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28일부터 각 당의 선거전이 본 궤도에 올랐다. 국회사진기자단·이종현 기자 | ||
위기에 처한 야 3당은 부랴부랴 선거전략을 수정하며 대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쉽게 탄력은 붙지 않고 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탄핵을 뒤엎을 만한 대형 이슈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고속질주를 제어할 ‘브레이크’는 여전히 산재해 있다.
먼저 ‘거여(巨與)견제론’ 확산과 그에 따른 보수층의 대결집을 꼽을 수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역대 어느 총선에서도 여당이 40%대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 성향은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박근혜·추미애 변수’가 거여견제론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극심한 내홍을 겪은 두 거대 야당이 ‘박·추 다르크’를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해 본격적인 바람을 일으킬 경우 만만찮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율도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 총선 투표율이 50%대에 머물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투표 의향률이 67%에 육박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투표율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17대 총선 막판 대변수를 미리 들여다봤다.
우리나라 역대 총선 예측은 언제나 ‘럭비공’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 지형이 불안정하고 그에 따른 막판 돌출 변수가 전문가들의 조심스런 예상마저도 무색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88년 4월26일의 13대 총선은 야당의 압승이었다. 당시 모든 언론은 양 김의 분열과 집권여당의 갑작스런 소선거구제 도입으로 “민정당이 1백90석을 얻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결과는 거꾸로 나왔다. 결국 한국 선거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로 기록되는 선거였다. 96년 4월11일 치러진 15대 총선도 이변이었다. 선거 전 언론들은 신한국당이 70~80석도 차지하기 어렵다고 보도했지만 막판 북풍 돌풍 등의 영향으로 여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특히 선거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신한국당은 당초 예상을 뒤집고 서울 47석 중 27석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00년 4월13일 치러진 16대 총선도 이변의 연속이었다. 한나라당은 유례 없는 시민단체의 낙선운동과 병역비리 수사 등으로 고전이 예상됐지만 결국 1백33석을 차지해 제1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보도됐지만 상당 지역에서 결과가 뒤집혀 유권자들이 큰 혼란을 겪었고 여론조사 기관의 신뢰도에도 먹칠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어떻게 될까. 여론조사 전문가 대부분은 이변이 없는 한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각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열린우리당이 45~5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1위를 질주하고 있다. 3월12일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계속되는 고공행진이다. 열린우리당은 1백30석 정도 차지할 것이라며 몸을 낮추고 있는 데 반해 한나라당은 ‘여당’이 2백40석 이상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과연 열린우리당은 역대 선거 예측과 달리 이번만큼은 절대 다수의 예상대로 압도적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정치 전문가들은 탄핵을 뒤엎을 만한 대형 이슈가 터질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선대위 상임부본장 윤여준 의원은 “한국 선거판에서는 선거 3일 전까지도 무슨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 좀 더 두고봐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지금부터 일어날 선거 변수도 주목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그렇다면 어떤 변수가 17대 총선을 휘어잡을까.
먼저 야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거여견제론’에 여당의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 최근 20여 년 동안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40%대의 득표율을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특히 대선에서 집권한 정권은 그 다음에 실시된 총선에서 패하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이 절대권력에 대해 심리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역대 선거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총선 때마다 거의 매번 나타난 여소야대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집권여당은 정국 안정을 위해 강제적인 정계개편의 유혹을 받아온 것 아닌가. 하지만 선거에서는 항상 유권자들의 절묘한 견제심리가 나타났다”며 야당에 희망적인 기대를 나타냈다. 지난 3월29일 열린 한나라당의 ‘뉴 한나라 선대위’ 발족식에서 박근혜 대표는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이뤄야 한다”며 거여견제론을 거듭 제기했다.
