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6일 민주당 서울지역 확대 당직자회의에 참석한 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의원. ‘옥새의 전쟁’이 끝나고 총선정국에 돌입하면서 조-추의 갈등은 일단 휴지기에 접어들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조·추의 전쟁은 완전히 끝난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휴지기에 접어들었을 뿐, 그들에겐 또 다른 전투가 예비돼 있다는 관측이 많다.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은 탓이다.
조·추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공천 문제에서 비롯됐다. 조 대표는 호남 중진들을 물갈이하는 ‘개혁공천’에 반대해 온 반면, 추 위원장은 “개혁공천만이 민주당의 살 길”이라고 주장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뿐일까. 깊숙이 들어가 보면 갈등의 근원은 지난해 11월 대표 경선 때까지 닿아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통모임’ 등 구파의 강력한 후원 아래 당권을 잡은 조 대표, 소장파의 리더로 당 개혁을 외쳐온 추 의원이 한 배를 탄 데서부터 내홍이 배태됐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두 사람의 공통된 캐릭터는 이 과정에서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대화보다 원칙을 중시하고, 융통성을 발휘하기보다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하는 ‘탈레반’적 기질이 민주당 전체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여러 모로 내재돼 있던 갈등이 대통령 탄핵이란 메가톤급 변수를 만나면서 표면화된 것일 뿐, ‘예고된 파국’이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28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에선 ‘조순형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구파든 중도파든 할 것 없이 조 의원의 ‘클린 이미지’가 대안이라는 데 인식이 일치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나타났다. 원내대표감으로 거론돼 온 추미애 의원이 돌연 대표직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이다. 예전에 치렀던 몇 번의 경선에서 상처를 입었던 조 대표는 당장 “경선이라면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을 뺐다. 칠순을 눈앞에 둔 조 대표로선 딸뻘인 40대 후반 추 의원과 경쟁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당내에선 지지도를 제고할 수 있는 호기라며 ‘조-추 빅매치’를 성사시키는 데 주력했다. ‘경선 알레르기’에 시달리던 조 의원도 설득작업에 밀려 출마하기에 이르렀다.
경선 과정에서 추 의원은 ‘단기필마’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일부 소장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현역 의원이 조순형 캠프에 몸을 실었다. 다만 추 의원은 밑바닥 정서를 믿었다. ‘40대·여성·영남 출신’이란, 민주당에서 보기 드문 ‘브랜드’를 가진 추 의원이 총선 국면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순형 캠프는 몸이 달았다. 정통모임 중심의 구주류는 조직을 ‘풀가동’해 조 의원을 도왔다. ‘어떻게 젊디 젊은 여성을 대표로 모시고 일할 수 있겠느냐’는 암묵적 동의가 깔려 있었다.
추 의원은 이에 대해 무척 섭섭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후보 대 후보의 대결에선 경쟁력이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결국 추 의원은 2위에 그쳤다. 경선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으나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해가 바뀌었다. 민주당은 급격히 보수화되는 양상을 띠었다. 조 대표는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 표결 때는 ‘한-민 공조’가 이뤄졌다. 공천은 당권파의 뜻대로 흘러갔다.
추 의원은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은 궁극적으로 조 대표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2월 초 한 사석에서 자신의 처지를 ‘계륵’(큰 소용은 못되나 버리기는 아까운 존재)에 비유했다. ‘얼굴마담’으로 치부하려는 당내 기류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다. 조 대표의 가부장적 당 운영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곧 터졌다. 추 의원은 2월19일 대대적인 공천혁명을 촉구하며 ‘탈당 시사’란 배수진을 쳤다. 조·추의 전쟁 1라운드였다. 당무 거부는 열흘간 계속됐다. 그를 당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개혁공천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겠다는 조 대표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호남 중진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유권자 여론조사로 경선을 치르겠다던 의원들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 당원 경선이나 당원 여론조사를 고집했다.
그리고 문제의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민주당이 엄청난 탄핵 역풍에 휘청거리자 추 의원에게 다시 기회가 오는 듯했다. 소장·중도파들이 추 의원을 단독 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해 당의 이미지를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길고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추미애 선대위원장 체제’가 출범하긴 했으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추 위원장이 박상천·유용태·김옥두·최재승 의원의 공천을 취소한 지난달 30일 밤. 대로(大怒)한 조 대표는 비상대책위를 긴급 구성, 첫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도중 조 대표 휴대폰으로 추 위원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추 위원장은 개혁공천을 단행한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이조차 여의치 않았다. 통화 도중 조 대표 휴대폰의 배터리가 닳아 전화가 끊겨 버린 것이다. 한 당직자는 “휴대폰 배터리가 당의 운명을 갈랐다”고 탄식했다. 한편의 코미디였다.
이후 상황은 ‘마주 달리는 기관차’와 마찬가지였다. 조 대표는 추 위원장이 확보하고 있던 당 대표 직인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음날 중앙선관위에 직인변경신청을 냈다. 선관위는 회의를 연 끝에 조 대표 손을 들어줬다. 추 위원장은 탈진해 링거를 맞으면서도 “지도부가 죽을 길로만 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 사이 민주당 지지율은 나락을 모른 듯 추락했다.
한때는 노소·남녀·지역의 조화로 ‘환상의 콤비’로 불렸던 조순형·추미애. 대 국민 이미지가 매우 좋았던 그들은 그러나 정치력에서는 공통적 한계를 노출했다.
한치 양보 없는 그들의 ‘벼랑끝 혈투’는 민주당을 끝모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법인데, 그들은 이런 이치를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돌아보지 않았던 것일까.
김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