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까웠던 분위기 침체
주저앉은 한국축구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한국과 알제리의 경기가 열린 23일 오전(한국시간) 손흥민 등 선수들이 2 대 4로 완패한 후 허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 출격까지 한 달여 앞둔 5월 12일부터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소집 훈련을 시작한 태극전사들은 소집 첫날, 피해자들의 무사 귀환과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정장 옷깃에 달고 파주NFC에 입소했다. 이는 결코 단순 이벤트가 아니었다. 축구 스타라는 공인의 신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마치 국운 전체를 짊어진 듯한 상황에 부담감은 점차 커져갔다. 일부 예비 엔트리까지 추가시켜 모두 26명의 선수들을 경쟁시킨 4년 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할 때와는 달리 최종엔트리만 모아놓고 팀 훈련을 진행하면서 생존 경쟁이라는 어려움은 피할 수 있었지만 월드컵을 통해 고국에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는, 가슴 짓누르는 무게감까지 피할 도리는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더욱이 외부적인 불신과도 싸워야 했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 훨씬 적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최종엔트리 선발에 대한 일부 축구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최근 들어 유럽 무대에서 활약해온 해외 리거 중심의 구도가 이어지자 대표팀에 파벌이 나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는 불신의 시발이기도 했다. 대표팀 관리 책임을 지닌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은 (당연히!!)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에 어느 정도 균열이 생겼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홍 감독의 대표팀 운영의 기본 모토는 ‘원(One·하나)’이었다. 당연했다. 모든 선수들이 하나의 팀이 돼 같은 정신으로 동일한 목표를 향해 함께 정진하자는 의미였다. 저마다 내로라하는 최고 스타플레이어들이라 조금이라도 엇갈리면 내부적인 균열이 생길 수 있었다. 어느 팀 감독이든, 모두가 ‘희생’과 ‘팀’을 강조하지만 대표팀에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었다.
기성용은 튀니지와의 평가전 때 국민의례에서 왼손경례를 해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선수들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선수의 리더가 없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역대 월드컵 대표팀 가운데 가장 젊은 선수들인데다 많은 이들이 U-20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각급 연령별 대회를 함께 거쳐 오면서 허물없이 편안한 관계를 형성해온 터라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격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긴장도 차츰 풀렸다. 특히 가장 부담스러운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열린 러시아와 대회 예선 1차전(1-1 무승부)을 마치면서 “우리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던 의문은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였다.
# 컨디션 전쟁
이청용
하지만 홍명보호의 컨디션 사이클은 외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제각각이던 선수들의 컨디션은 월드컵을 대비한 마지막 전지훈련지로 삼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완전히 바닥을 친 듯했다.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 유럽파는 갓 시즌을 마친 터였고, 일부 국내파의 경우는 유독 혹독한 스케줄을 소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대표팀은 유럽파에는 휴식과 함께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대회까지 가져가도록 연장하는데 초점을 뒀고, 국내파와 일본 J리거, 중국 슈퍼리거 등에게는 회복에 포커스를 뒀다.
하지만 지나치게 다른 상황 탓일까. 마이애미에서의 가나 평가전은 최악에 가까웠다. 남아공 대회 직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벨라루스 평가전에서 졸전을 한 당시 ‘허정무호’는 이어진 ‘세계 최강’ 스페인 평가전을 통해 곧바로 명예를 회복했고 자신감까지 되살릴 수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부상 변수도 대표팀 주변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유독 수비라인에서 출혈이 심했다. 홍명보호가 출범한 이래 사실상 붙박이 왼쪽 풀백이던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가 부상에서 끝내 회복되지 못해 마이애미 출국 직전, 봉와직염 부상에서 갓 회복된 박주호(마인츠05)와 교체됐고, 중앙수비수로 ‘제2의 홍명보’란 닉네임을 가진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마저 왼쪽 발등 부상을 입어 100%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해 걱정을 낳았다.
아니나 다를까. 동료들보다 훈련량이 부족했던 홍정호는 러시아전에 출격했지만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고 후반 중반 교체돼 아쉬움을 남겼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의 대체 자원이었던 미드필더 하대성(베이징궈안)도 러시아전 직전 왼쪽 발목을 다쳐 공식 훈련을 채 소화하지 못하고 벤치로 나와야 했다.
