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적극 나선 것은 검찰의 (주)부영 비자금 수사가 한몫했다는 설이 나돌면서 부영 비자금 공개에 대해 정치권이 초긴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조순형 대표, 오른쪽은 이중근 부영 회장. | ||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던 지난 12일 정치권의 한 인사는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고, 한-민-자 공조를 통해 탄핵안을 가결시킨 배경에는 검찰의 (주)부영 비자금 수사도 한몫했다”고 평가했다.
이 인사는 “대기업에 대한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주로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 성격이 강하다면, (주)부영 비자금 수사는 민주당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화갑 의원에 대한 경선자금 수사에 때맞춰 수사가 시작된 (주)부영 비자금 수사는 민주당 중진 등 구여권 실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는 것. 이 때문에 민주당이 퇴로를 차단한 채 ‘탄핵’에 모든 정치력을 집중해 왔다고 위 인사는 풀이했다.
이 인사의 발언은 부영 정치자금 수사에 대해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부영 정치자금 제공 수사는 현재 정치권, 특히 민주당을 초긴장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대선자금 중간수사 발표 이후, 추가로 2백억원대 비자금이 발견된 (주)부영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5개월여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해 온 검찰은 지난 8일 중간 수사발표를 통해 한나라당에 흘러 들어간 불법대선자금은 삼성그룹에서 받은 3백40억원을 포함, 모두 8백23억2천만원, 노무현 캠프 쪽은 삼성 30억원 등 총 1백13억8천7백만원인 것으로 발표했다.
이날 검찰은 삼성, LG, 현대차, SK, 롯데 등 5대 대기업들이 각 대선후보 진영에 제공한 자금제공 과정과 내역을 비교적 상세히 발표했다.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 압수수색을 벌인 몇몇 기업들의 경우, 구체적인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향후 정치인들에 대한 추가 수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와는 별도로 수사력을 집중했던 기업 가운데 하나가 건설업체 ‘(주)부영’이다.
특히 (주)부영의 경우 검찰이 대선자금 중간수사발표 이후 2백억원대 비자금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총선을 앞두고 대선자금과는 별도로 정치권을 뒤흔들 또다른 뇌관으로 등장했다.
(주)부영은 1983년 전남 순천출신 이중근 회장이 설립한 중견 건설업체로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급성장, 그동안 민주당 중진과 구정권 실세들과의 유착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회사다.
실제 (주)부영건설의 도급순위는 97년 96위에 머물렀던 것이, 98년 77위로 도약한 데 이어 99년 65위, 2000년에는 43위, 2001년에는 23위로 뛰어올랐다. 지난해에는 건설사 순위로는 18위를 기록한 데 이어, 주택 건설 부문에서는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부영의 고속성장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당시 김대중 정권 실세들의 도움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게 사실이다.
5대 대기업에 대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은 지난 1월29일 (주)부영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당시는 검찰에서 경선자금 수수와 관련, 민주당 한화갑 의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려던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검찰의 (주)부영 압수수색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에 ‘차떼기’ 정당 이미지가 각인됐다면, (주)부영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민주당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의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집중 제기하며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던 민주당 김경재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주)부영 이중근 회장이 전남 순천 출신으로, 김경재 의원의 지역구 출신 기업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이 같은 정치권의 해석은 설득력을 더해가는 듯 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주)부영을 수사하는 과정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 수사 기류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L씨와 K의원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됐다. 이중근 회장이 사업 이외 사회활동 과정에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는 점에서였다.
또한 (주)부영이 부산, 경남, 경북 등 영남지역에서 활발히 주택건설 사업을 벌이게 된 배경에 정권 실세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K의원의 이름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 같은 얘기들은 검찰로부터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설’ 수준에서 오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 정치권 주변에서는 민주당 중진 K, P, H 의원 등 구여권 실세 의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특히 (주)부영이 국민의 정부 들어 고속 성장하게 된 배경에 K의원과 가까운 정보기관 출신 모 인사가 (주)부영에 임원으로 영입된 이후 사세가 확대됐다는 점에서였다.
(주)부영이 부산, 경남 김해, 대구, 경북 경산, 구미 등 영남권에서 대규모 주택건설 사업권을 획득한 과정에 위 영입인사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부영의 내부 사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주)부영이 전남 순천 출신 이중근 회장이 설립한 회사이기는 하지만, 상당부분 주택건설 사업은 경남이나 경북 등 영남권에 집중돼 있다”며 “한국토지공사나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을 통해 택지를 분양받거나, 주택건설을 수주함으로써 사업을 확대해왔다”고 말했다.
위 인사는 또 “부영이 건설업체이기는 하지만, 주로 임대아파트를 지어왔다”며 “임대아파트는 독자적인 사업보다는 공공기관과 연관돼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가 많아, 정권 실세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그만큼 많다”고 말했다.
실제 (주)부영은 83년 회사 설립 이후 주로 임대아파트를 주로 건설해 왔으며, 98년 이후에는 임대아파트 건설 건수가 매년 20건을 상회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건설 물량이 많았다.
검찰 수사를 통해 (주)부영이 지난 4~5년 동안 2백억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점도 임대아파트 건설물량이 비약적으로 많아진 시점과 일치하고 있어,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가능성은 그만큼 높은 셈이다.
한편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이중근 회장은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며 “자신이 주택 건설을 통해 많은 이득을 얻게 된 지역에는 학교를 지어주거나, 기숙사, 강당 등을 지어줬다”며 “무턱대고 이윤만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 인사는 “이 회장이 동교동계 인사들하고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세간에서 생각하듯 유착관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2백억원대 비자금이 발견돼 정치권에 또다른 불씨로 남아 있는 (주)부영 비자금의 구체적인 사용 내역은 언제, 어떤 형태로 공개될지 공개시점만을 남겨두고 있다. 민주당이 탄핵을 발의하고, 한나라당,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해 탄핵을 가결시킨 배경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주)부영 비자금 사건은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 정치권을 뒤흔들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