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박관용 의장, 최병렬 전 대표, 홍사덕 전 총무 | ||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와 홍사덕 전 총무,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유용태 원내대표, 김경재 의원, 박관용 국회의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탄핵안 가결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현재의 탄핵정국을 이끈 사람들이다.
야당 입장에선 헌정사 최초의 업적을 일궈낸 셈이지만, 반대편으로부턴 ‘갑신 6적’이란 이름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탄핵안 후폭풍에 가장 크게 시달리고 있는 6인방들.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17대 국회에는 어떤 모습으로 ‘생존’해 있을까.
일단 이들 6인방은 소신파답게 그다지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왕 밀어붙였으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다만 최병렬 전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예상보다 훨씬 심한 역풍”이라며 다소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한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탄핵안 표결 이후 가장 크게 시달린 사람 중 한 명이 박관용 국회의장이다. 박 의장은 경호권을 발동, 사실상 탄핵안 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회 인터넷 사이트에는 매일같이 수백 건의 항의 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지만 박 의장을 향한 글도 상당수에 달한다. 16대 국회를 끝으로 명예로운 정계은퇴를 생각했던 박 의장으로선 ‘난데없는 봉변’을 당하는 중이다.
박 의장은 그럼에도 자신의 행동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큰 업적으로 생각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박 의장은 국회의장 홈페이지에 “제게 소망이 있다면 입법부의 권능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한 의회인으로 기록되길 바랄뿐입니다”란 문구를 내걸어 놓았다. 박 의장이 경호권 발동을 위해 내세웠던 논리와 같은 것이다.
박 의장은 입법부의 권능을 바로잡기 위해 경호권을 발동했으며, 나름대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박 의장의 한 측근은 “정계은퇴를 예고해 놓은 박 의장이 무슨 눈치를 보고 행동하겠느냐”면서 “당당하게 소신껏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를 거부한 대통령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고, 국민여론도 달라지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왼쪽부터)조순형 대표,유용태 원내대표,김경재 의원 | ||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탄핵안 가결 이후 열린우리당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부산에서의 입지도 과거만큼 보장되기 어렵다.
탄핵안 가결 이전 기대했던 명예를 고스란히 품에 안기는 더욱더 어렵다. 적어도 국가지도자로 추앙받겠다는 꿈을 달성하기 어렵고, 정치적 대립의 한 당사자로 지목될 처지에 놓다.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도 탄핵안 가결에 그토록 앞장섰지만 개인적으론 빈털터리에 가까운 신세다. 가만 있으면 그냥 당선된다는 서울 강남갑을 버렸고, 비례대표 진출마저 불투명하다. 대표직도 3월23일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해 완전히 2선으로 후퇴하게 됐다.
최 전 대표의 측근들은 그가 총선 이후 6월 전대에서 복귀할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불투명하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어떤 모습일지 누구도 알 수 없으며, 현재로선 최 전 대표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 전 대표는 한때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졌지만 이젠 의원직도, 대표직도 잃고 야인으로 쓸쓸하게 16대 국회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다.
최 전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내가 생각했던 역풍보다 몇 배 이상”이라며 “그냥 돌파해야지 어떡하겠느냐”고 말했다. 소신에 변함은 없지만 막상 닥친 현실이 힘들다는 토로인 셈이다.
홍사덕 전 총무는 고양 일산갑에 출마했지만 역시 당선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수도권에 밀어닥친 거센 역풍탓에 열린우리당 한명숙 전 장관을 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홍 전 총무는 탄핵안 가결 이전만 해도 한 전 장관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왔지만 최근엔 상황이 역전됐다.
▲ 지난 3월12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박 의장은 이날 경호권을 발동하여 의장석을 점거한 의원들을 끌어내고 표결을 추진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홍 전 총무는 특히 최 전 대표마저 빠진 상태에서 탄핵안 가결의 모든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당내 강경파로 분류돼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고 있다. 원래 홍 전 총무의 이미지는 온건 합리주의자였다.
민주당 3인방의 고민은 훨씬 더 심하다. 조순형 대표는 대구 출마를 선언한 상태지만 사실상 ‘죽음의 전투’에 참여하는 셈이다. 민주당은 조성준 의원의 탈당 이후 지방자치단체장과 소장파 원외인사들이 잇따라 탈당하고 있다. 민주당의 당세는 최악의 상황이다.
조 대표는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 가능성도 높지 않지만, 당마저 추스르지 못할 경우 불명예스러운 정치 마감을 해야 할지 모른다. 조 대표의 얼굴에는 최근 웃음이 사라졌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유용태 원내대표 역시 지역구(서울 동작을)에서 당선을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열린우리당에서 현대카드 회장을 지낸 이계안씨를 후보로 내세웠는데, 현재와 같은 열린우리당 바람이 계속되는 한 당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김경재 의원도 서울 강북을에 출마할 예정이지만 당선을 낙관하기 어렵다. 강북을은 조 대표의 지역구였다는 점에서 후광을 기대했지만 지역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악의 경우 17대 국회에선 탄핵안 가결 주도 6인방 중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때 세상을 좌지우지했던 영웅호걸도 시대의 변화 앞에선 ‘바람 앞 촛불’에 불과한 것일까. 이들은 물리적 나이도 모두 60세를 넘겼다. 이들 중 누가 살아남아 탄핵안 가결의 정당성을 입증해줄지 주목되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