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대표팀이 6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념촬영을 위해 대기하던 중 한 팬에게 호박엿사탕 세례를 받았다. 연합뉴스
# 큰 그림 못 본 축구협회
한국은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고민에 빠져왔다. 다음 사령탑은 과연 누가 되느냐가 매번 반복된 핵심 쟁점이었다. 현대 축구의 흐름과 변화 등 모든 걸 대변하고 시사하는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도 이러한 ‘바뀜’의 기류에 따라가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역대 월드컵 사례를 봐도 특정 대회 감독을 맡았던 감독이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경우는 전례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감독 교체에는 다른 이유가 훨씬 컸다. 정치적인 배경이 복선으로 깔려있을 때가 잦았다. 심지어 조광래 전 감독의 경우는 스폰서 외압 등이 중도 사퇴의 이유로 제기됐다. 사실이든 아니든 여느 분야에서처럼 국내 축구인들이 인맥과 연줄에 얽혀있다는 건 삼척동자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연속성이나 계획적이었다는 인상은 전혀 없었다. 4년 후를 내다보지 못한 채 그저 당장을 면하기 바빴다.
누군가의 말처럼 항상 ‘따로 국밥’이었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따로, 월드컵 본선 따로의 행태가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축구에서 특정 지도자의 색채가 어떤 팀에 오롯이 녹아들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1년은 선수 파악, 2년은 해당 감독과 지도자들이 원하는 전술을 입히는 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린 기다림이나 체계적인 준비가 없었다. 선수단 구성부터 다시 해야 하고 전략과 전술을 새로이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이 항상 작용했다. 당연히 시행착오는 불가피했고, 일관성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허정무호’ 체제로 치러진 2010년 남아공 대회 직후, 브라질월드컵까지 4년간 3명의 감독들이 들락거렸다. 2011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과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까지는 조 전 감독이, 3차 예선 마지막 경기부터 아시아 최종예선은 최강희 감독(현 전북현대)이 책임졌다.
당연히 홍 감독으로서는 가용 가능한 인력풀(Pool)이 한정됐다. 자신이 잘 알고 있던 선수들을 중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부터 올해 6월 월드컵까지 임기 1년 안에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최 감독의 경우도 그랬다. 짧은 시간 내에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던 프로축구 K리그 멤버들에 보다 많은 역할을 줄 수밖에 없었다. 국내파와 해외파의 갈등 역시 한없는 수렁으로 빠졌다.
한 축구인은 “한국은 임기응변에 치중하느라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일관되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려가지 못한다. 4년을 주기 삼아 각종 모의고사(평가전)도 철저히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일본조차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 무대가 월드컵이다. 한국은 월드컵을 너무 쉽게만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이번 브라질 대회에 나선 32개국 사령탑 가운데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감독은 홍명보를 비롯해 불과 4명이었다. 여기서 조별리그 통과의 영광을 맛본 이는 이 중 멕시코를 이끈 미겔 에레라(8개월)가 유일하다. 한국이 속했던 예선 H조에서 선전했던 알제리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2011년부터 대표팀을 조련했고, ‘영원한 라이벌’ 일본은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4년 전부터 팀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홍 감독으로서는 준비가 덜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 준비성도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어쩌면 할 몫을 했다. 주어진 상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자신이 뒤집어쓰게 됐다는 동정 어린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오른쪽)이 6월 13일 브라질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이구아수에 마련된 미디어센터 ‘코리아 하우스’에 방문한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오히려 진짜 문제는 대한축구협회다.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하자마자 일본축구협회(JFA)는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멕시코 출신의 명장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데려오게 됐다고 잠정 확정했다. 6월 30일 씁쓸한 귀국길에 오른 대표팀이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10여 명 안티 팬들로부터 엿 사탕 세례를 받는 장면을 지켜본 축구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홍 감독과의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다. 더욱이 홍 감독으로부터 사퇴와 관련한 어떤 입장도 들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남았다. 과연 홍 감독으로부터 사퇴 관련 입장을 직접 들어야 하는지 여부였다. 마치 홍 감독이 자신의 입으로 “이제는 대표팀을 떠난다”라고 직접 밝히길 기다리는 태도처럼 비쳐졌다. 진짜 속내야 어찌됐든 오해의 소지는 다분했다. 오히려 비보도와 사견임을 전제로 “홍 감독 체제로 그대로 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묻자 그제야 “아무래도 그게 옳은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만약 감독의 유임으로 결정됐다면 차일피일 미룰 필요 없이 그냥 “홍 감독에게 계속 힘을 실어주겠다”고 하면 되는데 축구협회는 그렇게 하지도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로 축구협회가 대표팀 부진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홍 감독에 지휘봉을 맡긴 것도 축구협회다. 여기에 이번 월드컵 기간 중 가장 말이 많았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상대국에 대한 대비 여부였다. 대체 대표팀을 돕기 위한 상대국 분석은 어떻게 했는지, 만약 했다면 제대로 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검증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을 위해 안톤 두 샤트니에 코치를 영입해 상대국 분석의 전권을 맡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상대국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축구협회는 6명의 축구인들을 그룹별로 나눠 대회 기간 상대국에 대한 분석을 하는 임무를 맡겼다. 특히 2차전 상대인 알제리가 다양한 옵션으로 나섰을 때의 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황당했던 건 월드컵 직전까지 “알제리 분석은 제대로 됐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축구협회 관계자가 “많은 영상을 확보했다”는 동문서답을 들었을 때였다. 두 샤트니에 코치는 유럽에 연고를 둔만큼 러시아와 벨기에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공을 들였다고 했지만 알제리에 대해서는 사실상 문외한에 가까웠다. 더욱이 많은 경기 영상 자료들을 확보했다고 해서 분석이 제대로 되는 게 아니다. 선수별 분석이 아주 세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져도 부족한 것이 상대 분석이다. 그래서 경기 영상 자료조차 제대로 활용했는지 의문이 남았다.
마치 ‘편 가르기’ 식으로 비쳐졌던 선수 선발에도 축구협회는 자유롭지 않다. 조금이라도 의문이 남았다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과정을 밟아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덕택에 몇몇 대표팀 내 핵심 선수들은 최악의 컨디션을 보이며 기대 이하의 플레이로 일관했다.
또한 우리 선수들은 매 경기 전후로 “우리가 준비한 것을 제대로 풀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축구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알제리의 할릴호지치 감독은 “알제리 축구는 브라질이 아니다. 자신들의 축구만 제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벨기에전-한국전-러시아전에 대비한 각각의 틀을 준비했고 전술을 따로 마련했다. 사령탑으로서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위업을 일궜고,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 단장 자격으로 나선 축구협회 허정무 부회장도 매 경기 선수기용과 전술을 달리하며 역사를 창조했다.
홍 감독의 경질 논란이 불거졌을 때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또 한 번 배제됐다. 조광래 전 감독을 내칠 때 모든 절차와 과정을 생략한 채 달랑 문자 한 통으로 해임 통지를 한 축구협회였다. 혹자는 말한다. “감독보다 축구협회의 잘못이 크다. 만약 대표팀 성적이 좋았다면 떠들썩하게 나설 것이 뻔했으면서 성적이 막상 좋지 않자 감독의 뒤로 숨어버렸다. 비겁한 모습이다. 이게 책임 전가가 아니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문제가 있으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과감히 도려내는 결단성을 축구협회는 최근 수년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정으로 얼룩졌던 조중연 전 회장 체제와 개혁을 부르짖은 정몽규 현 회장 체제는 별 차이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