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한나라당 천막당사에서 기자회견하는 박근혜 대표. ‘누추한’ 새 당사를 물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나라당 여의도 중앙당사는 지난 97년 11월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 위용을 드러냈다. 대지 7백63평에 건평 7천5백85평의 지상 10층, 지하 6층 건물이었다. 대부분의 정당이 건물을 임차해 사용한 것과는 달리 10층 규모인 이 건물은 정당 전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때 한나라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평생 여당’을 할 것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당사 전용 중앙당사를 신축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엄청난 규모의 천안연수원도 이런 취지에서 함께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의도 임대 건물에서 터를 옮긴 한나라당의 운세는 그리 좋지 못했다. 당사를 옮기자마자 실시된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패배해 처음으로 야당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던 2002년 16대 대선에서 또 다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호사가들은 이와 관련해 “중앙당사를 신축할 때 일부에서는 ‘여의도가 모래섬이어서 당사를 지으면 사상누각이 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고 입방아를 찧기도 했다.
어쨌든 그뒤 한나라당은 총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지난 3월24일 지금의 천막당사로 터전을 옮기게 된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종합전시장이 있던 자리에 천막으로 가건물을 세운 누추한 곳이었다. 당사라고 하지만 천막과 컨테이너박스 가건물 몇 개가 전부였다. 이전 ‘호화 당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옛 당사는 한 달 관리비만 수억원에 달하는 초 호화판이었지만 천막당사는 40일간 임대비 4천여만원이 고작(?)이었다. 지금까지 당사로만 따지면 가장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엄청난 고행이었다. 이동식 화장실 문제에 비도 새고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아 기관지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애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차떼기 오명에 개혁은커녕 개선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공룡이라는 따가운 질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최병렬 전 대표 체제에서도 당사를 옮긴다는 말만 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던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표가 당의 수장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다음날 당장 당의 현판을 떼 내고 현재의 천막당사로 옮긴 것이었다. 사무처 직원들이 전날 밤샘 작업 끝에 급조한 것이었지만 당사 하나도 제때 옮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당 내외의 따가운 질책을 듣던 터라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당사 찾기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박 대표는 당사를 물색하고 있는 사무처 관계자에게 “호화 빌딩 입주는 절대 안 된다”고 못박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달째 새 당사를 찾고 있는 사무처의 고민도 크다. 오죽했으면 현재의 민주당 당사 입주도 고려했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당 사무처 관계자에 따르면 “한때 현재의 민주당 당사로 옮기려는 생각도 했었다.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민주당이 1~3층을 쓰고 우리가 나머지 위층을 쓰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치도 국회 앞이고 여러 조건이 잘 맞았는데…. 대표가 빌딩 입주는 절대 안 된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의 민주당사도 터가 안 좋은 곳이라 굳이 무리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예전에 기아 건물이었는데 망했고, 현재의 민주당도 이 당사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지 않나. 입주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고 말했다.
▲ 지상 10층 지하 6층의 옛 당사 | ||
사무처 관계자는 “영국계 회사와 두 달여 전 MOU(양해각서:정식계약체결의 이전단계에서 양 당사자 간의 이해나 합의 사항을 기록하는 경우)를 체결한 뒤 현재는 내부 실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업도 거의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면서 “4월25일까지는 이 회사와 정식계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매각대금은 4백50억원 정도 되고 모두 현금으로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영국계 회사는 한나라당사를 한국 지사로 사용할 예정이며 사무실로 쓰기 위해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당사 구입 자금이 확보되어도 새 당사에 대한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 시기는 5월 말이나 6월15일 전당대회 일을 기해 옮기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당 사무처는 새 당사의 입주 조건으로 보증금 10억원에 월세 2천만원을 마지노선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더 이상 임대비 지급은 곤란하다는 것. 옛 당사 관리비가 한 달 수억원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허리띠는 많이 졸라맨 셈이다. 당사 규모도 1천여 평 정도로 예상한다. 예전 건물이 7천5백여 평이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준 셈이다. ‘공간이 너무 협소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당 사무처 인력 3백50여 명을 약 1백 명 미만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조건을 따지다 보니 장소는 자연히 여의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임대비가 상대적으로 싼 강서구 가양동이나 영등포구 양평동 일대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당사 형태도 건물 하나에 지상주차장이 있는 소규모 단독 건물을 찾고 있다. 빌딩 입주는 원천적으로 배제되었기 때문. 공간이 모자랄 경우 H빔으로 된 조립식 건물 몇 개도 신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당사 줄이기는 원내 정당화 정책과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사무처의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해 중앙당을 슬림화하고 모자라는 공간은 국회 본관의 사무실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국회 본관에는 원내 교섭단체에 주는 공식 사무실이 많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된다는 것.
사무처 관계자는 “중앙당사는 예전에 비해 인력도 줄어들기 때문에 공간도 대폭 줄인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17대부터는 당직자들이 국회에서 주로 생활할 것이다. 중앙당사는 핵심 당직자용 사무실과 회의실용으로만 사용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야 원내 정당화라는 기본 취지와도 맞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과연 ‘허름한’ 새 당사에서 찬란한 대권의 꿈을 꽃피우게 될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