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지방선거 선전으로 박근혜 정부 2기 출범이 일단 힘을 받겠지만 ‘안대희 낙마’ 같은 인사 참사가 재연된다면 다시는 국민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청와대
그의 표정이 말해주듯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 등 여권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독한 악몽보다 더했던 세월호 침몰 참사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잡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거가 있었던 6월 4일은 지난 4월 16일 참사 발생으로부터 꼭 50일이 되는 날이었다. 여권이 50일간 갇혀 있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막 빠져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번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이렇게 판단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완패를 면했다’거나 ‘선방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얻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우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은 선거 당일까지도 자체적으로 ‘서울 열세, 경기 경합, 인천 경합열세’라는 분석을 내리고 있었지만 경기지사와 인천시장을 가져갔다.
새누리당은 또 대전시장, 충북지사, 충남지사, 강원지사 등 이른바 ‘중원 싸움’에서는 야당에 밀렸지만 전국적으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승리를 거뒀다. 기초단체장 선거 226곳 중 117곳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80곳, 무소속은 29곳을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지방선거가 악조건 속에 치러졌음에도 새누리당이 패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거전 초반 거셌던 ‘박근혜 심판론’이 막판 ‘박근혜 사수론’으로 상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선거전 막판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새누리당의 호소가 보수층의 대결집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결국 새누리당의 ‘박근혜 마케팅’이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번 선거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선거’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2012년 대선 당시 노인층의 집단 분노를 유발했던 이른바 ‘이정희 효과’가 여전히 선거판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이 꺼낸 ‘종북 프레임’이 최소한 노인층의 결집과 투표 참여로는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가 박근혜 정부 임기 초반에 치러졌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패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굳이 ‘박근혜 마케팅이 통했다’, ‘유권자들이 보수화됐다’는 식의 거창한 분석까지 갈 필요도 없다”며 “국민들이 박근혜를 버리기에는 지금은 너무 이른 시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왜 지난 1998년 지방선거와 이번 지방선거에서만 ‘지방선거=여당 참패’의 등식이 깨졌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선거 모두 임기 초반에 치러진 선거라는 게 이 평론가의 답이다. 즉, 1998년 지방선거는 김대중 정부 임기 첫 해에, 이번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3개월 만에 치러졌다는 얘기다.
반면 여당이 참패했던 2002년 지방선거는 김대중 정부 임기 마지막 해에, 2006년 지방선거는 노무현 정부 임기 4년차에, 2010년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 임기 3년차에 치러졌다. 이 평론가는 “이번 지방선거가 3년차가 된 상황에서 치러졌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최악의 위기에 처했던 박근혜 정부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제로베이스’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는 데에는 정치 전문가들과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다. 소위 제2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시위. ‘박근혜 퇴진’ 피켓도 보인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새로운 출발은 그 자체로 이중적인 전망을 내포하듯 박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의 운명도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도 있는 반면 새 출발 이전보다 더 심각한 위기와 민심이반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새 출발의 첫 단추가 될 ‘제2기 박근혜 정부’ 인사에서부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에서 탈피하는 것도, 국민대통합·대탕평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세월호 참사를 딛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도 모두 인사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관계자조차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여야 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없게 나왔다는 것은 국민들이 여권에 대해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고 마지막 경고를 보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며 “지난해 박근혜 정부 출범 때처럼 인사참사가 재연된다면 다시는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PK(부산·경남), 법조인 편중 인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새누리당 내에서도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위기감과 무관치 않다.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솔직히 ‘대통령이 변한 게 있느냐’며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박 대통령이 새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구성에서부터 이런 우려의 시각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지방선거로 잡은 반전의 계기가 그냥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