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상림씨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의 로비 명단에 오른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현직 검사까지 포함돼 있다고. | ||
흔히 일반적인 공갈 피의자와 별반 다를 바 없던 것처럼 보였으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윤씨 수사가 배당된 것부터가 무엇인가 ‘대물’이라는 느낌을 주더니 결국 오랫동안 암약해 온 전문 법조 브로커로 밝혀졌다.
윤씨에 대한 수사가 발 빠르게 진행되면서 군, 경, 법조계는 물론 정가까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여권 실세와 자주 접촉’, ‘거물 브로커 윤씨 정권 핵심 수십명과도 교분’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검찰발이나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되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자기 주변 사람들이 혹시 윤씨와 연관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검찰과 경찰도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은 윤씨의 수첩에 경찰 간부들이 이름이 가장 많다는 사실 자체가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윤씨와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얽힌 소문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도는 검찰도 겉으로는 “털어서 나는 먼지까지도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뒤가 찜찜한 지경이다.
군도 예외일 수 없다. 검찰 수사 이후 윤씨가 군 관계자들과 ‘특별한’ 교분을 쌓았던 사례들이 하나둘씩 공개되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사태가 확산 일로 양상을 띠자 서초동 주변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98년 의정부지원 법조 비리 및 99년 대전 법조 비리에 못지 않은 초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과연 누가 윤씨로부터 소위 ‘관리’됐는지에 대해 검찰 주변에서는 연일 새로운 이름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계좌추적 등이 진행 중이고 윤씨 또한 입을 열지 않아 그저 소문 수준에 불과하다.
검찰 주변에 따르면, 윤씨는 일단 5~6공 시절에는 군, 그리고 YS와 DJ정부 때는 법조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인맥을 관리했으며 특히 호남 출신 정·관계 인사들과는 오랫동안 친분 관계를 형성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씨는 전남 보성 출신이다.
현재 검·경 주변에서 나도는 윤씨의 ‘리스트’는 수십여 명. 검찰과 경찰 고위 간부들이 이름이 주로 거론되고 있고 있는 가운데 항간에서는 몇몇 정치권 인사들의 실명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 쪽에서는 법무차관과 고검장 출신 변호사들과 지검장, 지청장급 현직 검사 등 최소 5~6명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대체로 전남 출신이며 90년대 초·중반 검찰 강력부나 윤씨의 주무대였던 광주나 순천에서 고위 간부를 역임한 바 있다.
덩달아 윤씨의 변호를 맡은 법조인들의 경력 또한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96년 윤씨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검거된 뒤 1심 재판에서는 사시 1기이자 광주지검장과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노아무개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으며, 항소심에서는 하아무개 현 모지역 군수가 윤씨를 변론한 바 있다. 최근에는 법무부 보호국장과 서울남부지검장 출신으로 지난 3월 퇴임한 윤아무개 변호사가 윤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상태다. 이들이 어떻게 윤씨와 관련을 맺게 됐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 윤상림씨를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 ||
군 인맥과 관련, 호남 출신이면서 비하나회였던 장교나 장성들의 이름이 유력하게 번지고 있다. 지난 96년 검거 당시에는 90년 초 특전사령관을 역임한 A씨와 30경비단장이었던 B씨, 7군단장이었던 C씨 등이 주로 언급된 바 있으나, 일단 검찰이나 검찰 주변에서는 구체적인 현직 군 관계자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 인맥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특히 윤씨가 강원랜드에서 수백억원을 세탁한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검찰은 윤씨의 정·관계 인맥을 예의주시하고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메가톤급 폭풍이 밀어닥칠 수도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검찰 주변과 여의도 정가에서는 호남 출신 여권 인사와 전직 공기업 사장, 그리고 DJ측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법조계에 퍼진 윤씨 관련 정황이나 정치권에 알려진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윤씨 로비망은 정·관계를 넘어 재계까지 뻗어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윤씨 수첩엔 검·경 전현직 간부와 군 장성을 비롯해 건설업자들의 이름도 다수 오른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H건설에 대한 윤씨의 로비 정황이 드러난 상황이라 윤씨와 재계 일각의 접촉 가능성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건설업자들이 윤씨가 접촉한 재계인사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게 재계인사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윤씨가) 알만한 재계인사들을 통해 정·관계 로비의 길을 텄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밝힌다. 전직 경찰청장에게 금품제공을 시도하는 등 고위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대담한 로비행태의 교두보에 재계인사들이 있었다는 것.
법조계와 정치권 그리고 재계 일각을 둘러싼 윤씨 관련 풍문 속엔 이미특정 기업인 이름까지 등장하고 있다. ‘A그룹 P회장이 윤씨를 정·관계 인사들과 이어줬다’는 말까지 나도는 것이다. A그룹은 윤씨가 구설수에 오른 건설 분야를 비롯해 금융업과 레저 분야 등에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DJ 시절부터 부쩍 두각을 나타내며 대기업으로 발돋움한 기업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윤씨가 P회장과 자주 만났다는 것은 이미 검찰 안팎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밝힌다. 윤씨와 P회장의 관계도 수사범위에 포함돼 있다는 전언이다.
재계 인사들은 윤씨가 P회장과 잦은 골프회동을 가지며 정·관계 인사들을 소개받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미팅 장소로는 A그룹 소유 골프장이 이용됐다는 소문이다.
P회장과 더불어 윤씨와 친분을 맺고 로비의 교량 역할을 해줬을 것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B기업의 P고문과 C그룹의 S고문이다. B사의 P고문은 호남 출신으로 2000년부터 2004년 초까지 B그룹 계열사에서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DJ정권 당시엔 대통령 직속 경제분과 특위 활동을 하는 등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 연을 맺고 있다.
S고문은 현 정권 실세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나눠온 정치권 인사다. YS정권 때부터 권력 핵심부에 있었던 S씨는 올 봄에 C그룹 고문직을 받았다고 한다. 소문대로 윤씨가 S고문과 교분을 다졌다면 윤씨는 재계를 발판 삼아 정치권력 핵심부까지 손을 뻗쳤을 가능성이 높다.
검·경 전현직 고위간부와의 연루설 외에 재계 유력인사들과의 유착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수사당국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얼마전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불구속 사례에서 ‘검찰의 재벌 봐주기’ 논란이 있었던 터라 수사의 폭을 간단히 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두산 사태와 삼성의 편법상속 논란에 대한 수사당국과 여론의 질타 속에 숨죽이고 있던 재계 역시 윤씨 사건의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