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찮은 뭉칫돈 어디로 흘러갔나
고 전 회장이 자취를 감춘 지 5개월. 아직도 그의 소재는 오리무중이다. 검찰과 재판부도 속수무책. 사실상 수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고 전 회장의 소재에 대한 몇 가지 소문만 나돌고 있을 뿐, 사건 자체가 유야무야 잊혀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비록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의 개인 비리였지만 이 사건은 발생 당시 상당한 주목을 끈 바 있다. 단지 횡령 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지역 정치와 경제의 중심적 리더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수십억원을 도박으로 날렸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 정가에서는 큰 화젯거리였다.
특히 고 전 회장이 지난해 여당에 입당해 울산·경남 선거대책 본부장을 맡아온 시점과 수십억원의 상공회의소 공금을 유용한 시점이 겹친다는 사실은 ‘전국적’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아젠다’였다. 게다가 고 전 회장이 운영하던 회사가 고 전 회장이 40억이 아닌, 무려 3백33억원의 공금을 횡령했다고 검찰에 고소했으니 돈의 쓰임새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고 전 회장이 울산지검에 긴급 체포된 것은 지난해 8월3일. 울산지검이 그를 잡아들인 것은 고 전 회장을 체포하기 한 달여 전에 구속한 불법 고리 대금업자의 진술 때문이었다. 7월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서 약 1백억원대 불법 대부 영업을 한 K전업 대표이사 성아무개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 회장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계좌 추적을 통해 혐의 사실을 입증한 것이었다.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고 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고 전 회장은 무려 7회에 걸쳐 울산상공회의소 소유 예금 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2003년 6월 여유자금 관리 명목으로 울산상공회의소 명의 K은행 계좌에서 5억원을 인출하면서 ‘재미’를 붙인 고 전 회장은 그 해 11월24일 근무자 퇴직금 명목 등으로 6억원, 12월4일 사업개발 준비금조로 10억원을 인출하는 등 총 38억9천7백여만원을 빼냈다. 또한 이를 메우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인 (주)한주의 계좌에서 40억원을 횡령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게다가 2003년 9월께 울산 석유화학단지 내의 전력수급시설 개선공사를 수주 받게 해달라는 성씨에게서 두 차례에 걸쳐 10억원을 받은 사실까지 확인돼 업무상 배임 혐의까지 추가됐다. 검찰의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된 것은 지난해 8월12일. 재판을 받게 된 고 전 회장은 8월18일 심장병 증세가 악화돼 결국 9월16일 보증금 1억원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고 전 회장이 자취를 감춘 것은 10월22일 법정에 출석한 뒤부터다. 급기야 선고 기일이 11월16일에서 12월7일로 연기됐으나 고 전 회장은 좀처럼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이 뒤늦게 12월6일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으나 그 후 해외로 나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4월30일 현재까지 고 전 회장의 소재는 전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강원도 원주우체국 CCTV에 잡힌 것이 유일한 흔적이다.
검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통화 내역까지 조사했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이혼한 부인과 세 아들도 고 전 회장의 소재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려는 (주)한주측도 고 전 회장의 소재 파악에 주력하다 현재는 포기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일단 ‘일본 밀항설’에 무게를 실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서울체류설’, ‘자살설’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 지역 정가에서는 고 전 회장이 이번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건설업자 김아무개씨와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고 전 회장이 김씨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고, 김씨가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데서 비롯된 추정이다. 고 전 회장이 잠적하기 직전 지인으로부터 5억원을 급하게 빌린 사실, 부인 김아무개씨가 과거 일본 도쿄에 거주했다는 점도 ‘일본 체류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자살설’에 대해서도 일말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고 전 회장이 잠적 직후 친구와 변호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에서 지난해 자살을 시도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나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처럼 고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하나둘씩 흘러나오고 있다.
고 전 회장의 변호인인 최상관 변호사는 문제의 편지에 대해 “선고 공판이 있기 전주 토요일에 고 전 회장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강에서 죽고 싶은데 시끄러워질 것 같다. 그러니 경치 좋은 산이나 바다에서 동물 밥이 되겠다. 찾지 말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40억원을 갚겠다고 공언한 부분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허탈감에 빠져 잠적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 그러나 고 전 회장이 자살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고 전 회장이 나타나면 변론을 계속 맡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 1월4일 재판부가 선고 연기를 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를 재개했지만, 그다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게 검찰 주변 관계자들의 말이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본 기소 사건에, 지난 11월23일 (주)한주가 고 전 회장이 횡령한 돈은 3백33억원이라며 고 전 회장과 부인을 서울 서부지검에 고소한 사건까지 넘겨받아 추가 혐의를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주요 피의자인 고 전 회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임 검사인 김희경 검사는 “고 전 회장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는 어떠한 내용도 말할 수 없다”라며 정가에서 일었던 횡령자금의 정치권 유입 여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답을 아꼈다.
고 전 회장은 대체 왜 수십 년간 쌓아온 지역 기반을 모두 포기하고 기약없는 잠적의 길을 택한 걸까. ‘횡령’ 혐의를 받는 3백33억원의 행방과 함께 고 전 회장의 소재, 출금 조치가 늦어진 연유, 고 전 회장이 과연 실제로 불과 몇 달 사이에 수십억원을 탕진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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