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전 대통령. | ||
구중궁궐 속에서 벌어진 밤의 향연은 어쩔 수 없이 연예계와 관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장안의 이름난 요정의 유명 마담이 있었다. 베일에 싸인 안가 내부를 벗기기 위한 각 언론사의 취재 경쟁은 치열했다.
그런 가운데서 <일요신문>과 자매지인 <우먼센스>가 연이어 심층 취재한 지난 88년부터 최근까지의 안가 관련 특종 퍼레이드는 단연 압권이었다. <일요신문> 취재진은 대통령 안가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관계자와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증언을 청취했고, 이는 숨겨진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당시의 보도 내용을 토대로 오늘날 이슈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안가의 실체에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 과연 그때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 M마담은 누구?
<일요신문>는 지난호 ‘안가 X파일 1탄’에서 박정희 정권이 궁정동 안가의 총성으로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에서 여전히 ‘안가 밀실 연회’가 계속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일요신문>의 끈질긴 추적을 통해 박 정권과 전 정권이 안가 밀실 연회에서 동일한 행태를 보인 이면에는 ‘M마담’이라는 화류계 거물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70년대 요정 문화가 꽃피우던 시절 M마담은 후암동과 연희동 등지에서 비밀 요정을 운영했던 당대 최고의 마담이었다. 3공의 궁정동 안가 연회 때 접대 여성들을 갖다대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중앙정보부 소속의 채홍사들에게 그녀는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했던 주요 공급원이었다. 항간에는 10·26 사건 당시 가수 심수봉씨 등 두 명의 여인을 공급한 이도 M마담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M마담은 3공에 이어 5공 정권에도 등장한다.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불러온 12·12 사태 당시 ‘반 신군부’ 장성인 정병주 특전사령관,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유인해서 술집에 붙잡아두는 쿠데타 작전에 M마담도 동원됐다. 그녀의 요정에는 이미 3공 시절부터 전두환 장군도 단골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역 군인 신분이었던 전씨가 요정을 출입하던 시기는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있던 77년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요정의 관계자는 전씨에 대해 “보스 기질이 강해 술자리에서 호령하기를 좋아했다. 재떨이에 술을 부어 마시기도 하는 등 호방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전씨의 술자리 모습은 최근의 다른 증언에서도 일치한다. 80년 당시 보안사 간부였던 한 장성 출신의 인사는 지난 95년 검찰 조사에서 “보안사령관 주최 골프 대회에서 우승했던 내게 전 사령관이 ‘장군이 술도 제대로 못마시느냐’며 독주를 연거푸 권하는 바람에 결국 그 술을 다 받아마시고 쓰러져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5공 초기 안가 연회에 참석한 바 있던 전 가수 L씨 또한 “당시 대통령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나 술을 권하는 모습에서 무척 호방한 기질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10·26 때 궁정동 안가에 처음 들어갔던 신재순씨 또한 M마담에 의해 스카우트(?)됐다. 당시 H대 연극영화과 3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신씨는 10·26 전날 친구를 따라 아르바이트 소개를 받으러 M마담 집에 처음 갔고, 거기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를 만났다.
신씨와 함께 안가에 들어왔던 가수 심씨 역시 자신의 책에서 M마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났던 심씨는 요정이나 레스토랑에서 노래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M마담을 알게 됐다고 한다. 70년대 당시 정·관·재계를 주무르는 3대 마담이 유명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는 M마담이었다는 것. 그녀의 후견인은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당시 3대 마담으로 알려진 인물 가운데 나머지 두 인물은 서교동의 또 다른 M마담과 한남동의 S마담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후견인은 각각 김재규 중정부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이었다고 한다. 박 실장과 김 부장 역시 궁정동 안가의 관리를 책임진 채홍사 관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 10·26 당시 궁정동 안가에 있었던 신재순씨(왼쪽)와 가수 심수봉씨가 그 해 12월15일 공판을 위해 육군본부로 걸어가고 있다. <보도사진연감80> | ||
당시 M마담의 주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심씨가 밝힌 한 가지 비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전씨는 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80년 8월 말 또는 9월 초에도 그녀의 연희동 요정을 직접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국의 대통령이 직접 비밀요정을 출입하는 이른바 ‘어가행차’를 한 셈이다.
2. 박선호의 증언
3공 궁정동 안가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엔 당시 채홍사 역할을 했던 박선호 과장의 증언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박씨는 당시 법정 진술에서는 “이것을 말하면 서울 시민들이 깜짝 놀란다.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관련되어 있다”고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와의 개별 면담에서는 마음 속에 담았던 내용을 술술 밝혔다.
그 내용은 <일요신문> 기자가 박씨의 변호인이었던 강아무개 변호사와 이아무개 변호사의 접견록을 통해 확인했다.
