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새누리당 혁신위원회 2차회의에서 이준석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비박계는 “박근혜 키즈인 이 위원장이 청와대를 향해 과감한 혁신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6·4지방선거 직후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선 지난 2011년 12월 꾸려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수준의 특별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을 1년여 남기고 유력 대권 후보였던 박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발족시켜 쇄신 작업을 단행했다.
이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비대위는 2012년 치른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 그 중에서도 친박은 비대위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새바위 출범은) 다시 한 번 그 효과를 얻어 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문창극 전 총리 내정자 낙마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윤상현 사무총장을 비롯한 몇몇 친박 의원들 주도로 논의가 착수됐고, 여기엔 청와대와의 깊은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당 쪽에서 먼저 재보선을 앞두고 별도의 혁신 기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를 전해들은 청와대 역시 긍정적인 입장이었다”며 “문창극 전 내정자 탈락 이후 침체돼 있는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고 전했다. 당·청은 여러 차례 비공개 회동을 갖고 새바위 출범 시기 및 위원 구성 등에 대한 견해들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마침내 6월 30일 모습을 드러낸 새바위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을 택했다. 1985년생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11년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비대위원으로 뽑힌, 대표적인 ‘박근혜 키즈’다. 현역 중에선 정병국(4선) 김용태(재선) 황영철(재선) 강석훈(초선) 의원이 참여했다.
사실 이 위원장 발탁을 놓고선 여권 핵심부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렸다는 전언이다. 이 위원장이 어리고 정치 경력이 짧아 자칫 새바위의 무게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혁신 이미지에 걸맞고 젊은 층을 공략한다는 취지에서 이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위원장에 대해 우려가 있었던 게 맞다. 그런데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면서 “이 위원장이 어리긴 하지만 박 대통령과 함께 비대위원으로서 당 쇄신에 이바지한 적이 있지 않느냐.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바위 출범에 대해 야권은 일단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재보선을 염두에 둔 정치 이벤트라며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심 부러워하는 기류도 읽힌다. 또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이준석 위원장 선임은 최상의 전략”이라는 글을 남겼다. 진보 성향의 조국 서울대 교수도 “문제는 이준석을 앞세운 새누리당의 쇼가 아니라 여기로 향하는 눈길을 잡아오지 못하는 야권의 대응력”이라고 꼬집었다.
김기춘 비서실장
정작 여권 내에선 새바위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비주류 진영은 새바위를 출범시킨 여권 핵심부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전당대회와 재보선을 앞두고 친박과 비박이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새바위라는 기구가 나타나자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조동원 본부장이 제안해 만들어졌다는 정도만이 알려져 있고 출범 과정이나 위원 선정 기준 등은 의원들도 거의 모른다”며 “진짜 혁신을 하고자 했다면 당의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쳤어야 할 것이다. 몇몇 친박 의원들이 주도한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새바위가 내놓는 혁신안이 진정성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새바위가 국회의원 도덕성 검증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 것을 놓고서도 비박계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지난 7월 1일 이준석 위원장은 현 정부의 인사 실패를 거론하며 “국민들은 정부 인사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도덕성 검증을 위한 당내 기구 설립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를 접한 비박 의원들은 못마땅한 심기를 내비쳤다. 또 다른 비박 의원은 “인사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당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비롯된 것인데 당부터 혁신한다는 게 순서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박근혜 키즈인 이 위원장이 청와대를 향해 과감한 혁신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새바위 출범 이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타깃으로 하는 청와대 부실검증 논란이 수그러들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새바위가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당 개조에 나선 이후 김 실장 문책론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는 얘기다. 앞서의 비박계 의원 역시 “모든 화살이 청와대로 향할 즈음 새바위가 등장해서 혁신만이 정답인 양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인사 참극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반문하며 “책임론은 쑥 들어가고 온통 혁신뿐이다. 청와대와 친박 지도부가 이런 상황을 노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도 “김기춘 실장 문책론은 전당대회나 재보선에서 친박의 입지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친박이 혁신이라는 또 다른 아젠다를 설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새바위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이러한 관측에 설득력을 더 한다. ‘무늬만 혁신’으로 끝날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주승용 새정치연합 사무총장은 “요즘 새누리당에선 이준석 위원장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위원장의 현란한 혁신 드리블이 골로 연결되지 못할 경우 남는 것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허탈감과 피로, 현기증뿐”이라고 말했다. 새바위 역할이 제한적인 것을 꼬집은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