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정문과 사법연수원 건물을 합성한 모습. | ||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최근 내놓은 ‘법조 및 법과대학 현황’ 통계자료집을 보면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자식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사시 합격자들 중 90%가량이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시 합격자 중 비법대 출신도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유망한 대기업에 입사해도 당장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전공 불문하고 너도 나도 사시에 도전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사개추위 자료집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사시 합격자 3천8백25명 중 87%(3천3백26명)가 서울 소재 대학 출신자다. 역시 서울대 출신이 1천3백78명으로 전체의 36.0%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사시 합격자 세 명 중 한 명이 서울대 출신인 셈이다. 이어 고려대(6백53명·17%), 연세대(3백82명·9.9%), 한양대(2백23명·5.8%), 성균관대(1백80명·4.7%), 이화여대(1백29명·3.4%) 순이다.
지방에서는 1백 명 이상을 배출한 대학이 부산대(1백12명·2.9%)가 유일했다. 부산대는 전통의 지방 강호였던 경북대(95명·2.5%), 전남대(57명·1.5%)를 밀어내고 전국 대학 중에서도 사시합격자 배출 7위에 올랐다. 이들 대학을 비롯, 사시합격자 1%(39명) 이상을 배출한 대학은 경희대(69명)·중앙대(62명)·한국외대(50명)·서강대(49명)·건국대(42명) 등까지 총 14개에 불과했다.
지방대 중에서 사시합격자가 1% 이상인 곳이 3개 대(부산·경북·전남대)밖에 안되고 경기, 전북, 충남, 충북, 강원, 제주지역 대학들은 한 곳도 없다. 이처럼 사시합격자가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에 몰리다 보니 검찰이나 법원의 고위 간부 중 지방대 출신도 극히 드물다.
김종빈 총장(고려대)을 포함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46명 중 지방대 출신은 권태호 춘천지검장(청주대), 이승구 법무부 보호국장(경북대) 등 단 2명에 불과하다. 반면 서울대 출신은 33명으로 전체의 71%가 넘는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최종영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4명 중 12명이, 전국의 법원장 28명 중 24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85%가 넘는 비율이다. 이 중 지방대 출신은 배기원 대법관(영남대)이 유일하다.
또 9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에서도 6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지방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가히 법조계는 ‘서울대 공화국’이라는 말이 통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오는 2008년부터 도입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지방에 상당수가 배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010년대 이후부터는 이같이 기형적인 법조계 ‘학맥 구조’가 형성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집에 따르면 사시합격자들의 전공도 다양해지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10%대에 머물던 ‘사시합격자 중 비법학전공자의 비율’이 최근 들어서는 30%대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1995년에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2백92명의 사시합격자 중 비법학전공자는 34명으로 11.6%에 불과했으나 점차 비중이 높아지더니 2001년에는 34.0%로까지 치솟았다. 올해는 24.9%로 약간 주춤했지만 지난해도 비법학전공자의 비중이 30.4%나 됐다.
비법학전공자들의 분야도 인문·사회 계열뿐만 아니라 공대와 자연대는 물론, 의대와 예술대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2003년에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34기 9백72명 중에서는 공대 출신이 23명, 자연대 출신은 13명이나 된다. 특히 의학과(2명), 약학과(2명), 간호학과(1명) 등 의대계열 출신도 5명이나 있고 기악과 출신도 1명이 있다. 비법학전공 중 사시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학과는 경영학과(40명), 정치외교학과(36명), 경제학과(31명), 영문과(10명) 등이다.
로스쿨이 도입되면 비법학전공 법조인의 비중은 더욱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사개추위의 로스쿨 도입안에 따르면 입학자의 3분의 1 이상을 비법학 전공자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시 합격자들의 나이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1986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사시 합격자들의 평균연령은 25.63세였다. 이후 1992년에 27.35세, 2001년 29.22세로 점점 높아지더니 2004년에는 드디어 30세(30.17세)를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이에 사시에 붙는 이른바 ‘소년급제자’들의 비중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1990년에는 사시 합격자 중 24세 이하의 비율이 무려 26.3%나 됐다. 합격자 4명 중 한명이 소년급제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소년급제자들의 비율은 1993년 13.3%, 1996년 9.5%, 2001년 8.7%, 올해는 6.08%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거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사시에 도전하다보니 합격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것이다.
연간 사시 합격자 1천 명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나라의 법조인 수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1961년에는 국내 법조인이 통틀어 1천42명에 불과했다. 이후 20년 만인 1980년에 2천17명으로 두 배로 늘어났고 1990년에 3천8백89명, 2000년 7천2백53명, 2005년 1만4백92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는 사시 합격자 정원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970년까지 매년 사시 합격자는 50명이 안됐다. 그러다 78년에 1백명으로 늘어났고 1981년에는 3백 명으로 많아졌다. 1981년에 사시 합격자(사법연수원 13기)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당시 검찰에 임관한 숫자도 많아져 13기들은 검찰 인사 때마다 수뇌부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시 합격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조인 수는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200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법조인은 총 8천2백38명으로 법조인 1인당 국민 수는 5천7백83명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선진국의 법조인 1인당 국민수를 보면 미국이 2백66명, 영국 5백57명, 독일 5백78명, 프랑스 1천5백9명 등이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법조인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변호사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제대로 먹고살기 힘든 변호사들도 많다는 변호사 업계의 주장은 통계로만 보면 아직 ‘엄살’이라는 얘기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