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두 패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으며,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등 자중지란에 빠져있다. 대한민국 검찰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다. 검찰의 내부 갈등은 ‘친이회창’ 성향을 노출하는 검사들과 ‘친DJ’ 성향의 검사 사이에서 1차적으로 빚어지고 있다. 병풍수사는 이러한 검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 지난 8월 한나라당 의원들의 서울지검 앞 시위를 막고 있 는 경찰들 모습 | ||
병풍수사가 이 후보에게 불리할 것이란 추론의 배경에는 박영관 특수1부장이 큰 몫을 차지했다. 박 부장은 목포 출신으로 이 정권 들어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한나라당은 박영관 부장에게 병풍수사를 맡긴 것은 ‘이회창 후보 죽이기’ 일환이라고 반발했고 박 부장의 교체를 강력히 요구했다. 한나라당 의원 수십 명이 8월 초 검찰청사앞에 몰려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박영관 부장의 거취가 다시 한번 쟁점으로 번진 것은 8월말 이해찬 의원의 이른바 ‘병풍 유도화 발언’ 때문이다. 이 일로 박 부장은 상당히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됐다. 서울지검에는 박 부장을 옹호해 줄 수 있는 간부들이 별로 없다. 김진환 서울지검장은 경기고 출신이다. 김회선 1차장도 경기고 출신이며, 박영수 2차장은 서울 동성고, 정현태 3차장은 진주고 출신이다. 이 정부 들어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박영수 2차장 정도가 비교적 중립적일 뿐 서울지검 간부들은 대체로 박 부장과 성향이 맞지 않다.
김진환 검사장은 병풍수사 도중인 지난 8월 서울지검장으로 옮겨왔다. 사시 14회인 이범관 전 지검장이 고검장으로 영전하면서 내부 서열상 동기인 김 검사장이 후임 서울지검장을 맡았다. 14회의 검사장은 대부분 영남 출신이며, 그나마 김진환 검사장은 경기고임에도 고향이 충남 부여라는 점이 고려돼 서울지검장에 낙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지검장은 그렇지만 수사 막판 김대업씨를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할 만큼 박 부장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 부장은 8월 인사 이후 호흡이 맞지 않는 서울지검 간부들에 둘러싸인 셈이었다. 박 부장은 수사 초기만 해도 이렇게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국민 여론이 정연씨 병역의혹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고, 언론도 김대업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박 부장은 수사를 강력히 밀고나갔고, 조만간 정연씨 병역비리의 실체가 잡힐 듯 자신만만해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지검의 갈등은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김대업씨 녹음테이프의 조작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서울지검의 분위기는 표변했다.
김진환 서울지검장을 비롯 대부분의 간부들이 김대업씨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로 돌아섰고, 박 부장만이 유일하게 김씨의 사법처리를 반대했다. 병무수사반을 이끌었던 김경수 부부장의 태도 역시 중요한 변수였다. 김경수검사는 특수1부 소속이었던 만큼 사건 초기 박 부장과 큰 이견이 없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김 검사도 김대업씨의 녹음테이프에 하자가 발견된 이후 김씨를 믿지 않았고, 박 부장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김경수 검사는 정현태 3차장과 같은 경남 진주 출신이다. 한때 검찰 일각에서는 ‘정현태 차장-박영관 부장-김경수 부부장’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상 박 부장이 바로 위, 아래에 진주 출신으로 둘러싸여있다는 점 때문에 논개로 불렸다. 진주 출신 사이에 끼어 남강에 빠져죽게 됐다는 우스갯소리였다.
이러한 갈등은 수사팀 내부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현돼 3명의 검사들이 제각각 다른 입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내부 갈등은 마지막 병풍수사결과 발표를 앞둔 상태에서 김대업씨 사법처리 문제, 수사종결이냐 수사중단이냐 등을 두고 극한으로 치달았다. 서울지검에서는 박 부장이 몰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박 부장은 거의 외롭게 김대업씨의 사법처리를 반대했고, 병풍수사가 계속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때 서울지검의 간부가 김대업씨 사법처리를 공언하면, 바로 박 부장이 반박하는 등 통제불능의 상황을 연출할 만큼 갈등이 심했다. 서울지검의 이 같은 갈등에 법무부와 대검의 일부 간부들도 가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대검의 호남 출신 간부들은 병풍을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하게 끝내려는 서울지검의 수사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인사는 서울지검 간부들이 무더기로 한나라당에 줄서기를 한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불쾌하게 생각했다. 일부는 병풍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서 일제히 ‘정연씨 무혐의 종결’이라는 기사가 나오던 10월 초순쯤 격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상당수 경기고 및 영남 출신 간부들은 서울지검의 수사결과를 환영했다. 법조계에선 병풍수사를 통해 드러난 검찰 내부의 갈등에 대해 커다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검찰이 특정지역이나 특정 후보에 줄서기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검찰의 위상이 대거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로 갈라진 검찰은 대선이 임박할 수록 더더욱 각자의 정치적 입맛에 맞게 움직일 것으로 보여 향후 검찰위상에 커다란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