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2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한나라당은 이번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70%에까지 이르자 적잖이 당황하면서 총선 참패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도부는 탄핵 반대 여론에 거품이 있다고 판단, 이런 역풍도 향후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부각되면 차츰 사그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으로서는 최대의 악재를 만난 셈이다. 민주당은 탄핵이 되면 흩어졌던 ‘반노 정서’가 확실하게 한 곳으로 결집되면서 떨어졌던 지지도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탄핵에 적극 앞장섰다는 비난만 들을 뿐 그나마 남아 있던 지지자들도 열린우리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태가 발생해 이번 탄핵 정국의 최대 피해자로 평가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비록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렸지만 당 지지도는 창당 이래 최고를 구가하고 있다. 지도부는 장외 투쟁도 자제하는 등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총선이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여야의 지지율이 이대로 고착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17대 총선이 탄핵 정국과 맞물려 어떤 판세를 그려갈지 미리 들여다봤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단 한 번도 제1당의 교체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야 3당을 확실하게 정리해 헌정 사상 최초로 의회권력의 교체를 이룰 것으로 믿고 있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3월12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본회의장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희망사항’을 토로했다. 과연 그의 바람이 들어맞을 것인가.
먼저 이번 탄핵 정국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탄핵 정국은 기존 총선 구도를 무너뜨리려는 여야의 의도된 ‘판깨기’ 성격이 짙다.
사실 열린우리당은 올해 1월 창당된 뒤 계속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러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마저 지지율이 30%대에 그치면서 입당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자연 집권 여당 프리미엄도 누릴 수 없었다. 하지만 2월 ‘정동영 체제’가 들어서면서 처음 지지율이 1위로 올라선 뒤 지금까지 계속 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처음에는 차기 지도자 후보로 올라선 정동영 의장으로 인한 ‘반짝 효과’로 보았지만 그 후 지지율 1위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으면서 기존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차츰 떨어져 나가 열린우리당으로서도 지난 대선 때처럼 다시 한번 친노 세력의 결집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으로 굳어진 당의 수구 부패 이미지를 바꾸려 개혁적인 물갈이와 최병렬 대표 체제의 퇴장 등을 내세우며 지지율 반전을 노렸지만 한번 등을 돌린 여론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구시대 정치인들의 ‘집합소’로 낙인찍혀 어려움을 겪었다. 전통적 지지세력이 열린우리당으로 급격히 이탈하면서 지지율도 한자릿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한-민 두 당이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 총선을 치르다간 패배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두 당으로선 기존 총선 구도를 흐트러뜨릴 필요가 생긴 것이다.
여권은 여권대로 향후 4년의 정치지형을 바꿀 총선을 앞두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친노 세력의 재결집이 필요했고, 야권 역시 지지율 하락 등의 반전을 위해 획기적인 계기가 필요했던 입장이었다. 그 결과 탄핵안 가결은 어찌 보면 마주보며 달려오는 기관차같이 피할 수 없는 필연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어떤 구도로 치러지게 될까. 먼저 탄핵안 가결로 반노 세력이 결집되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양강 구도가 고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구도는 결국 열린우리당에게는 호재로, 나머지 야 3당에게는 모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먼저 한나라당은 수도권 참패가 예상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접전을 벌이면 수도권에서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의원들이 적잖을 것이라고 낙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이 탄핵 정국에 실망한 나머지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한나라당도 당의 환골탈태에 실패한 데다 탄핵안 가결의 ‘주범’이라는 낙인마저 찍힌 상황이라 수도권에서 선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이에 대해 “탄핵 전후로 정보망을 총동원해 조사해 본 결과 특히 수도권에서는 한나라당의 승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탄핵만큼 큰 이슈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총선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체 지역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이 이번 총선 승리의 분수령임을 감안하면 누가 이번 선거에서 승자가 될 것인지는 자명해진다.
민주당은 ‘한-열’ 양강 구도의 최대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안이 가결되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모습에 실망했던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탄핵안을 주도한 민주당의 단호한 태도에 공감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한참 빗나간 기대였다.
민주당 지지층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한나라당에 대해 매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호남의 이런 반 한나라당 정서를 간과했다. 당 지도부가 올해 초 정치개혁법 개정과 관련하여 ‘한-민-자’ 공조를 전격 성사시키자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더 이상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탄핵 가결 과정에서는 조순형 대표가 계속 강수를 두면서 밀어붙이자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이 급격하게 등을 돌리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민주당은 현재 별다른 회생의 카드를 찾지 못한 채 당마저 분열되고 있어 과연 총선에서 몇 석을 건질 수 있을지가 관심을 모을 정도로 급격하게 세가 줄어드는 양상이다.
탄핵 정국이 오기 전까지 4월 총선은 야당의 ‘노무현 정권 심판’ 주장과 열린우리당의 ‘낡은 정치 청산’이 맞부딪치는 형국이었다. 이번 총선이 참여정부의 중간 평가 형식을 띨 경우 열린우리당으로서도 매우 부담스런 구도가 될 뻔했다. 하지만 야권의 무리한 탄핵안 가결로 흩어져 있던 친노 세력의 지지가 급격하게 열린우리당으로 쏠리면서 이번 선거는 친노 대 반노 또는 개혁 대 수구 세력간의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될 경우 그동안 야권으로부터 경제정책 실패와 측근들의 비리 등으로 공격을 받아 오던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 연계 의견을 밝히면서 이미 이번 17대 총선은 지역의 선량을 뽑는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보수-개혁세력 간의 사생결단식 대결로 굳어질 경우 그 후유증은 상당기간 오래갈 것이고 이는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