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틸 대사는 ‘한인사회 전설’로 불리며 커리어를 쌓아 왔다. 1955년 서울에서 출생한 스틸 대사는 청소년 시기를 일본에서 보내다 1975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스틸 대사는 페퍼다인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 주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스틸 대사 인생을 바꾼 사건은 1992년 발생한 LA 폭동이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스틸 대사는 한인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공화당에 입당한 스틸 대사는 정치적 스텝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93년 LA 시장 선거에서 리처드 리오단 캠프에 합류했고, 리처드 리오단 시장이 선거에서 이겼다. 스틸 대사는 LA 소방국장, LA 카운티 아동가족위원장 등을 지낸 뒤 캘리포니아 주 공화당 의장을 지냈다.
LA 지역에서 내공을 다진 스틸 대사는 2006년 선출직으로 발돋움하며 정치 커리어 ‘퀀텀 점프’를 이뤄냈다. 스틸 대사는 2006년과 2010년 연이어 캘리포니아주 제3선거구서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당선됐다. 2014년과 2018년엔 오렌지카운티 제2구 슈퍼바이저로 선출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의원이면서 지역 행정 집행 권한을 가진 격의 위치다.
4년에 한 번씩 정치 인생에서 계단식 상승곡선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스틸 대사는 2020년 미국 연방하원의원선거 캘리포니아 제48구에서 과반득표하며 하원의원이 됐다. 2022년엔 캘리포니아 제45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정치 입문 이후 치른 6차례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2024년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스틸 대사는 49.9%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며 정치인생 첫 낙선의 쓴맛을 봤다. 낙선 이후 스틸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 2기 주한 미국대사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주한 미국대사 직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1년 6개월가량 비어 있었다. 외교가에선 길어지는 주한 미국대사 공백을 한미관계 이상기류 감지로 해석하는 시선도 존재했다.

스틸 대사는 “우리의 동맹은 전쟁 속에서 다져졌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들의 피로 굳건히 지켜졌다”면서 “오늘날 한미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과 협력해 우리의 견고한 동맹이 역내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동맹의 비전을 더욱 강력하고 안전하며 번영하는 동맹으로 함께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스틸 대사는 취임 후 한국에서 광폭행보에 돌입했다. 8월 1일 스틸 대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남대문시장에서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따뜻한 정과 활기, 정겨운 풍경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면서 남대문시장 상인과 함께 찍은 ‘호떡 인증샷’을 올렸다.

외교가에선 스틸 대사가 한국에 대한 추억을 매개체로 외교적 거리감을 좁히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외교가 인사는 “스틸 대사가 ‘한국 친화 행보’를 보이는 이면엔 해결해야 할 중량감 있는 한미 현안들이 있다”면서 “쿠팡 관련 통상 현안이나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및 우라늄 농축 등 주요 이슈에 대한 가교 역할을 스틸 대사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스틸 대사가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만큼, 임기 초반부터 한국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미국 내부에서 나왔던 강경한 정치 색채에 대한 우려까지 불식시키는 데에도 ‘정서적 유대감’이 열쇠가 될 것이란 판단을 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