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 리비아 대사가 국내 기업에 보낸 협조 공문. | ||
지난해 8월 우리나라에 온 압두사렘 아라파 대사는 같은 해 9월1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임장을 제정 받으면서 본격적인 대사 활동에 착수했다.
그런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둘째 아들인 세이프 알 이슬람이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인 미술 전시회에 소요되는 경비를 아라파 대사가 대한통운,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3개 기업에 부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세이프 알 이슬람은 카다피 원수의 6남1녀 중 둘째 아들로, 카다피 원수의 후계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인물. 세이프 이슬람은 영국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국제정치학과 경영학 등을 공부했으며, ‘카다피 국제 자선 재단’의 총재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 분리주의 반군 간의 평화회담을 주재했으며, 지난해에는 리비아가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아버지 카다피 원수를 설득하기도 했다.
미술에서도 유화 부문에 조예가 깊은 그는 서울에서 미술 전시회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시회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주한 리비아 대사관측의 설명.
그런데 이 전시회에 소요되는 비용을 우리 기업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아라파 대사는 지난 3월2일 대한통운의 곽영욱 사장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전시회 관련 비용이 2억원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며 협찬을 요청했다. 그리고 3월15일에는 곽 사장 앞으로 2억원을 협찬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 4월11일에도 1억원을 더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와 함께 대사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에도 같은 날 각각 1억원씩 협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따라서 세 개 업체에서 모두 5억원의 협찬금을 걷고 있는 셈이다.
아라파 대사로부터 협찬을 요청받은 이들 기업은 리비아 현지에서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요청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해당 기업의 한 관계자는 “아라파 대사는 막대한 협찬금을 공공연하게 요구했는데, 우리 기업의 입장에선 협찬을 거부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며 “대사는 리비아 진출 우리 기업에게 은근히 이번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향후 리비아 현지 사업 확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암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대사가) 만일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아라파 대사가 우리 기업에 보낸 공문에는 “(당신네 기업이) 이 프로젝트(미술 전시회)에 기부하면 리비아와 당신 회사의 관계가 돈독해 질 것이며, 리비아에서의 비즈니스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 협찬이 리비아에서의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대목이다.
이에 우리 기업들은 리비아에서 진행중인 사업과 향후의 협력 관계를 고려해봤을 때 협찬을 거부할 수 없는 난감한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일각에선 “아라파 대사가 세이프 이슬람의 서울 전시회 개최를 명목으로 우리 기업에 압력을 가해 개인적인 치부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협찬금을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세이프 이슬람은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전시 비용 일체는 세이프 이슬람이 총재로 있는 ‘카다피 국제 자선 재단’이 지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우리 기업에게만 협찬을 요구하는 까닭에 대해 의아해 하는 분위기다. 특히 ‘카다피 국제 자선 재단’은 전쟁과 기상 이변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연간 수십억달러를 무상지원하거나 원조해주는 단체다.
더군다나 석유 부국인 리비아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세이프 이슬람이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도 있는 협찬금 모금에 나선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우리 기업 관계자들의 의문.
이와 관련해 아라파 대사의 해명을 듣고자 했으나, 대사관측은 “전시회는 연기됐고, 스폰서 자금은 받지 않았다”는 입장만 밝혔다.
한편 아라파 대사는 세이프 이슬람이 우리나라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울 H대를 접촉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또 다른 H대 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접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