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빈 검찰총장(왼쪽), 허준영 경찰청장 | ||
경찰은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권 독립’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이상 이번에야말로 해방 이후 계속된 검찰의 ‘지배’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라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들어 공직자부패수사처 설립 등으로 가뜩이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검찰은 경찰에게 수사권마저 빼앗기면 설 땅이 없다는 생각에 절박한 심정으로 ‘싸움’에 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검·경 양측의 다툼은 수장들 간의 ‘말싸움’에서부터 민간 전문가들을 동원한 대리전에, 기자들을 상대로 한 교묘한 ‘여론 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검·경은 지난해 9월 수사권조정 협의체를 출범시키며 5주 안에 논의를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검·경은 지난해 12월 수사권조정 민간자문위까지 구성, 쟁점 부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생산적인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자문위에 참여하는 민간위원 12명이 각각 6명씩 검찰과 경찰에서 추천한 인사들이고, 이들은 자신들이 대리하는 쪽의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양측의 물밑 대립은 지난 11일 열린 공청회에서 표면화됐다. 당시 공청회에 패널로 참석한 양측 자문위원들은 물론 청중으로 참석한 검·경 관계자들까지 인신공격성 ‘막말’이 오가는 공방을 벌인 것.
이날 공방의 포문을 연 것은 검·경 양측의 수장들이었고 주제는 ‘인권’ 문제였다. 먼저 인사말을 한 김종빈 검찰총장은 “그동안 수사 현실에서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며 은근히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겨냥했다. 이에 대해 허준영 경찰청장은 “때로는 검사 지휘 때문에 장례절차가 지연된다고 항의하는 유족들을 보며 안타까워해야만 했다”며 맞받아쳤다.
인권 논란은 패널들 간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검찰측의 김주덕 변호사는 미리 배포한 토론자료를 통해 “경찰 수사에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단정, 구속하려 하는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많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검사의 수사지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측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경찰에게 ‘박종철씨 치사 사건’이 있었다면 검찰에게는 ‘서울지검의 피의자 폭행 치사 사건’이 있었다”며 검찰이 경찰보다 인권 수호에 앞장선다는 논리를 반박했다.
양측의 인권 논란은 바로 얼마 전 수장들 간의 ‘소금론’으로 이미 한 차례 전초전을 치른 상태였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지난 2일 퇴임사에서 “짠맛을 잃은 소금은 쓸 데가 없다”며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척결하는 검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수사권 조정 논의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허준영 경찰청장은 “소금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굵은 소금과 가는 소금, 맛소금 등 여러 가지가 있다”며 “검찰이 인권보호를 강조하고 있는데, 검찰이 그동안 정녕 인권보호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궁금하다”고 반박했다.
패널들 간의 논쟁은 다시 일반 청중들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방청석에 있던 한 검찰 인사가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일본은 경찰이 유흥업소 업주, 야쿠자 등과 유착, 범인 검거율이 20%대로 떨어졌다”고 주장하자 경찰측 방청객들 사이에서 “우리가 일본경찰이냐. 당신이 일본검사야”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방청석의 한 경찰관은 “살인을 지시한 검사가 있는가 하면 음주단속에 걸린 사람을 풀어주도록 압력을 가한 검사도 있었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날 공청회는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막말과 고성 속에 난장판으로 끝나버렸다.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기 위해 언론을 ‘포섭’하려는 싸움도 치열하다. 지난해 12월 민간자문위가 구성될 때 검찰측은 ‘사실상 양측이 합의에 이르렀다’고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당시 양측은 일부 경미한 범죄에 대해 ‘경찰에 수사자율권을 주되 검찰이 언제든지 개입할 여지는 열어놓자’는 등의 일부 사안에 대해 합의는 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는 양측간 최대 쟁점인 수사의 주체와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195·196조의 처리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검찰로서는 일부 수사자율권을 경찰에게 주는 식으로 논의를 종결하고 싶은 생각에 마치 조정이 거의 끝난 것처럼 언론에 설명을 한 것. 이에 대해 경찰은 검찰이 형소법 개정을 양보하지 않는 상태에서 양측의 조정은 한 치의 진전도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어 경찰은 마치 검찰이 경찰측 요구대로 형소법을 개정하는 데 어느 정도 동의했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벌여 관련 기사들이 나갔고 이번에는 검찰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검찰은 11일 청문회에 앞서 기자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하는 자문위원들의 주장은 10여 쪽으로 요약·정리한 반면 경찰측 자문위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는 80쪽 넘게 작성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반격’했다.
그러자 경찰측은 공청회가 끝나자 자문위원들 간에 경찰측 인사인 조국 교수의 조정안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는 얘기를 흘렸고 이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검찰이 사실무근이라며 펄쩍펄쩍 뛰는 상황도 연출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은 언론사의 기자들끼리도 경찰에 출입하느냐, 검찰에 출입하느냐에 따라 의견 대립이 벌어지는 상황. 한 일간지의 검찰 출입 기자는 “경찰청 출입기자와 토론을 벌였는데 도저히 말이 안 통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검·경 양측의 이전투구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경 모두 겉으로는 국민들을 위한 수사권 조정을 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검·경 양측은 18일부터 민간자문위를 재개해 합의문 작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처럼 양측의 대립이 감정싸움으로 이어진 상태에서는 설령 어떤 식으로 결론을 서둘러 낸다 해도 손해를 봤다고 판단하는 측의 반발은 거세게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