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존 F 케네디의 생일파티에서 먼로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난 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
사실 케네디 가문의 영화와 여배우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는 영화산업에 진출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글로리아 스완슨과 진한 스캔들을 내기도 했다.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존은 킴 노박, 앤지 디킨슨 같은 금발 미녀 배우들과 종종 어울렸고, <오즈의 마법사>(1939)의 도로시로 유명한 주디 갤런드는 동생 로버트와 친했으며, 무성영화 시절의 전설인 그레타 가르보는 종종 백악관 만찬에 초대되곤 했다. 존과 로버트 형제의 삶에서 여배우는 은막의 스타가 아니라 일상의 친구였고 파티 손님이었으며 더 나아가 섹스 파트너였다.
케네디 형제와 먼로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거쳐야 할 이름은 바로 ‘프랭크 시내트라’다.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 생활이 파경으로 치닫던 1960년, 먼로는 시내트라와 연인처럼 지낸다. 당시 시내트라는 이른바 ‘브랫팩’이라고 불리는 스타들과 어울리며 진탕 즐기곤 했는데, 그 멤버 중 바로 피터 로포드가 있었다. 패트리샤 케네디의 남편인 로포드는 종종 왕성한 성욕을 지닌 존 F. 케네디에게 여배우를 연결해주곤 했는데, 먼로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공식적 만남은 1960년 7월, 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수락하는 전당대회에서였고 이후 여러 파티와 로포드의 집에서 먼로는 케네디와 만났다.
먼로의 미완성 유작
마릴린 먼로와 대통령 존 F. 케네디 그리고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사이의 관계는 미묘했다. 존에게 먼로는 섹스 파트너였다. 먼로는 지인들에게 존과의 관계를 종종 적나라하게 이야기했는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존은 마릴린과의 섹스에서 애무나 전희도 없이 직접 삽입으로 들어가곤 했다고 한다. 한편 로버트는 진지했다. 마릴린 먼로를 일정 정도 연인으로 여겼고, 변장을 하고 길거리 데이트를 즐긴 적도 있었다. 아직 두 형제가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되기 전인 1960년엔 그들의 관계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선 이후인 1961년, 조금씩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FBI나 CIA의 은밀한 조사가 시작되며 먼로는 위협적 존재가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먼로는 영부인을 꿈꾸었다고도 하는데, 이 얘기가 사실이 아니더라고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과 최고의 권력자가 섹슈얼한 관계라는 건 언젠가는 터질 뇌관 같았다. 결국 로버트는 형과 자신의 가문을 위해 먼로와의 관계를 끊도록 조치했다.
이후 먼로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버림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인이던 프랭크 시내트라마저 먼로를 버리고 젊은 여배우와 결혼하자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다. 피터 로포드는 우울증 때문에 먼로에게 어떤 돌발적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집 근처인 브렌트우드로 그녀를 이사하도록 했다. 주치의인 랠프 그린슨에겐 먼로의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것이 풀타임 업무가 되었고, 24시간 감시를 위해 유니스 머레이라는 가정부를 고용해 먼로 곁에 있도록 했으며, 머레이는 매일 그린슨에게 먼로의 상태를 보고했다.
주치의 랠프 그린슨
먼로와 케네디와의 마지막 추억은 1962년 5월 19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 파티였다. 여기서 먼로는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특유의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마치 대중 앞에서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듯한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약 3개월 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금씩 FBI 기밀문서나 감춰졌던 자료가 공개되면서, 먼로와 케네디 형제의 관계가 의외로 심각했으며, 한때 두 형제는 먼로와 결혼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마음이 없었고, 음모이론가들은 대통령과 법무장관 그리고 ‘뚜쟁이’였던 피터 로포드와 주치의인 닥터 그린슨이 공모해서 먼로를 죽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올해로 사망 52주년을 맞이하는 마릴린 먼로. 언제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을까? 그때까지는 여전히 의혹과 소문만 무성할 듯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