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병역비리 파동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변호사와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이들은 한때 병역비리 수사를 직접 담당했거나, 현재 병역비리 문제점을 직접 다루고 있는 소위 이 방면의 ‘전문가’들. 결국 병역비리 전문가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강조하는 ‘병역 불평등’의 ‘주범’은 따로 있는 셈이다.
병역특례 제도란 군 소요 인원의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고급 인력이나 기술 인력을 군대가 아닌 산업체에 지원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공헌토록 한다는 취지에서 실시됐다. 이 제도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1973년 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소수의 고급 인력에 해당하는 연구요원을 방위산업체에 근무토록 하는 것이 주였다. 최근에는 이공계 고급 인력을 장려하고 산업체를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규모가 일반 기업체로 대폭 확대되었다. 비리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 시민단체의 이아무개 간사는 “80년대에 석사장교 제도란 것이 있었다. 고급인력을 국가 발전에 활용한다는 취지로 6개월만 장교로 복무하면 되는 제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가 일부 상류층 자제들의 병역면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부작용이 있어 90년에 폐지됐다. 그런데 이 기능을 오늘날 병특 제도가 고스란히 승계하고 있다. 아니, 더 심각한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날 실시되고 있는 병특 제도의 요원으로는 크게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의 전문연구원들이 해당 연구기관에 취업해서 4년간 근무하면 군복무로 대신해주는 제도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출신들이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산업기능요원은 병역특례지정업체로 선정된 업체에 취업해서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하게 되면 군복무를 대신 인정받는 제도다. 이 경우에는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 받으면 된다. 특례복무기간은 현역의 경우 34개월이고, 보충역의 경우 26개월이다. 하지만 매년 경쟁률이 그야말로 몇백 대 일의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지원자들이 몰려든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군입대 대상자인 대학생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거의 절반에 가까운 44%가 병역특례 신청을 하고 싶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 있어 병특 요원으로 선발되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아들’(군 면제자를 빗댄 은유적 표현)이 되는 것보다도 더 힘든 관문인 셈이다.
현재 병역특례 요원은 약 7만 명 선으로 전체 군병력의 대략 10%에 해당하는 인원이 병역특례대상인 셈이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역 대상자들은 ‘아버지의 백을 등에 업은 일부 특혜자들이 상당수 선발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가장 시급한 문제점은 병특 요원의 선발 방식이다. 놀랍게도 병특 요원의 선발권 및 관리는 지정 기업체가 전권을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무청에서 감시·감독을 한다고는 하나 사실상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불시에 해당 업체를 방문해서 현장 근무 실태를 감시한다”고 밝혔으나, 그 횟수는 연 1회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그나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거나 형식적인 선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례로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는 대전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경우 1천 명이 넘는 요원이 근무하지만 이들의 근무 업체를 실사 관리하는 대전병무청 담당 직원은 3명 정도에 불과한 상태다.
실제 지난해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결과 당시 1백24명이나 되는 산업기능요원이 부모 또는 4촌 이내의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서 버젓이 특례요원이라는 구실로 복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 여파로 4촌 이내가 운영하는 회사는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이 새로 만들어졌으나, 이 간사는 “거래 업체나 친분 관계가 있는 경영자끼리 서로 바꿔가며 자제들을 불법 채용하는 사례가 계속 만연하고 있어 이 같은 규정도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더 웃지 못할 촌극은 실제 이공계 전공자도 아닌 이들이 버젓이 자격증 하나로 병특 요원이 된다는 점이다. 병특 요원 지원 자격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기술자격증만 있으면 된다. 정보처리기능사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속성학원에서 2~3개월만 공부하면 취득이 가능하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얘기다.
게다가 불법 취득의 방법도 생겨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런 자격증 하나만 있다면 친분관계에 있는 병특 업체에 취업해서 얼마든지 특례 요원이 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인기 가수 S씨가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으로 부친과 친분이 있는 한 IT 회사에 병특 요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병무비리 사례를 주로 수집하는 한 시민단체에 얼마 전 한 제보가 접수되었다. “국회의원을 지낸 전직 정부 고위층 인사 H씨의 아들은 한 대기업에 병특 요원으로 입사했으나, 실제 출근 조차 하지 않는다”라는 것.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회사 내부 관계자들의 제보에 의존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명확한 증거가 없어 의혹만 제기할 뿐”이라고 한계를 토로했다.
실제 H씨 아들의 경우에도 정황은 너무나 뚜렷했다. 그는 97년 현역입영 대상자로 판정받았으나 유학을 다녀온 뒤 2002년 병특 요원으로 한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경제를 전공했음에도 그는 귀국 후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IT 전공자로 둔갑했던 셈이다. 지난해 대기업 L사로 옮겼는데, 사실상 출근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시민단체에서 L사의 출근부를 직접 확인한 결과, 너무나도 조악하게 관리되고 있어 출근장부 자체에 신빙성을 부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대기업의 사장인 K씨의 아들은 아버지 회사의 한 하청업체에 병특 요원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그는 입사 이후 거의 출근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개인 사업체 일을 계속 해온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유명 벤처기업가인 나아무개씨의 경우는 그의 유명세 때문에 언론에까지 보도된 특이한 사례다. 그는 병특 요원으로 자신의 회사에서 자신을 스스로 채용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가중되자 공익근무요원으로 재입대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다. 국내 재벌가의 자제였던 K씨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5년간 근무한 뒤 2년 전 퇴사했는데, 놀랍게도 그 근무가 병역특례를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회장의 자제인 이 ‘황태자’가 과연 아버지의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 병특 요원인 그는 과장급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지난해 병특 업체로 지정된 한 중소기업의 관계자는 “2명의 병특 요원을 채용할 계획이 알려지자마자 열 군데가 넘는 곳으로부터 청탁이 들어왔다. 사업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기업의 임원들과 공무원도 포함되어 있어 무척 곤란했다. 병특 업체로 선정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해 초에 해외에서 밀수로 들여온 대마초와 해시시를 상습적으로 흡입해온 부유층 해외 유학파 자제 12명이 구속됐는데, 거기에는 병특 요원이 3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 지난해 경북의 한 제조업체의 대표는 병특 업체를 신청, 선정된 뒤 아들을 병특 요원으로 입사시키고는 출근카드를 허위로 조작하고 아들은 버젓이 해외유학을 내보내는 몰지각한 행각을 벌여 부패방지위원회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행각이 다른 벤처업체에서 몇 건 더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 간사는 “병특 요원도 엄밀히 말하면 군인 신분과 다름없다. 그들은 군대가 아닌 산업현장에서 군복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함부로 산업현장을 이탈하는 것은 탈영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데도 그와 같은 문제 인식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병특 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집중 제기되고, 특히 산업기능요원이 상류층 자제의 또다른 병역면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이를 단계적으로 줄여 2005년에 폐지키로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병특 폐지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이 제도는 오는 2012년까지 계속 연장키로 결정됐다.
병특 요원에 대한 철저한 선발과 관리·감시 기능이 이뤄지지 않는 한 병특 제도는 여전히 일부 부유층과 상류층의 합법적인 병역 면제 수단으로 국민적인 위화감을 조성시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