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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글랜드 훌리건 매튜(가명)는 자신들의 목적은 경기가 아닌 상대팀 응원단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 ||
하지만 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특히 ‘훌리건’이라 불리는 난폭하고 광적인 축구팬들 문제는 이제 ‘발등의 불’이다. 월드컵 개최국들은 언제나 훌리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실제로 지난 1백년 동안 축구장 난동으로 사라진 무고한 생명이 약 1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대체 훌리건들은 무엇 때문에 축구장에서 과격한 난동을 일삼는 걸까. 과연 이들은 이번 월드컵 때도 모종의 ‘거사’를 벌이려 할까.
<일요신문>은 훌리건의 원조국으로 불리는 잉글랜드의 한 훌리건과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영국 현지에서 축구 관련 범죄로 ‘축구장 출입불가’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월드컵 기간 동안 혹시 거리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훌리건들의 ‘전력’을 미리 한번 분석해 ‘일전’에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잉거런드, 잉거런드, 잉거런드….”
지난 4월17일 저녁 8시 매튜 클라크(가명?27)는 런던의 어느 펍(잉글랜드의 대중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잉글랜드’팀을 연호하고 있었다. 2002한?일월드컵을 대비해 파라과이 대표팀과의 평가전이 벌어진 날이었다. 경기결과는 4-0으로 잉글랜드의 일방적인 승리. 영국 리버풀 안필드 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2천명의 관중들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즐거운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싶어도 못보는 잉글랜드 ‘극성팬’들도 적지 않다. 이유는 훌리건으로 ‘찍혔기’ 때문. 축구와 관련된 범죄기록이 있을 경우 누구든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영국정부는 훌리건 문제가 심각해지자 축구폭력에 연루된 사람은 경기장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매튜 클라크도 이런 기준에서 보면 훌리건에 속한다. 그는 영국프로축구팀 웨스트 햄, 입스위치 타운, 그리고 사우스엔드 팀의 경기에는 입장할 수가 없다. 이들 3개팀과 관련된 축구폭력사건에 연루돼 모두 2년 동안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잉글랜드팀을 응원하다 폭력사건으로 구속된 적도 있다.
그의 이름은 영국정부가 발표한 ‘훌리건 블랙리스트’ 1천7명의 명단에도 ‘당당하게’ 올라가 있다. 영국정부는 지난 5월18일부터 이들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매튜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축구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웨스트 햄의 열렬한 팬으로 이는 일종의 ‘모태 신앙’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매튜도 자연스레 모태 신앙을 가지게 된다. 웨스트 햄과 사우스엔드 축구팀의 팬이 된 것. 그는 이들 두 팀을 응원하는 훌리건 클럽 ‘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클럽에는 1천~2천명 정도의 훌리건이 가입돼 있다고 한다.
매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는 자기가 속한 ICF 클럽 외에 약 1백여개의 ‘훌리건 클럽’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1백여 개의 클럽명단을 기자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이들 클럽들은 응원만 주로 하는 일반 팬클럽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주요 활동은 암표와 마약 판매, 그리고 상대 축구팀 팬들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암표 사업은 거대한 비즈니스로 이들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축구경기 암표판매가 매우 성행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 기간 중 일본에서 열리는 잉글랜드의 예선 경기 입장권은 ‘티켓 타우츠’라고 불리는 암표상들에 의해 약 2천파운드(약 4백만원)에 거래될 정도라고.
이들 클럽들은 서로 다른 국내 프로리그 팀들을 응원하다가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국제경기를 하면 하나로 뭉친다고 한다. 평소에는 지지하는 팀이 달라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지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출격’할 때면 애국심을 발휘해 하나가 된다는 것. 잉글랜드에는 우리나라의 ‘붉은 악마’와 같은 공식적인 대표팀 응원단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 원정경기에서 이들 훌리건들은 1년 중 유일하게 한 팀이 되어 ‘피 터지게’ 잉글랜드 대표팀을 응원한다고 한다.
기자는 왜 이들이 상대팀 서포터스들을 ‘응징’하고 경기장 폭력을 일삼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매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경기 중에 나를 자극하는 상대팀 서포터스들을 볼 때마다 왠지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는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싸우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잉글랜드 팀이 이기든 지든 이들은 폭력을 일삼는다. 이들은 왜 싸우고 싶어하는 것일까. 여기서 잠시 훌리건의 어원을 따라가보자.
훌리건이란 말은 어원이 여러 가지다. 먼저 1898년 영국 런던경시청 보고서에 처음 이 말이 등장했다는 주장이 있다. 19세기 말 아일랜드 출신의 부랑아 ‘패트릭 훌리한’이 원조라는 설도 있고 당시 한 갱단의 이름인 ‘훌리 갱’을 잘못 발음해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다.
