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 3월28일 대전에서 열린 선대위 출범식 직후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열린우리당의 현재 지지도는 40% 후반. 20%를 경계로 왔다갔다하는 한나라당과 5%를 넘지 못하는 민주당을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 한나라당이 3월23일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체제’로 새단장하면서 영남권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다소 올랐지만, 열린우리당의 ‘초강세’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열린우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무난히 원내 1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과반수(1백50석) 이상 얻으리라 점치는 이들도 상당수다. 영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 대부분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지지율과 직결되는 정당투표에서도 초강세를 보여 비례대표 56석 중 ‘적어도’ 절반(28석)은 무난히 차지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87년 6월항쟁 이후 치룬 다섯 번의 총선(13~17대)에서 ‘여대 야소’의 첫 기록이다. 88년 13대 총선에선 민정당이 1백25석, 92년 14대 땐 민자당이 1백49석, 96년 15대 땐 신한국당이 1백39석을 얻어 3회 연속 여당이 과반(1백50석)에 못 미쳤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야당인 한나라당이 1백33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됐지만 역시 과반인 1백37석에 4석 모자랐다.
흥미로운 것은 열린우리당의 예상 의석수를 놓고 여야가 현격한 이견을 보인다는 점이다. 여권은 최근의 지지율 급등세가 자칫 ‘거여(巨與) 견제심리’ 발동으로 이어질까 우려해 예상치를 1백20~1백30석으로 낮게 잡았다. 반면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관철시킨 ‘공룡 야당’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2백50석 이상을 싹쓸이할 것”(홍사덕 전 원내총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까지 선거를 앞둔 각 정당들은 자신들의 대승과 경쟁 당의 참패를 주장해 왔다. 때문에 여야가 ‘1백20~1백30석’ 대 ‘2백50석’으로 2배나 차이 나는 전망을 내놓은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각당의 총선 의석수가 어떤 변수에 의해 얼마나 바뀔지도 관심사다.
논란의 대상인 열린우리당의 예상 의석수와 관련해 우선 여야 지도부의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망치의 변화가 그때 그때 각당의 달라진 입지를 반영하고 있는 데다 실제 의석수를 점쳐볼 수 있는 근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의석수를 언급한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2월18일 경인지역 언론사 합동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안 되더라도 국회를 존중해서 성실히 일하겠지만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 없다. 대통령을 맡겨주셨으니까 특별한 대안이 없다면 일좀 하게 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열린우리당이 최소한 개헌저지선(2백99석의 3분의 1) 이상은 확보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때부터 여권의 총선 목표 의석수는 ‘1백 석 이상’이 됐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노 대통령 발언 다음날(2월19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백 석을 달성하지 못하면 승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가세했다. 정 의장은 또 “만일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갖는다면 국민들이 노 대통령을 가장 확실하게 재신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탄핵정국 돌입 이후 당 지지율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예상 의석수도 상향조정되기 시작했다. 신기남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1백30석’을 거론하다 ‘1백30석+알파(α)’로 기준을 올리더니, 정 의장도 24일엔 “국정 안정의석인 1백20~1백30석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는 말로 예상치를 수정했다. 그는 그러나 1백20~1백30석 주장에 대해 “너무 ‘부자 몸조심’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정당 득표율 40%가 바람직한 기준이며 내심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45%까지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당이 지금까지 40%를 넘어선 적이 없다”고 말해, 14대 총선 때 과반수에 1석 모자라는 1백49석을 얻었던 민자당의 성적을 훌쩍 뛰어넘겠다는 ‘속내’를 피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예상의석수를 ‘최하 2백 석’이라 주장한다. 2백50석을 언급한 홍사덕 전 원내총무의 언급은 너무 과장됐다는 평가가 많지만, 박근혜 대표도 ‘지금 상황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2백 명이 넘게 열린우리당이 (당선)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표의 언급은 여당 독주에 대한 견제심리를 촉발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또 여당 의석수를 높게 설정한 만큼 한나라당 예상 의석수를 낮게 잡아 총선 패배 후 책임론에 대비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실제 박 대표는 “야당이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려면 있으나마나 한 의석 갖고는 안된다. 그냥 몇 십명 모여 갖고…. 지금은 그것도 안될 것으로 보이지만…”이라고 말한다.
박 대표의 의도야 어쨌든 전임자인 최병렬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21일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 등에 패해 확실한 원내 제1당이 안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나, 탄핵안 가결 이전만 해도 “원내 과반수 이상 유지는 어렵더라도 1백30석은 가능할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인 얘기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1백20석에서 2백50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열린우리당 예상 의석수를 가늠할 변수를 점검해 보자.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총선구도가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다. 탄핵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가 계속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야당이 희망하는 ‘지역구도’ 또는 ‘정책·인물 대결’로 전환될 것인지 여부다.
만약 탄핵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중심에 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지금대로 유지되거나 강화된다면 ‘열린우리당 압승-한나라당 대참패’의 결과는 피할 수 없으리란 예상이다. 구체적으로 한나라당이 수도권과 호남·충청, 강원은 물론 마지막 보루인 영남권(지역구 68석)에서도 1당의 위치를 내주고 맥없이 무너질 경우로 열린우리당의 의석은 2백 석 이상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야당이 ‘정책-인물 대결’로 구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 한나라당이 지역정서에 부합하고, 후보 대결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 강남 등지와 영남권에서 전세를 역전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번 총선부터 적용되는 ‘1인2표제’가 열린우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호를 정당투표로 흡수하고, 대신 후보투표에선 한나라당을 찍는 ‘이중선택’ 경향이 나타날 경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나라당=영남, 민주당=호남, 자민련=충청’이라는 기존의 ‘텃밭’ 개념이 부활할 경우 지지율에선 열린우리당 후보에 뒤지지만 ‘인물 적합도’에서 앞서는 상당수 야당 후보들의 ‘뒤집기’도 충분히 가능하리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도 변화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또하나의 사안은 ‘여당 견제심리’의 발동 여부다. 여기에 야당의 ‘읍소작전’이 유권자들이 잠재적으로 선호하는 ‘대등한 양당구도’를 자극하는 등 구도 변화와 관련한 각종 변수가 종합적으로 나타날 경우 한나라당의 1백 석 이상 확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 민주당과 자민련이 텃밭에서 어느 정도 선전하고, 민노당이 탄핵 이후 잠식된 지지층을 회복할 경우 열린우리당 의석이 과반에 못 미치는 1백30~1백40석에 머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박근혜 효과’도 총선구도의 변화를 불러올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대목. 박 대표의 전국적인 파급력은 아직 당 지지율을 3~5%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불과하지만, 대구·경북(TK)권에선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로선 ‘박근혜 효과’ 그 자체가 판도를 뒤엎을 ‘태풍의 눈’이 되리라 예상하긴 어렵다. 그러나 TK로 부터 시작된 ‘박근혜 효과’가 앞서 언급한 구도변화의 가능성과 결합하면서 북상할 경우, 탄핵정국 이전의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세력들을 결집시켜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