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녀들의 동창 찾기 앱으로 알려진 네이버 밴드가 3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임준선 기자
“졸업 이후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을 만나니 정말 기뻤다. 연락이 닿으면 얼굴 한 번 보고 싶은 게 당연하고 그게 몇 번 되풀이되니 다들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 친해졌다. 그런데 모두가 그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동창생을 이성으로 보기 시작하고 하나 둘 짝이 맺어지니 전체가 흔들렸다. 그렇게 불륜에 빠져드는 것이다.”
한때 밴드에 푹 빠져 매일같이 모임에 참석하며 지냈다는 김 아무개 씨(여·42)는 스스로가 “잠시 미쳤었던 것 같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김 씨는 “이제 여고 밴드 하나만 활동하고 있다. 여긴 남자들이 없어서 그런지 모임에 나가면 정말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하다. 차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봉사활동도 하며 보람 있게 지낸다. 하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밴드는 나쁜 길로 빠져들게끔 분위기가 조성됐다. ‘요즘 애인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바람피우면 가정에 더 충실하다’ ‘동창끼리는 불륜도 아니다’ 등 불륜을 합리화하려 했다. 그래도 동창들이 좋아 모임을 지속했는데 그중 한 친구가 결국 이혼 통보를 받는 걸 보고 뒤늦게야 정신 차리고 밴드에서 탈퇴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밴드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는 박 아무개 씨(여·43)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친구들과 몇 차례 만났는데 누군가 갑자기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다들 가족들이 있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10여 명의 친구들이 흔쾌히 가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배우자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들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며 “주부들은 여자들끼리 여행을 떠난다고 하고 남자들은 학회나 출장 핑계를 대고 참석했더라. 찝찝한 마음에 여행을 가진 않았는데 나중에 밴드에 올라온 후기 사진들을 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덥다며 거의 속옷차림으로 남녀가 뒤섞여 술을 마시고 뽀뽀하는 모습까지. 아무리 친구들이라지만 참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불륜에서 시작해 결국은 돈 문제로 이어져 우정이 금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밴드에서 동창생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자마자 초등학교 모임을 구성한 김 아무개 씨(47)는 “처음에는 번개 모임도 수시로 하고 옛날로 돌아간 것마냥 재밌게 지냈다. 그런데 격의 없이 지내다보니 6개월쯤 지나자 서로 말도 함부로 하게 되고 누군가 모임에 빠지면 험담까지 나왔다. 물론 불륜관계도 생겨났다. 개중엔 서로 돈 거래까지 하다 잘못돼 경찰에 고소를 하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친구도 있다. 이럴 바엔 다들 모르는 채로 지내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순수한 만남에서 시작된 모임이 왜 불륜의 길로 빠져드는 것일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싱글인 박 아무개 씨(43)는 “남자는 한 번 바람피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에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륜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대부분의 여자들은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기에 동창인 남자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젊으니 환상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술 한 잔까지 들어가면 경계심이 확 풀어진다. 남자들도 어릴 적 추억에 빠져들어 쉽게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돌싱이나 싱글이 한 명 끼어 있으면 삼각관계, 사각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특히 여자가 혼자면 그날 남자들끼리 눈치싸움이 장난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밴드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쏟아지자 자체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 밴드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정 아무개 씨(41)는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즉각적으로 퇴출을 시키는 등 여러 규칙을 만들었다. 또한 오프라인 모임은 무조건 부부동반으로 진행하거나 아예 가족들을 다 불러 야유회를 가는 식으로 한다. 불만을 품는 친구도 있었으나 강하게 나가니 그런 애들은 절로 빠지게 됐다. 물론 남녀가 둘이서 몰래 만나는 것까진 말릴 수 없으나 어쨌든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꿨더니 진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제2의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대체로 모임의 편이성을 위해 오픈한 곳이 많지만 일부 밴드모임의 경우 은밀한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해 ‘물’을 흐리는 것이다. 한 중년 직장인은 “이런 부작용 때문에 밴드에서 재회한 소중한 인연들마저 퇴색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