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빈 검찰총장(왼쪽), 허준영 경찰청장 | ||
여론은 일단 경찰편이다. 지난 22일 <한국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57.4%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필요없다는 답변은 36%에 그쳤다. ‘정치 검찰’로 대표되는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현재 수사권 조정 문제의 요지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허용하느냐’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검찰과 경찰 모두 표면적으로는 ‘인권 보호’를 자신들이 수사권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로 들고 있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펼치는 두 기관의 ‘한판 승부’. ‘건들면 터질’ 듯한 그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지난 4월2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홍만표). ‘오일게이트’의 주범 하이랜드 전대월 대표의 검거를 위해 ‘검·경 합동회의’가 열렸다. 검찰과 경찰의 공조수사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 전씨의 검거를 위해 두 기관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곳은 경찰이었다. 부정수표방지법 위반 혐의로 수배중이던 전씨의 검거를 위해 경찰은 이미 특진까지 걸어놓은 상태였다. 이와 관련, 당시 유례가 없이 6명의 전담 검거반까지 구성했던 검찰은 “경찰이 전씨를 검거하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이 문제는 전씨의 자수로 무승부.
수사권 조정문제와 관련, 일합을 벌이고 있는 검찰과 경찰은 대처방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찰이 언론플레이에 집중하며 ‘바닥 훑기’ 식의 홍보와 ‘대국민 호소’에 나서고 있는 반면 검찰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며 ‘정중동’을 잃지 않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경찰측 움직임.
지난 5월20일 별세한 서영호 전 중앙경찰학교장의 영결식이 열린 경찰청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1백30만 명의 전직 선배와 현직 경찰관들이 지난 60년 동안 소망하고 반드시 이루리라 약속했던 (수사권 독립이라는) 숙원들이 이제 막 눈앞의 현실로 이뤄지기 시작하는데…”라며 수사권 확보 의지를 밝히고 경찰관계자들을 위로해 눈길을 끌었다.
경찰청은 또한 서 전 학교장의 사망과 관련, “사망 전날까지도 여경 졸업식 예행연습을 진두지휘했으며 간암으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내색을 않고 일하다 쓰러진” 뒷얘기를 흘리며 동정론을 펴고 있다.
허 청장의 ‘부드러운’ 활동도 부쩍 늘었다. 지난 5월18일 국립 5·18 묘지를 공식 참배했던 허 청장은 5월24일에는 서울 청량리에 소재한 다일공동체 ‘밥퍼나눔 운동본부’에서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펼치며 ‘부드러운 경찰’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카운터 파트너인 검찰을 상대로 한 무력시위도 늘었다. 현직 경찰까지 구속시킨 검찰의 ‘원칙론’을 앞세운 수사가 탄력을 받던 지난 5월 초 모 지방경찰청은 관내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검찰청에 파견중인 형사들의 원대복귀”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 조치 이후 검·경 간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난 4월 말 허 청장은 직접 경찰관계자들에 대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온-오프라인에서 언론플레이를 하지 마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허 청장의 지시사항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경찰의 움직임에 맞선 검찰의 모습은 한마디로 ‘정중동’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 애써 태연한 태도를 취하면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 최근 검찰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오일게이트, 청계천 재개발 비리 의혹, 수자원 공사 비리와 같은 굵직굵직한 정치 사건들을 통해 ‘검찰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을 뿐 빨라진 검찰의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지난 5월9일 저녁 대검찰청. 전국에서 올라온 검찰 특수부 부장검사 20여 명은 회의를 열었다. 겉으로 드러난 회의주제는 ‘첨단수사 기법을 활용하자’는 것. 그러나 한두 달에 한번 열리는 ‘통상적인’ 이 회의에서 주로 논의된 것은 수사권 조정문제와 관련된 ‘검찰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각 지역의 토착비리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전개한다”는 것과 함께 “(수사권 조정 문제로) 어려운 때에 모두들 한 건 터뜨린다는 각오로 올 여름까지 일하라”는 지시도 나왔다고 한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상황을 돌파한다’는 전략이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계획 때문인지 최근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어 온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된 각종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김종빈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흘러나온 이런저런 음해성 정보들의 출처가 경찰이라는 정황을 잡고 조용히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 또 허 청장이 국회 소속 위원회인 행정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치인들과의 교감을 넓히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경찰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