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검찰 힘빼자는 얘기뿐” 분통
검란이 불어닥칠 때마다 항상 주목받는 곳은 검찰의 내부 통신망. 특히 검사들만 볼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는 자체 게시판은 외부에 함부로 표출하고 싶지 않은 검사들의 속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소 폐쇄적인 검찰의 속마음을 읽기 위해 취재진들은 항상 이 내부 게시판을 주목해 왔다. <일요신문> 취재진이 ‘외부인 출입금지’의 포위망을 뚫고 조심스럽게 이 내부 게시판을 들어가봤다.
대구지검의 K검사는 “밤늦은 시간에 어둑한 골목길에서 어느 유력 집안의 아들이 평소 사귀던 여성을 강간하려다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여성의 피해 진술을 제대로 듣지 않고 강간이 아닌 단순 폭력 사건으로 결론짓고 검찰로 사건을 보냈다. 지금까지라면 검사는 송치받기 전에 미리 검토하여 잘못된 죄명을 바로잡고 그에 따른 보완 수사를 지휘하여 사안의 실체를 명확히 하도록 했다.
하지만 수사지휘권이 없어지면 그런 지휘를 할 수 없게 된다. 경찰 수사에 대한 이의제기 사건이 한 해 수십만 건에 이르고, 경찰 의견이 검찰에서 뒤바뀐 사건도 16만여 건이나 되지만 앞으로는 경찰에서 수사 중이면 수사지휘를 할 수 없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아무리 미진하고 법적용조차 잘못됐다고 해도 이젠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 국민의 거의 모든 일상에 관여할 수 있는 15만 경찰이 견제받지 않는 수사권한을 행사한다면 장차 이 나라는 경찰국가가 되어 어느 누구도 경찰의 정보와 수사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K검사는 “모든 논의가 마치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한 것이고, 검찰은 이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도될 뿐, 그 와중에 피해를 보는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본 냉정한 분석이 보도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통탄했다.
그는 “이 땅에 제대로 된 언론이 없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사개추위 개정 증거 법안이 시행됐다고 가정하고, 모의재판을 하여 정말 나쁜 죄인이 황당한 증거법 때문에 무죄를 받는 상황을 보여주면 현재 검찰의 주장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지켜주기 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럴 것도 없이 실제 유죄 확정된 수사기록 중 개정안대로 하면 무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는 주요 범죄 사례를 한 1백건만 찾아내서 요약본을 만들어 전달하고, 과연 그런 사안들이 부당하게 유죄가 난 것인지 또는 개정안에서도 유죄가 날 수 있는 사안들인지 토론해 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경찰에 대한 반감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인해 갈수록 파국을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조직의 일원으로 관련 기사를 접하고는 현직 경찰이 운영하는 경찰전문포털사이트에 올라 있는 내용을 보니 한편으로는 답답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경찰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경계를 촉구하는 글도 상당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내용을 구구절절 비판하려면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다”며 대검찰청 Y검사는 직격탄을 퍼부었다. 그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수사기관의 조사결과를 휴지로 만들고 법정에서 새로 수사를 하는 것이 공판중심주의라고 착각한 기형적 법원중심 시스템이다.
또한 법정에서 허위 진술하는 피고인에게 한없는 은혜와 혜택을 베풀어주는 사법시스템 도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술밖에 없는 부정부패 수사는 물 건너갔다. 더 악평을 하면 피고인은 변호인 옆에 앉아 희희낙락하고 불쌍한 피해자만 법정에 세워놓고 들들 볶는 피고인 중심의 형사소송절차”라고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또 “개혁과 인권이라는 바람에 편승하여 기형적인 사법제도의 도입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정말 국민 앞에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검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사법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어영부영 수사권을 가져가려는 법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검찰의 한 검사는 “사개추위의 안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어떤지는 시험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든 급작스런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은 너무 많은 시험을 한꺼번에 치르고 있다. 한 사람의 치적을 위해 국민들이 시험당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과연 그래도 국민들이 원한다면 그때에는 승복해야 하겠지만, 호도된 여론을 등에 업고, 그나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지주 중 하나인 우리의 이빨과 발톱을 빼내려는 기획된 시도는 마땅히 저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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