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구 정은희 사건’ 피해자 아버지 정현조 씨가 당시 부실 수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지난 15년간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아버지 정 씨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서려있었다. 15년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구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5월 30일 법정에 섰던 스리랑카인 K 씨가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은 날이었다. K 씨가 받고 있는 특수강도강간죄를 증명할 실질적 증거가 부족한데다 혐의의 공소시효(15년으로 2013년 10월 16일 만료)도 이미 만료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정 씨의 모습은 의외로 담담했다. 지난 3일 대구 남산동 자택에서 마주한 정 씨는 “이미 1심에서 무죄로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며 “이번 재판의 참고인이었던 또 다른 스리랑카인 A 씨는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진술했을 뿐이다. 증인으로 서야 하는 사람은 당시 수사를 했던 경찰, 부검의, 영안실 직원, 트럭운전 기사 등 이다. 하지만 이 중 누구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 검찰이 제시한 증인과 증거로는 재판에 기대를 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씨가 처음부터 재판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검찰로부터 용의자가 밝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정 씨는 ‘이제야 이 긴 싸움도 끝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까지 국민 고충을 해결한 대표적인 소통 사례로 이른바 ‘대구 정은희 사건’을 꼽으면서 재판에서 사건의 진실이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정 씨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정 씨는 “15년간 축적한 자료를 제시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사건과 관련된 핵심증인들을 증인으로 세울 수 없는지 수차례 물었지만 이미 다 조사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결국 증인으로 선 사람은 ‘카더라’식의 정보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검찰의 공적을 위한 언론플레이에 내가 들러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정 씨의 풀리지 않는 의문은 용의자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 씨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했다. 실제로 정 씨는 지난 5월 30일 재판장에 ‘모든 증거를 은폐해 놓고 제3의 범인을 만들면 범인이 맞는 건가’라는 문구를 A4용지에 적어 가기도 했다.
당초 검찰이 K 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지난 2011년 K 씨가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을 때 채취한 DNA가 15년 전 정 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 씨는 자신만의 생각이라면서도 “당시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증거로 제출한 속옷을 검사해 달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경찰은 ‘동네 아줌마 속옷으로 보인다’며 거절하다 사건이 여론의 관심을 끌자 속옷을 검사한다고 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속옷 보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당시 DNA를 채취했다는 확고한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일치하는 정액 유전자가 나왔다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은 끼워 맞추기식 범인 찾기가 아니다. 그날 왜 교통사고가 일어났는지, 경찰은 왜 ‘흔한 보행자 교통사고와는 다르며 사고 전 신변에 심각한 위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팀 감정서를 무시했는지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양이 숨진 채로 발견된 대구 구마고속도로 주변 지도. 자료출처=정은희 양 추모 홈페이지
K 씨의 DNA 증거자료는 공소시효가 남은 특수강도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이상 항소심에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DNA 증거자료를 둘러싼 양측의 법정공방도 치열하다. K 씨 변호인 측은 “STR(유전자 감식) 기법으로 유전자 일치 여부를 검사하려면 최소 16~17개의 시료가 필요한데 검찰이 과연 이런 요건을 충족시켰는지 의문스럽다”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지 검찰이 관련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K 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서울대 법의학 교실을 비롯한 복수의 전문기관을 통해 유전자 재 감정을 실시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상태다.
이에 검찰 측은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DNA가 K 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피해자가 사망해 검찰은 간접·정황증거로만 범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인데 법원이 직접적 증거에만 집착해 판결을 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스리랑카로 수사관을 급파하는 한편, 집행유예로 풀려난 K 씨의 출국금지를 신청했다.
15년간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싸워온 정 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고소장을 쓰기위해 ‘채소장수가 뭘 알겠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생소한 법률을 보고 또 봤다. 재판부에 제출할 증거를 문서로 만들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우면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며 지난 15년을 기억했다. 정 씨는 미흡했던 경찰 초동수사의 책임을 묻고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탄원서와 진정서를 100개도 넘게 쓰면서 범인보다 수사하는 사람들이 미울 때가 더 많았다고 했다.
정 씨는 “가족들도 너무 힘드니까 이제는 잊고 가슴에 묻자고 말한다. 이 곳에 나와 집사람, 딸 셋, 아들 하나 이렇게 6명이 살았는데 이제 집사람과 나만 남았다. 남은 자식들은 내가 고생한다는 생각에 결혼도 미루고 있다”며 “전면 재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항소심 판결도 1심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와 같은 피해자 유족들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사건 경위 15년 만에 밝혀진 성폭행 진짜 범인은…‘오리무중’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께 간호사를 꿈꿨던 대학신입생 정은희 양(당시 19세)이 대구시 달서구 구마고속도로에서 처참한 모습의 시신으로 발견됐다. 전날 밤 10시 40분께 대학 축제에서 술을 마시다 인사불성이 된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준다며 자리를 뜬 뒤 6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경찰은 정 양이 술을 마시고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다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며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했다. 그러나 정 양의 아버지 정현조 씨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틀 후 정 양의 친구와 친척과 함께 찾은 사고현장에서 정 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속옷 2점을 찾아냈다. 사고현장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이었다. 실제로 영안실에 안치된 정 양은 속옷 없이 겉옷만 걸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현장은 정 양의 집과 반대 방향이었고 학교에서도 무려 7.7km나 떨어져 있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닐 것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성폭행을 의심한 정 씨는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사건발생 2달 만에 경찰은 정 양을 친 트럭 운전자를 무혐의 처분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때부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 씨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정 씨는 대구지검에 재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당시 사고현장에서 찾은 속옷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할 것을 재차 요구했다. 정 씨는 2013년까지 100여 차례에 걸쳐 의혹을 제기하고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고소·고발·탄원서를 제출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정 씨의 끈질긴 노력에도 특수강도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5년(만료일 2013년 10월 16일)으로 이른바 ‘대구 정은희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했다. 그러던 지난해 9월 숨진 정 양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 스리랑카인 3명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검찰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2011년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스리랑카인 K 씨(48)가 경찰에 검거됐는데 검찰은 이때 채취된 K 씨의 DNA가 1998년 사건 당시 정 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3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K 씨 등 3명이 혼자 귀가하던 정 양을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 굴다리 아래로 끌고 가 현금 등을 빼앗은 뒤 정 양을 차례로 성폭행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K 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지난 5월 30일 열린 K 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특수강도강간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법리 검토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