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신과 독설로 유명한 김홍신 의원은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는 말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 사진은 2001년 2월 당론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다 한나라당에서 축출당한 뒤 농성을 하던 김 의원. | ||
그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응은 노련했다.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며칠간 입이 근질근질했다”면서 자신의 분노를 국민들의 웃음으로 변화시켰다. 그 한 달 전 미국 공화당의 버튼 의원은 클린턴을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욕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었다.
김홍신 의원은 상습적인 독설가였다. 그는 정치인이 되기 전에도 여러 사람을 혼내 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수성, 조순 등 그에게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는 1990년대 초 KBS 생방송 도중 노태우정권을 비민주적 정권이라고 했다가 출연정지를 당했다. 1995년에도 김영삼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가 출연정지를 당했다. 말할 기회가 없을 때는 <대통령 정신 차리소>라는 책을 써서 고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영원한 비판적인 작가라고 했었다. 겁이 많은 나는 세례요한 같은 그런 독설가의 용기가 부러웠다.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오후 작달막하고 몸이 가냘픈 오십대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실로 들어섰다. 김홍신 의원이었다. 그의 소설이나 말을 통해 세상에 뿌려놓은 고추같이 매운 기운과는 전혀 반대의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일단 제 잘못입니다.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비공식적으로도 할 수 있는 사과는 다 했습니다. 유세를 중단하고 자숙하는 태도도 보이고요.”
의외로 그는 장황한 정치적 변명이나 만용이 없었다.
“정말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내가 호기심 반 확인 반의 심정으로 물었다.
“저는 평소에 ‘염라대왕 시리즈’를 자주 사용했어요. 염라대왕은 (사람이) 거짓말 한 만큼 나중에 입을 바늘로 꿰맨다는 얘기죠. 방송 중에도 코미디언 이경규씨에게 나중에 바느질 당할 거라고 했더니 최수종씨가 옆에서 폭소를 터뜨린 적도 있어요. 연설 도중 김대중 대통령은 그동안 말을 많이 바꾸었다는 점을 겨냥해 제가 염라대왕 시리즈를 무의식적으로 그냥 써버린 거예요. 대상이 대통령이란 걸 간과한 거죠. 그냥 말꼬리를 물려 버려 내가 대통령의 입을 박는다는 걸로 왜곡된 거죠.”
그는 가족몰살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고 휴대폰도 친구 것을 빌려 쓰고 있다고 호소했다. 괘씸죄에 걸린 그는 말 한마디에 모든 걸 잃을 것 같았다.
“수갑 차고 감옥에 갈 각오는 돼 있습니까?”
내가 여러 사람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변호사인 나는 높은 사람들의 벌거벗은 뒷모습을 많이 보았다. 국회의원, 재벌, 장군 등 화려한 옷을 입은 인간들일수록 고문과 감옥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
“물론입니다. 국회의원 자리도 욕심 없습니다.”
난 그에게서 진실하고 담담한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죽을 각오를 한 인간들에게서 난 열심히 변호할 매력을 느꼈다. 살려고만 하는 사람은 비겁했다.
나는 사건기록을 얻어다 면밀히 검토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고소장의 모습이 특이했다. ‘고소인 김대중, 직업 대통령 피고소인 김홍신, 직업 국회의원’이라고 써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독재정권시절 자신을 납치하고 고문한 원수도 용서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고소장 그 자체만으로도 명분상 이미 지고 있었다. 주위의 아부하는 대통령 측근들이 정치를 사법부에 헌납한 경솔 같기도 했다. 일단 김대중 대통령을 증인으로 불러서 진짜 고소했는지 알아보자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대리인 자격으로 고소한 당직자가 증인으로 법정에 불려 나왔다.
“고소장에 찍힌 대통령의 도장이 진짜 맞아요?”
대통령의 고소 의사가 진짜인지를 알기 위해 돌려서 물었다.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
당직자는 내게 무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뱉었다. 대통령 일을 대신한 그는 평범한 한 변호사인 나를 깔보는 것 같았다. 재판장이 눈치 채고 나를 중간에서 거들어 주었다. 정당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왜 증언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대통령의 사인을 보관하는 문제가 이 공판에서 관련이 있는 건지 의심이 가기 때문에 증언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재판장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면서 단호한 어조가 됐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 도장은 대통령이 직접 소지하고 있다가 찍은 도장입니까?”
