자주 몰려든다. 그러다보니 간혹 축구와 관련 없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면서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더욱이 선수 한 명을 세워놓고 진행되는 공식 인터뷰는 주어진 시간이 대단히 촉박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질문이 나올 때면 그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선수도 곤혹스럽고, 항상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도 답답했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의 원성이 차츰 높아졌고, 축구협회도 이에 대한 묘안과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축구협회는 매년 초 등록 언론사들에 배포하는 소속사가 적힌 AD카드를 착용하지 않는 인원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한술 더 떠 선수들을 돕기 위해 간혹 모습을 드러내는 에이전트들조차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선수들이 좀 더 진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오직 훈련에만 신경을 쓰도록 한 배려로 비쳐졌지만 대표팀 내에서 간혹 몰지각한 에이전트들이 외부에 대표팀 내부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에 ‘에이전트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실제로 종종 벌어지는 사례이기도 하다. 에이전트들이 외국 파트너들과 대표팀에 모인 소속 선수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알게 모르게 대표팀 이야기가 흘러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절대로 내부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홍 감독은 과거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부터 내부 단속과 내부 규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정보 유출에 지극히 민감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외신들의 보도경쟁도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카타르의 유명 TV채널 알 자지라 방송 계열사인 비인(beIN) 스포츠에서는 3명의 취재진을 보내 태극전사들의 훈련 스타트 소식을 생생하게 전했다. 카타르 언론이 이처럼 관심을 가진 까닭은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데다 자신들이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부터 2018러시아월드컵까지 꾸준히 한국-일본-호주-이란 등 아시아의 월드컵 출전 단골의 대표팀을 분석하고 해당국의 축구 발전상을 알리는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홍명보호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기자들이 유난히 많은 일본은 여전히 한국 축구가 잘 팔리는 상품이라고 했다. 양국의 실력 차가 거의 없어졌고, 국제대회에서도 일본이 간혹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는 해도 한국에 대한 트라우마는 완벽하게 씻어내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한 일본 기자는 “한국이 먼저 최종엔트리를 발표하자 일본 내에서는 ‘우리도 한시라도 빨리 대표팀을 확정짓는 게 경쟁자들이라 할 수 있는 예비 엔트리가 먼저 모여 훈련하는 것보다 더욱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귀띔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