리서치앤리서치 노규형 사장은 거여견제론이 이번 선거의 중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탄핵안 가결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불만족했던 사람들이 65~70%까지 치솟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지지율이 37%선으로 좀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만세력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1위 고수에 따른 견제심리가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부동층의 향배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일보>가 지난 3월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부동층은 34.1%. 탄핵안 가결 전 45.6%(MBC 3월7일)보다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 이후 26.1%(<한겨레>, 3월25일)에 비하면 더 늘어났다. 부동층 다수가 탄핵안 가결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표시하면서 한때 열린우리당으로 ‘감정표’가 급격히 쏠렸지만 야당이 거여견제론을 제기하면서 차츰 조정국면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이런 부동층이 ‘박근혜 효과’와 맞물려 야당 쪽에 상승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박근혜 효과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졌던 보수층들의 재결집을 가져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선대위 관계자는 “보수층의 표심 전파는 대구·경북을 시발로 경남을 거쳐 충청 수도권으로 올라온다. 역대 선거를 보면 보통 2주일 정도면 바람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박근혜 효과는 여론 조사를 통해 일정 부분 확인되고 있다. 3월27일 주말을 전환점으로 대구·경북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 지난 3월27일 MBC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28.3%로 14.7%포인트 하락한 반면 한나라당은 30.9%로 11.4%포인트 상승해 두 당의 순위가 역전됐다.
하지만 부산·경남·울산 지역은 아직 미풍에 그치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율(27.8%)은 7.1%포인트 상승했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율(46.1%)은 큰 변화가 없어 아직 박근혜 효과가 부산·경남지역에 상륙했음을 감지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효과’에 대해 열린우리당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3월29일 “한나라당이 박근혜 대표 취임 이후 체제를 정비하고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형성하고 있다”고 ‘부활’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 일부에서는 느긋한 기류도 감지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강철 후보는 “박근혜 변수가 조금이야 있겠지만 어차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나라당 골수 지지자들이기 때문에 젊은 층은 별로 영향이 없을 것 같다. 약 2~3% 정도 올라갈 것으로 보이지만 바람은 미세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한나라당도 박근혜 바람에 안주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여준 선대위 상임부본부장은 “박근혜 효과가 서서히 반영은 되겠지만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박근혜 체제 등장 타이밍이 워낙 탄핵 정국으로 쏠려있을 때 나온 것이어서 ‘컨벤션 이펙트’(전당대회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과거의 예와 다를 것이다. 오히려 각종 개혁 정책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체제가 미봉책이나마 정비가 되면서 ‘추미애 변수’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그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너무 늦었다. 또한 후보 등록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바뀐 새 체제가 개혁공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그 과정에서 더 큰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민주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하고 민노당에게 제3당의 지위마저 내주는 최대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막판 지역주의 바람이 어느 정도 민주당의 체면을 살려줄지 관심을 모은다.
투표율도 중요 변수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을수록 열린우리당이 유리한 반면 투표율이 낮으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란 주장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노규형 사장은 “열린우리당 지지의 근간을 이루는 20~30대 젊은이들이 탄핵 정국 때문에 선거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67% 이상 나와 투표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난 16대 선거 투표율(57%)에서 보듯이 투표 의향을 가진 67% 이상 젊은이들이 전부 투표장으로 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냄비의식’이 있는 일부 젊은 층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한 4월15일이 목요일이고 휴일이라 다음날인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젊은이들도 많을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여행업계들은 이에 대해 “평일보다 약간 예약률이 높지만 대체로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투표 때문에 출발을 미루려고 문의하는 고객들도 있다”라고 밝혔다.
젊은 층의 이런 적극적인 기류를 반영한다면 이번 선거 투표율이 지난 대선 투표율(70.8%)에 근접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번 선거가 지역 정책 개발, 후보 능력 검증 등 ‘지엽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고 탄핵 찬반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총선은 탄핵에 대한 집단적 감정이입이 서서히 풀리고 야권의 전열 재정비와 정책 대결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진정한 일합’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번 선거가 역대 선거들처럼 전문가들의 빗나간 예상을 보기 좋게 비웃을지, 아니면 총선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징크스를 뒤집고 의회권력이 교체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