“대통령이 사용하는 도장이다 아니다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합니다.”
증인의 머릿속에는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형식적 충성만 있지 법률상식과 논리로 문제를 풀려는 의식이 없었다. 오히려 재판부를 건드리고 있었다.
“모릅니까, 아니면 증언을 못하겠다는 겁니까?”
재판장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다시 따져 물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거부하겠습니다.”
▲ 99년 집권 당시 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 ||
다음 번 등장인물은 비서실장이었다. 대통령이 시켰는지 밑에서 알아서 기었는지 말해야 하는 배역이었다.
“대통령은 공업용 미싱 발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지침을 주셨죠?”
비서실장에게 따져 물었다.
“당 간부들의 결정이 어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 간부들이 무척 흥분했고 시민들의 요구가 팩스와 전화로 들끓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한 간부회의의 분위기를 보고 드렸습니다.”
“그때 강경한 처벌을 희망하시던가요?”
“구체적으로 그런 지시는 없었고 당 간부회의의 결정사항을 허락한다는 뜻이셨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법적으로는 애매모호했다. 당시 정치인들 중에는 이중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에게는 강경책을 건의하고 당사자인 김홍신 의원을 국회 로비에서 만나면 반대로 말했다.
“당시 고위 당직자들 간에 김홍신을 구속시키거나 고소하면 슈퍼스타로 만들어 주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의견이 많았고, 또 어떤 의원은 ‘지위가 높을수록 혹독한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데 김홍신 의원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대통령과 우리나라가 웃음거리가 된다’고 말했다는데 어떻습니까?”
당 간부회의의 결정사항이라는 것이 꼭 고소로만 볼 수 없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그건 아리까리한데요.”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비서실장이 난감해 하고 있었다.
“아리까리요?”
“네, 그런 대화가 혹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법정은 오히려 대통령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늘에서 신나게 말하던 대통령의 측근들은 증인으로 나와 당당하게 말하기는 모두 피했다. 그 무렵 김동길 교수는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이렇게 쓴 소리를 했다.
“검찰이 김홍신 의원을 잡아넣겠다고 해도 대통령은 말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옆 사람들이 분개해서 욕하더라도 ‘그 사람 글만 요란하게 쓰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말솜씨도 대단해. 공업용 미싱으로 내 입을 막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 입만은 막아서 안 되겠어’라고 말하면서 한바탕 웃었다면 김 의원은 얼마나 자기가 한 그 발언을 미안하게 생각할 것이며, 세상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인가.
김 대통령은 자신의 명예가 국회의원 한 사람의 폭언으로 훼손될 그런 허약한 명예는 아니라고 믿는다. 김 의원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그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인지 뻔한 노릇이다.”
김 교수는 쇠고랑을 채우고 의원직을 박탈해도 대통령의 패배라고 했다. 그것마저도 성공하지 못하면 대통령의 완패고 망신이었다. 사실심리와 증거조사가 다 끝나고 김 의원의 최후진술이 남았다. 나는 그가 최후진술용으로 원고지 52장에 ‘세상타령’이라는 판소리를 지은 걸 미리 받아 보았다. 그 내용의 앞부분은 이렇게 독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권력이면 귀신도 부린다지만 걸쭉하게 농담 한마디 한 걸 가지고 도둑이 개 꾸짖듯 해서야 어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대통령을 도둑으로 자신을 개라고 비유했다. 독한 판소리들로 가득 찬 원고를 그는 타령으로 읊겠다고 고집했다. 비굴할 정도로 빌고 사정해도 살아나기 힘든 최후진술 순간을 그는 독설이 가득 찬 판소리로 준비하고 있었다.
“타령은 참아 주시죠. 제가 원고를 대신 잘 읽어 볼 테니까.”
재판장이 그를 달랬다. 법원은 결국 금배지를 빼앗지도, 쇠고랑을 채우지도 않았다. 사법부로 넘긴 정치에서 대통령이 완패를 한 순간이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