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마친 기자와 검사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반갑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안 부장은 3차에서 폭탄주를 돌리기 바로 직전,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남기춘 중수1과장을 거론했다. 안 부장은 “남 과장이 이중근 부영 회장을 수사하느라고 못왔다”면서 운을 띄웠다. 그러더니 “부영은 앞으로 게이트가 될거야. 간단치가 않다”며 “총선 후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다”고 말했다.
대취한 기자들은 안 부장의 발언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연휴가 지난 6일 이후 기자들은 깨진 기억의 파편을 짜맞췄다. 그리고 4월6일부터 ‘부영 게이트’에 대해서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총선 후 정계개편의 예고탄은 이렇게 쏘아올려지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안 부장 역시 필름이 끊겨 자신이 던진 한마디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부영의 파괴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부영그룹의 비자금은 총선 이후 민주당에게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1995년까지 국내 건설시장 도급순위 1백위권 밖이던 부영은 김대중 정부 시절 몸집을 불려 지난해에는 도급순위 18위까지 올랐다.
특히 부영 이중근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명예총재로 있는 ‘사랑의 친구들’ 후원회장이라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미 총선 이후 구 여권인사들인 K, K, J씨 등이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부영측이 분식회계를 통해 무려 1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를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사격인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에게 채권 6천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거기다 동교동계의 남아 있는 좌장격인 한화갑 의원도 총선 후 대우건설에서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검찰은 한 의원을 구속하려고 했으나 한 의원이 야당탄압을 주장하면서 당사에서 농성, 구속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한 의원은 총선 이후 구속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총선 후 검찰 민주당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
악전고투하며 총선을 치른 한나라당도 총선 이후 검찰의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검찰의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총선 전 박 대표에 대한 혐의는 물론 수사대상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표 혐의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수사검사가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것이 아니다’라고 박 대표에게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에도 박 대표를 소환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소환시기는 총선 후로 미뤘다. 그런데 이게 언론에 알려지자 곤혹스러워진 것이다. 검찰은 박 대표가 지난 대선 전 복당비 명목으로 2억원을, 또 입당 후 지구당 지원비로 1억7천만원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미 검찰은 한나라당 당직자들로부터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박 대표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대선 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철새’ 의원 11명이다. 검찰은 이들이 불법자금인 줄 알면서 이적료를 받았다면, 그리고 지구당 지원비 명목으로 2억원을 받았다면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또 한나라당 지구당에 대한 대선자금 사용처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시킬 방침이다. 검찰은 지구당 소명자료가 불충분할 경우 해당 지구당을 선별해서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게다가 총선 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된다면 한나라당이 예전처럼 검찰 수사 고비고비마다 격렬하게 항의해 수사를 무력화시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번 대선자금 수사의 백미로 기업에서 대선자금을 받아 해외부동산을 구입한 정치인 공개를 미뤄두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이들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소문이 나 만약 검찰수사로 한나라당 의원의 혐의가 드러난다면 한나라당은 또다시 오명을 뒤집어 쓸 가능성마저 있다. 박근혜 돌풍으로 겨우 몸을 추스른 한나라당은 총선 이후 검찰수사로 다시 만신창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해서 열린우리당도 안심할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남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미 노 대통령이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대선자금 횡령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노 대통령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장수천 빚 변제에 창신섬유 회장 강금원씨의 자금 19억원이 투입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능하지만 검찰이 서면조사라도 하게 된다면 탄핵심판으로 코너에 몰렸던 노 대통령은 회복불능의 레임덕에 노출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와 별도로 선거법을 위반한 당선자 역시 검찰 수사를 받을 전망인데, 이 수사 역시 총선 정국의 중요한 변수가 될 예정이다. 검찰은 1백만원 이상의 향응을 제공했거나 30만원 이상의 자금을 유권자에게 전달한 후보들은 구속수사키로 했다. 거기다 사법처리를 속전속결로 처리하기로 했다.
법원도 최근 재판장 회의를 열고 이런 검찰 의지에 부합하는 선거재판 처리 기준을 선보였다.
법원은 특히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온 벌금 80만원 선고를 지양하기로 했다. 공무원 선거사범은 1백만원 이상 형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가 된다. 이미 정계에서는 50여 명의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1년 내로 의원직을 상실해 내년에 대규모 재선거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칼춤을 정치권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한나라당 등 야당은 물론 청와대와 우리당 같은 여권도 검찰의 힘을 줄여야 한다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미 여야는 검찰의 힘을 줄이기 위한 총선 공약을 내걸었다. 공직자비리수사청이나 부패방지위원회 수사권 부여 등이 그것이다. 거기다 검찰은 총선 후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있다. 이 인사에서 정치권은 송광수 총장 측근인사를 좌천시키는 고립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총장의 힘의 원천인 중수부의 수사기능을 완전히 없애고, 일선 지청지검의 특수부를 고검으로 재편하는 검찰로서는 너무나 황당한 검찰개혁안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총선 이후 이런 복잡한 정치적인 지형 속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하지만 ‘송짱-안짱’은 지금까지 정면돌파해왔고, 이후에도 법과 원칙대로 정면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두 사람은 검찰총장으로 중수부장으로 오면서 언제든지 옷을 벗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생즉사 사즉생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검찰, 그들의 칼날에 정국이 선거 전부터 떨고 있다.
박태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