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방한한 죠셉 카빌라 콩고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 ||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일 국회 건교위에서 “NSC가 콩고에서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NSC는 보도 자료를 통해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겸 통일부 장관)이 콩고에 가스공사와 석유공사, NSC 직원을 파견해 유전개발을 벌이고 있다’는 안택수 의원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전혀 확인하지 않은 허위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NSC가 콩고에서 유전개발을 추진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일요신문>이 입수한 NSC 공문을 보면, NSC가 콩고의 유전개발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황을 엿볼 수 있다. NSC는 지난 1월18일과 2월4일, 2월23일 등 세 차례 유관부처 회의를 주관했다. 당시 회의에는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도 참석, 콩고 유전개발과 관련해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죠셉 카빌라 콩고 대통령은 지난 3월16일부터 20일까지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콩고의 경제재건과 자원개발을 위해 우리 기업의 진출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투자보장협정’과 ‘자원협력약정’을 체결했다
카빌라 대통령이 방한한 과정에 대해 NSC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주한 콩고대사가 ‘카빌라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이에 우리 정부에선 지난해 8월 ‘좋은 시기에 방한하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면서 방한 시기가 올 3월로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카빌라 대통령 방한 추진 과정에 엄삼탁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안택수 의원은 “정동영 장관이 엄삼탁 콩고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콩고 자원 개발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보면 사할린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과 콩고 유전개발 사업은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업은 NSC가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엄 회장이 우리 정부와 콩고의 가교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 회장은 어떻게 해서 콩고 대통령의 특보를 맡게 된 것일까. 정치권의 한 인사는 “지난 90년대 초 엄 회장이 안기부(옛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외교관이었던 K씨를 알게 됐다. K씨는 엄 회장을 카빌라 대통령에게 소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카빌라 대통령과 K씨가 엄 회장에게 ‘콩고는 대량의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콩고 재건사업에 나서면 엄청난 투자효과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 회장에게 카빌라 대통령의 방한과 우리 기업의 투자유치를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엄 회장은 카빌라 대통령의 방한이 성사될 단계가 되면 특보로 임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방한이 성사되면서 특보로 임명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입수한 NSC 공문에도 “카빌라 대통령은 엄삼탁 콩고 대통령 특보를 통해 콩고 국책사업과 천연자원개발에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적시했다. 엄 회장이 콩고의 카빌라 대통령 방한과 천연자원개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엄 회장은 새정치국민회의와 민주당 시절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정동영 장관에게 카빌라 대통령의 방한 의사를 처음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나서 지난해 6월 카빌라 대통령의 친서가 주한 콩고대사에 의해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는 전언. 이와 관련해서 엄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런데 안택수 의원은 “정 장관이 작년 말 콩고 유전개발 사업 참여를 목적으로 NSC, 석유공사, 가스공사 관계자 10여 명을 현지에 파견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그동안 국내 기업이 외국 투자를 먼저 결정하고 산자부 등 관련부처에 협조를 부탁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정부에서 먼저 그것도 관련부처도 아닌 NSC에서 직원을 파견해 투자가치를 판단하는 현지조사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했던 NSC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안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NSC 소속인 나를 포함해 외교부 정주헌 대사(단장), 국정원, 건교부, KOIKA(한국국제협력단), 광업진흥공사 관계자 등 8명이 지난 1월25일부터 2월1일까지 콩고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 NSC의 ‘콩고’ 관련 공문. | ||
하지만 카빌라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콩고는 구리와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과 석유를 풍부하게 보유한 나라로 내전 이후 정치적 안정을 이루며 6%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콩고를 ‘석유를 풍부하게 보유한 나라’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NSC 관계자는 “유전이 실제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며 “사실 우리의 관심은 (콩고의) 동광(銅鑛,구리광산)에 있다. 그리고 (안 의원의 주장과 달리) 석유공사나 가스공사 관계자는 현지조사단에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도 “석유공사는 콩고 조사단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NSC 주관으로 콩고 현지조사단 파견을 전후해서 세 차례에 걸쳐 유관부처 회의가 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 파견 전인 1월18일 ‘콩고 개발사업 조사단 파견 관련 유관부처 회의’와 조사단이 귀국한 이후인 2월4일 ‘콩고 조사단 방문결과 평가회의’, 2월23일 ‘콩고 조사단 후속조치 대책회의’ 등이 바로 그것. NSC 회의실에서 열린 세 차례 회의에는 석유공사 관계자가 빠짐없이 참석했다.
1월18일 회의는 NSC 정책조정실장이 주재했으며, 외교부와 산자부, 건교부, 재경부, 국정원, KOIKA, 광업진흥공사, 석유공사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선 지난 1월13일 열린 NSC 상임위에서 논의된 정부의 콩고 현지 조사단 파견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됐다. 당시 석유공사는 “콩고는 대부분 밀림지역으로 돼 있어 인력과 장비의 접근이 용이치 않아 (유전) 탐사에 애로사항이 예측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지조사단이 귀국한 이후인 2월4일 회의에선 콩고 시찰 결과와 콩고의 정치 경제 현황, 우리 기업 진출 여건과 진출 추진 전략, 콩고에 대한 유·무상 지원 계획 등을 NSC측에서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2월23일 회의에선 ▲콩고 경제·자원 협력 전략과 추진 계획 ▲유·무상 지원 재원 확보 방안과 우리 기업의 콩고사업 참여 방안 ▲3월 카빌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대책(경제·자원협력 분야) ▲2월 콩고 TF팀 방한시 협의사항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석유공사측 관계자는 “(콩고는) 인프라가 열악하고 내륙분지에 구체적인 탐사자료가 없어 현 단계에서 참여하기가 곤란하며,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콩고측에 기초자료 제공을 요청하고 (석유)공사가 검토한 후에 유망하다고 인정되면 기초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석유공사는 콩고의 유전개발 사업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NSC가 주관한 세 차례 회의에 석유공사 관계자가 참석했고, 실제로 유전 개발과 관련해서도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NSC가 “NSC와 ‘유전사업’을 연결시키는 것은 황당무계한 억지 주장”이라고 역설한 대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NSC의 유관부처 회의에 참석했던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회의 당시 콩고의 유전과 광물 개발 사업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추진 계획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NSC가 콩고 유전개발 사업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우리 정부가 콩고에 5백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NSC 관계자는 “콩고가 우리에게 5백억달러를 투자해달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콩고에 투자하면 그 정도를 콩고에서 벌어갈 수 있다는 얘기”라며 ‘5백억달러 투자설’을 일축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