당시 한 변호사는 “박선호는 1백여 명 전후의 연예인이 ‘청와대’를 방문한 것으로 전했고 내 접견록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접견록을 보면 지금도 활동중인 연예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70년대 중반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이후 화려한 스타덤에 오른 C씨,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스크린을 장악했던 여배우 W씨, 70년대 육체파 영화배우로 소문났던 L씨, 눈매가 특히 매력적이었던 L씨, 뒤에 사업가로 변신한 C씨, 배우 K씨, 가수 L, H씨 등등이다”라고 전했다.
당시 변호사의 접견록에는 “KBS ○○○ 프로에 출연한 배우 △△△를 다음번에 부르라며 현재 활약중인 한 연예인을 지목했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10원 한푼도 주지 않으면서…”라며 불평을 쏟아냈던 박씨의 진술도 있었다.
또한 당시 박 대통령의 파트너는 꼭 두 명씩을 넣어서 좌우에 앉혔다고 한다. 한 명은 유명 연예인이고, 다른 한 명은 신인이거나 연예 지망생 여대생으로 했다는 것. 이럴 경우 박 대통령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둘 중 마음에 드는 여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고 한다.
3공 때 중정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한 영화감독의 증언도 나왔다. 김아무개 감독은 <우먼센스> 인터뷰에서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영화를 찍을 때였는데, 갑자기 차가 한 대 들어오더니 촬영중인 여배우를 데려가는 것이었다. 뭐하는 것이냐고 항의를 했더니 ‘국가 대사에 관계된 일인데, 이깟 촬영이 대수냐. 영화사 문 닫고 싶으냐’며 고압적인 태도였다. 여배우가 걱정스러워 스태프 한 명을 함께 보냈는데, 한참 후 그 스태프가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다리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후 그 여배우는 신인급에서 일약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로 급성장했다고 한다.
또 다른 영화인의 증언도 이어졌다. 유아무개씨는 “70년대 중반 안방극장의 인기를 독차지한 유부녀 탤런트가 있었는데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드라마 촬영 도중 갑자기 불려갔다. 이후 그녀는 상당히 초췌해진 모습으로 방송 활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으로 이민 가고 말았다. 부도덕한 권력은 애가 있는 유부녀까지 가만두지 않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3. 연예인들의 증언
3공의 궁정동 안가에 이어 5공에서는 삼청동 안가가 대표적인 연회 장소로 떠올랐다. 당초 이곳은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집기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술자리를 즐겼던 전 대통령은 외국의 귀빈을 접대하거나, 아랫사람들을 격려하는 비밀 연회를 자주 이곳에서 벌였다.
▲ 전두환 전 대통령. | ||
<일요신문> 취재진은 5공 정권이 교체된 직후인 88년 당시 삼청동 안가를 출입했던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5공의 안가 밀실 연회 모습을 최초로 적나라하게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의 술회에 따르면 자리 배석은 대개 호스트인 전 대통령이 가운데 앉고 그 맞은편에 주빈이 앉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좌우로 수행원들과 관계자들이 죽 앉는 식이라고 했다. 3공 연회가 주로 2~4명의 소규모 연회였다면, 5공 연회는 보통 10명 안팎의 중·대규모 연회가 주를 이루었다. 또한 3공 연회의 경우 대개 박 대통령에게 두 명의 여성이 시중을 들었던 반면, 5공 연회에서는 참석자 한 명씩 모두 여성 파트너가 정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여성들까지 보통 20명 정도의 대인원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3공과 5공에 걸쳐 모두 안가를 경험한 이에 따르면 “궁정동 연회의 분위기가 다소 은밀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였다면, 삼청동 연회는 개방적이면서도 흥겨운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전 대통령은 술자리를 이끄는 면에서도 박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청동 안가를 자주 찾았던 한 가수는 “외국의 귀빈들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전 대통령이 연회 시작 무렵에 우리 연예인들을 직접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한 가수는 대통령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 긴장되었던지 자꾸 노래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오히려 대통령이 그 가수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괜찮아. 여기선 연습 삼아 부르고, 나가서 잘하면 돼’라고 격려해 주며 어색한 분위기를 직접 바꾸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이 오픈된 연회 분위기와는 달리 당시 정가 일각에선 ‘권력에 유린된 여배우들’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소문 수준으로만 그쳤을 뿐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지는 않았다.
삼청동 안가의 연회는 6공에서도 이어진다. 5공 때만큼 빈번하지는 않았어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전 대통령은 주로 노래 듣기를 좋아했고, “뭐해? 어서 한잔씩들 들어요” 하고 술을 자주 권했던 반면, 노태우 대통령은 직접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노 대통령은 흘러간 가요에서 팝송 샹송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가 무척 다양했으며, 노래 실력 또한 빼어나 심지어는 초빙되어온 가수들이 긴장할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