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백, 천정배(왼쪽부터). | ||
대검은 이와 관련해 “사전조사 결과 비위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감찰에 착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천정배 신임 법무장관이 취임한 이후 “검찰도 거대권력인 만큼 철저한 자기통제가 필요하다”며 내부 감찰을 강조한 것에 비춰봐도 의아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대검이 신임 장관의 의지까지 거슬리며 감찰을 거부한 것일까.
하지만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인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과 천정배 장관까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이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대검의 이번 결정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번 사건에 대한 감찰이 자칫 검찰에게 ‘X파일’ 이상의 충격파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인천지검이 2002년 7월 모 폐기물 처리업체의 횡령 사건을 조사하던 중 임창욱 회장과 관련돼 보이는 72억원의 수상한 자금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수사팀은 이 돈이 임 회장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임 회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맏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장인이기도 해 파문이 더욱 컸다.
그러나 2002년 11월 임 회장이 도피하면서 수사는 벽에 부딪친다. 이후 임 회장은 2003년 4월 자수를 했으나 이번에는 임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직원들이 해외로 도주하면서 수사팀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결국 수사팀은 2004년 1월 말 임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임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직원들의 신병이 확보될 때까지 수사 중단) 결정을 내리며 사실상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올 1월 서울고법은 이미 구속기소된 폐기물 업체 직원들에 대해 유죄선고를 내리면서 임 회장도 공범관계가 있다는 점을 함께 인정하고 말았다. 결국 수사팀이 ‘참고인 중지’를 하지 않고 그대로 임 회장을 기소했더라도 충분히 유죄가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 정도뿐이라면 ‘전임 수사팀의 일부 판단착오’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여기에 ‘봐주기 수사’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문제점이 개입된다. 수사팀이 불기소 결정을 한 직후 임 회장의 사돈뻘 되는 홍석조 현 광주고검장(홍 고검장의 누이인 홍라희씨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으로 임창욱 회장의 사돈)이 인천지검장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 등은 봐주기 수사 의혹을 제기했고 ‘참고인 중지’를 최종 결정한 이종백 당시 인천지검장까지 문제가 됐던 것이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검은 임 회장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지시했고, 새로운 수사팀은 지난 6월 말 그리 어렵지 않게 임 회장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한다. 임 회장이 재수사로 구속되자 전임 수사팀이 부실 수사를 했다는 의혹은 더욱 커졌고 대검이 감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조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당초 이달 중순 대검이 사전 조사에 착수할 때만 해도 감찰은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대검은 1주일간의 사전 조사 끝에 결국 ‘감찰 불가’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대검은 1만2천여 쪽의 수사기록을 살펴보고 수사 주임검사 2명도 직접 소환조사하는 등 철저한 사전조사를 했지만 비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감찰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하면 감찰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나온다.
먼저 당시 인천지검장으로 수사팀을 지휘했던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과 관련된 문제다. 이 지검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정상명 대검 차장, 안대희 서울고검장과 함께 차기 총장 후보를 다투고 있는데 최근 들어 가장 선두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극히 이례적으로 검찰의 ‘꽃 중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을 연임한 점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한 감찰이 본격 시작되면 이 지검장도 당연히 감찰 대상에 포함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향후 총장 후보 경선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종백·정상명·안대희 삼각구도로 이뤄져 있는 현 검찰 역학관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어서 검찰 내 후폭풍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 지검장은 요즘 들어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는 등 침체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의 감찰은 이종백 지검장뿐만 아니라 천정배 법무장관과의 문제도 있다. 천 장관이 변호사로 소속돼 있던 법무법인 해마루가 2003년 2월 임 회장 사건을 맡았고 당시 천 장관도 다른 3명의 변호사와 함께 변호인단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직후 임 회장은 검찰에 자수했고 이후 1년 후에 수사팀으부터 불기소 결정을 받게 된다.
천 장관측은 “단순히 이름만 올렸을 뿐 실제 변론은 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감찰이 시작되면 천 장관도 다시 한번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천 장관이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당시 천 장관은 임 회장 사건 전임 수사팀의 감찰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감찰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적인 말로 운을 뗐다. 그러나 천 장관은 이어 “감찰이라는 것이 선입견이 들어가면 안된다”며 “검사가 합리적으로 수사를 해서 소신대로 했다면 (재수사로) 그 결과가 달라졌다고 무조건 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들으면 임 회장이 재수사로 구속됐다 해도 과거 불기소 처분한 전임 수사팀이 무조건 잘못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천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은 대검이 ‘감찰 불가’ 결정을 발표하면서 덧붙인 설명과 거의 동일하다. 이에 따라 대검도 감찰 불가 결정을 내리는 데 부담을 덜 수 있었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지난달 27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감찰위원회를 열어 대검 결정의 적정성 여부를 토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를 8월 중순으로 연기했다. 법무부가 밝힌 이유는 “자료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만 대검의 결정 이후 ‘제 식구 감싸기’ 비난 여론이 일자 감찰위원회도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감찰위원회는 의결 권한은 없지만 만약 감찰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낸다면 천 장관은 이를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감찰 결정’이 검찰은 물론 천 장관에게도 악영향만 줄 것이 뻔한 상황에서 감찰위원회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