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 ‘쌈리’의 성매매 여성들이 노조를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생존권 주장을 넘어 ‘성노동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위사진은 ‘민성노련’ 사무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성매매 여성들이 여의도에서 정부의 집창촌 단속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던 모습. | ||
지난해 성매매특별법 통과 후 된서리를 맞은 전국의 집창촌은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저항을 했지만 시민들과 여성단체의 냉랭한 시선과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평택 ‘쌈리’의 ‘법외 노조’ 결성은 자칫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내포한 것으로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달 6일 민주성노동자연대노동조합(민성노련)은 쌈리 업주 80여명으로 구성된 성산업인연맹과 28개항의 단체협약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법외노조 움직임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협약에는 ▲노조 전임자배치 ▲하루 10시간 근무 ▲월 1회 생리휴가 및 연월차휴가보장 ▲초상권 보호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현재 민성노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가입까지 요청했다. 아직까지 이들 양 노총에서 공식적인 답변은 없는 상태지만 의지는 식을 줄 모른다.
민성노련이란 기존의 성매매여성들의 모임인 한터여성종사자연맹(한여연)에서 떨어져 나와 평택 ‘쌈리’의 성매매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단체다. 민성노련의 이희영 위원장(25)은 “한여연은 전국 집창촌 여성들로 구성된 큰 규모라 의견 조율이 쉽지 않고 각 지역 집창촌마다의 특수성도 있어 새로운 단체를 구성했다”고 민성노련 결성 과정을 설명했다. 현재 민성노련은 노조전임자 3명과 대의원 20명, 조합원 2백2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거리의 투사로 나선 이유는 ‘성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이제까지 성매매여성들은 “먹고 살게 해 달라”고 생존권을 주장했지만 민성노련은 성매매가 정당한 노동이라며 노동권을 주장한 것이라서 한발 더 나간 형태다.
그러나 정치권과 여성단체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성매매특별법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열린우리당 조배숙 의원 등 여성 국회의원 10명은 “성매매여성들의 법외노조는 인정될 수 없다. ‘민주성노동자연대노동조합’이 업주들과 맺은 단체협약은 현행법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어 당사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효이며 성노동자로서의 선언적 규정 또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단체협약에 선불금을 인정한 부분을 들어 “성매매여성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결국 업주들의 이익을 위한 것”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민성노련의 투쟁 자세도 만만치 않다. 민성노련의 이 위원장은 “이제까지 성매매여성들이 집단시위 등 단체행동에 주력해왔지만 앞으로는 시민단체와 연대해 홍보활동과 성매매여성들이 성노동자로서 주체성을 갖기 위한 ‘학습’에도 힘쓰겠다”고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이 문제를 단순히 성매매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빈곤여성의 노동문제로 봐 달라”고 요구했다. 즉 사회구조적인 모순으로 빈곤에 처한 여성들이 비정규직의 형태로 어쩔 수 없이 성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민성노련은 앞으로 성매매문제를 단순한 생존권 차원이 아니라 체계를 갖추어 노동문제로 전환해 정치쟁점화하는 데 주력해 나갈 방침이다. 민성노련은 “우리의 성적 결정권을 무시하는 여성가족부와 급진적 여성단체들과 토론회를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탁상공론은 집어치우고 집창촌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우리와 대화하길 바란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이 위원장은 성매매에 대해 반대하는 여성단체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는 “우리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는 하나의 여성권력이다. 우리는 부자아줌마들의 여성권력, 배운 거 많고 가진 거 많은 급진적인 여성단체에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노동과 인권, 여성 문제에 대해 많은 ‘학습’을 하며 점점 ‘투사’로 변모해가는 모습이다. 이들은 여러 단체와 연대활동을 통해 ‘의식화’ ‘학습화’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민성노련과 함께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인권뉴스의 최덕효 대표는 “성매매여성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해와 열악한 집창촌 여성들의 현실을 알고 동참하게 됐다”며 “앞으로의 활동에도 적극 연대하겠다”고 말해 자신이 이들의 ‘브레인’임을 인정했다.
민성노련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성매매의 비범죄화다. 비범죄화란 합법화와는 달리 성매매를 법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지만 단속하지도 않는 정책이다. 민성노련은 영업허가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 여성단체의 입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의 한 관계자는 “비범죄주의 정책을 채택한 유럽의 몇몇 나라는 여성의 인권이 잘 보장돼 있고 우리와는 사회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왜곡된 밤문화와 회식문화로 인해 비범죄주의를 채택한다면 부작용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