홍 감독은 선수 선발에서 자신의 원칙을 깨면서까지 해외파에 지나친 수혜를 줘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그래서 대표팀이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포스 도 이구아수에 도착했을 때부터 대표팀을 전담하는 취재진이 가장 궁금해 하고, 줄곧 했던 질문이 바로 선수들의 체력 상태와 컨디션 회복 여부였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벌어졌다. 한 방송사가 대표팀이 알제리와 2차전을 준비하던 시점에 브라질 현장발로 ‘이청용, 피로골절 우려’ 보도를 터뜨린 탓이다. 명백한 오보였다. 당시 이청용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러시아전 직후 하루 팀 훈련에 모두 동참하지 않고 중간에 빠져나와서인데, 일각에선 해당 언론이 ‘피로누적’을 ‘피로골절’로 오해한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왔다. 이에 홍명보 감독은 단호했다. “제대로 알고 보도를 하라”는 뉘앙스의 강경 발언까지 이례적으로 남겼다. 자칫 뒤숭숭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다잡기 위함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는 “체력에는 사이클이 있다. 낮아졌다가도 다시 올라가는 시점, 완벽한 몸이 되는 시점까지 있다. 우린 러시아와 대회 첫 판까지 최적의 컨디션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선수들의 몸 상태는 금세 회복됐다. 어쩌면 컨디션 조절은 시점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한국과 일본 등 확률 게임에서 예선 통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뒤지는 국가들은 첫 경기에 올인하는 경향이 크지만 유럽과 남미 등 세계 정상을 꿈꿀 수 있는 후보국들은 대회를 진행할수록 더욱 몸을 최적화시켜가는 데 주안점을 둔다. 다만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생각해왔던 선수들의 ‘컨디션 최적화’ 시점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으니 말이다.
브라질 이구아수·상파울루=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비공개 훈련 왜 잦았나 평가전 때마다 등번호 교체 굳이 그럴 것까진… 홍명보호의 브라질월드컵 여정을 보면 유독 ‘비공개 훈련’이 잦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경기를 앞두고 1회 이상 전면 비공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 대표팀의 경우에는 규정 외에도 비공개 훈련을 종종 활용했다. 대표팀 등번호 ‘16번’을 배정받은 기성용은 그리스와의 평가전 땐 14번을, 가나와 평가전 땐 7번을 달았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솔직히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하고, 국내 안팎에 소식을 전달해야 할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달갑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비공개 훈련에는 아주 간단한 스탠딩 인터뷰(취재진 앞에 세워놓고 하는 인터뷰)조차 대부분 생략되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끊임없이, 또 하나하나 기삿거리를 찾아내야 하는 기자들은 이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다. 이밖에도 FIFA는 경기 하루 전(D-1) 공식 훈련에도 초반 15분만 공개한 뒤 이후 내용을 비밀에 부친다거나 아예 처음부터 모든 훈련 장면을 공개하는 걸 자율에 맡겼지만 당연히 홍명보호는 전자를 택했다. 파주NFC에서부터 두어 차례 비공개 훈련을 했던 대표팀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이틀 연속으로 비공개 훈련을 진행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FIFA 규정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는 철저하게 대표팀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다. 월드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는 더욱 훈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기자들은 아이템 고갈로 이어지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2-4로 완패한 알제리전까지는 홍명보호에 아주 철저하게 협조를 했다. 훈련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금이라도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담금질을 하고픈 대표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면 어느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대표팀이 조금이라도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강했다. 출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힘들더라도 대표팀 성적이 좋다면 이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 했다. 물론 대표팀에게 비공개 훈련의 시간은 굉장히 소중했다. 상대국이 누구든 필승 해법 찾기에 주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이구아수에서의 훈련은 초반부터 피지컬을 끌어올리는 한편, 세부 전술 훈련이 병행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축구의 승리 공식인 골을 넣을 수 있는 방법, 실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두루 섞어놓고 담금질을 했다. 물론 비공개 훈련의 단골 메뉴인 세트피스 연습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구아수의 메인 훈련장인 플라멩고 스타디움에는 관중석을 겸한 메인스탠드를 제외한 나머지 3개면에 철조망에 긴 장막이 둘러져 있어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게끔 했다. 물론 한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훈련장에는 팬 공개 등 이례적인 행사들을 제외하면 역시 외신 기자들은 물론, 외부에서 대표팀을 지켜보는 건 불가능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홍명보호는 평가전 때마다 선수들의 등번호를 바꿨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의미가 없었다. 이구아수에는 브라질 지역 언론 관계자 이외에는 외신들이 전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한국 대표팀의 훈련장에 외국 기자가 등장한 건 러시아전이 열린 브라질 쿠이아바에서였다. 역시 자국 대표팀의 비공개 훈련으로 취재에 어려움을 겪던 몇몇 러시아 취재진이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