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정 전 비서관(왼쪽), 박주현 수석 | ||
직접적인 원인은 전 전 비서관의 직속 상관인 박주현 참여혁신 수석비서관(구 국민참여수석)과의 잦은 충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두 사람의 성격이 모두 만만치 않아 자주 부딪친 것으로 안다”면서 “교수 출신의 전 전 비서관도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업무 처리를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개성이 강한 박 수석의 성격도 충돌 원인이 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전했다.
발단은 당초 전 전 비서관이 이끌던 비서실장 직속의 PPR(정책프로세스개선) 비서관실이 지난해 말 박 수석의 국민참여수석실과 통합되면서 시작됐다.
국민참여수석실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전 전 비서관은 그동안 박 수석 주재 회의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박 수석은 최근 노 대통령에게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호소했고 이에 맞서 전 전 비서관은 사표 제출로 배수의 진을 쳤으나 결국 노 대통령이 박 수석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두 사람 간에 감정의 골이 패인 것은 지난해 8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와대 입성 직후부터 대대적인 내부 직원 평가와 조직 개편 작업을 하면서 비서실 직원들로부터 불만의 대상이 되던 와중에 전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2차 조직 개편 과정에서 국민참여수석실을 폐지하려 했었다. 그러나 박 수석이 강하게 반발해 가까스로 국민참여수석실 조직 자체는 살아남았으나 이 와중에 5명의 비서관 중 1명이 줄었다.
이후 12월 2차 조직 개편 과정에서 다시 PPR 비서관실은 국민참여수석실 통폐합을 추진했고 다시 박 수석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결국 PPR 비서관실과 국민참여수석실의 통합으로 결론났다. 외형상으론 전 전 비서관이 이끌던 PPR 비서관실이 박 수석 산하로 흡수된 형국이었지만 청와대 주변에선 오히려 전 전 비서관이 국민참여수석실을 ‘접수’한 것으로 평가했었다.
박 수석뿐만 아니라 그간 조직이 통폐합되거나 축소된 일부 부서는 물론 청와대 내에서 전반적으로 전 전 비서관에 대한 원성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 전 비서관에 의해 조직 평가가 이뤄지고 이는 곧바로 자신들의 생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사직 통보를 받은 한 비서관은 “어떤 평가 기준이 적용됐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갈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나가라’고 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청와대 분위기 때문에 전 전 비서관은 이따금씩 스스로 “내가 청와대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청와대 일각에선 아직도 ‘PPR스럽다’는 표현이 일종의 ‘욕설’로 회자된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의적인 잣대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경우나 아예 별 이유 없이 싫은 사람에 대해서도 “PPR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게 한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전 전 비서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지난해 말 전 전 비서관에 의해 ‘해고’ 통보를 받고 청와대를 떠난 한 전직 비서관은 “전 전 비서관의 업무 특성상 주변으로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전 전 비서관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 조직이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고 긴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경영정보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 전 비서관은 상명대 정보통신대학원장 재직중 지난해 초 노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의 추천으로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관리와 업무 혁신 프로그램 등에 대한 그의 브리핑에 반한 노 대통령과 연세대 동문인 이 전 실장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전 전 비서관은 청와대 출범 1개월 만에 곧바로 조직 개편 작업에 착수하는 등 거칠 것 없는 행보를 해왔다.
전 전 비서관의 ‘교육’으로 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직후 “모든 조직은 생성과 동시에 개혁 대상”이라며 “3개월 내지는 6개월에 한 번씩 청와대 각 부서와 직원들에 대한 평가 작업을 하겠다”고 예고해 비서실 직원들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 전 비서관도 당시 “비서실장에서부터 기능직 여직원에 이르기까지 성역없이 전 조직에 대해 직무분석을 거쳐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때부터 청와대 내에선 “PPR 비서관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리기 위해 지나치게 오버하고 있다”는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이 같은 조직 내 ‘왕따’, 직속 상관과의 잦은 충돌 외에도 공개석상에서의 노 대통령의 ‘질책’도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달 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청와대 내부 통신망에 대한 설명회에서 노 대통령이 전 전 비서관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개념이 불명확하다. 다시 설명해보라”며 질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당시 회의 분위기로 볼 때 질책이라고 보긴 어렵고 단순히 토론 과정에서 나온 발언일 뿐”이라며 이 같은 해석을 일축했다.
이보다는 오히려 지난달 서동만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의 전격 경질에서 나타난 노 대통령의 ‘용인술’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직의 장(長)과 부하가 충돌할 경우 조직 안정을 위해 설령 대통령 자신이 심정적으로 아랫사람 쪽에 치우쳐 있다고 해도 결국 윗사람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 전 실장과 고영구 국정원장 간 개혁 속도를 둘러싼 치열한 내부 갈등에서 결국 노 대통령은 조직 안정을 위해 고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면서 “심정적으로야 노 대통령은 국정원의 혁신적인 개혁을 원하고 있지 않았겠나”라고 전했다.
조은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