훌리건이 심각한 국제문제로 대두된 것은 지난 1985년. 당시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 응원단 사이에 폭력사태가 벌어져 39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때부터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국제적으로 기피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웃나라 독일이나 네덜란드에도 훌리건들이 있지만 훌리건의 종주국으론 단연 잉글랜드가 손꼽힌다. 이유가 뭘까. 매튜는 이 물음에 대영제국의 후예로서 점점 이야기의 톤을 높이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이 알다시피 잉글랜드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만든 종주국이다. 처음 월드컵이 열렸을 때 우리는 대회 수준이 낮아 참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난 1966년 영국월드컵 때는 독일을 꺾고 우승도 했다. 그런데 그뒤 모든 게 달라졌다. 사자(잉글랜드 축구협회의 문장)들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서포터스들까지 힘을 잃고 비틀거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파워를 보여주고 싶었다. 옛 우리 선조들의 영광을 생각하며 우리는 싸운다.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싸울 뿐이다.”
매튜와 같은 잉글랜드의 훌리건들은 대영제국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지금까지 그들 조상들이 지배했던 세계와 축구에 대한 환상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축구를 스포츠로 인식하지 못하고 국가간의 전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왜곡된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위험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훌리건들이 곧 한국이나 일본으로 ‘우르르’ 몰려온다는 점이다.
당연히 경기장 안팎의 안전대책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다행히 훌리건이 많은 잉글랜드 독일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는 일본에서만 예선전이 열린다. 하지만 16강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나라들이 경기를 가지기 때문에 결코 ‘훌리건 안전지대’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1만여명이 넘는 영국인들이 일본으로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록 영국 정부가 1천7명의 훌리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출국을 차단했지만 이들보다 훨씬 많은 훌리건들이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매튜는 “1백여개 훌리건 클럽의 회원 수는 적어도 수만명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영국정부는 이 중에서 고작 1천7명에게만 족쇄를 채웠다. 나머지 수천, 수만명은 언제든지 한국이나 일본으로 갈 수 있다. 블랙리스트로 출국을 관리한다고 훌리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출국을 봉쇄당한 훌리건들이 온갖 방법으로 자국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영국정부가 9백32명의 극렬 훌리건에 대해서는 ‘월드컵 경기 전 여권을 압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처방법이 아닌 것 같다.
매튜는 계속해서 자신의 ‘범죄계획’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와 내 친구들이 비록 출국금지를 당하기는 했지만 이들 중 몇몇은 꼭 일본이나 한국으로 갈 것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2주일 전쯤 미리 다른 유럽지역으로 빠져나가는 방법도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지에서는 자국 훌리건들의 출국에만 신경을 쓸 것이다. 외국인인 우리들에게는 엄격하게 출국심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안되면 동남아시아지역으로 가서 ‘응원’을 하든지 그곳에서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우리는 꼭 월드컵을 ‘즐기러’ 갈 것이다.”
매튜의 자신에 찬 계획이 실행되지 않더라도 1만여명으로 예상되는 한국과 일본 입국 예정 영국 관광객들 중 상당수는 훌리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큰 골칫거리다. 월드컵조직위원회측은 이에 대해 “우리는 입국심사, 세관검사, 그리고 경기장 입장 때 엄격하게 훌리건들을 솎아낼 것이다. 이상한 물건을 반입한다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심사와 검사만으로 훌리건들의 교묘한 침투를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신분을 세탁한 훌리건이 ‘젠틀맨’으로 위장해 대중에 섞여 있을 경우 이를 가려낼 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입장권 실명제’를 통해서도 훌리건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암표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축구협회의 고육책. 주로 훌리건들이 암표를 구입할 것으로 예상돼 암표차단이 안전대책의 필수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제도도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미지수다.
매튜는 이 문제에 대해 “훌리건들은 암표만 구한다면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수만명이 입장하는 경기장에서 티켓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외국인일 경우 더욱 얼굴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월드컵조직위측은 “경기장 입장 때 관람객 검색시간과 입장권 확인작업이 오래 걸릴 것은 각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경기 2시간 전까지는 꼭 입장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응원도구 등의 반입을 자제했으면 한다. 맨몸으로 오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수만명의 입장권과 신분증을 일일이 체크하다 경기가 늦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사실상 대책이 없는 듯했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기자는 매튜에게 한국이 속한 D조에 대한 예상을 물었다.
“포르투갈과 미국이 강팀이라고 본다. 그래도 한국은 포르투갈과 비기고 미국과 폴란드에는 승리할 것으로 본다. 한국은 꼭 16강에 진출할 것이다.”
매튜는 영국 남부 쇼틀리 출신으로 유명한 한 록그룹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와 관련해 신분노출을 꺼려 가명을 사용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하지만 사진은 보내주겠다며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었다. 훌리건을 뒷골목 폭력배 정도로만 알고 있던 기자의 선입견을 비웃는 듯 매튜는 인터뷰 내내 말 그대로 ‘젠틀’했다. 그는 기자에게 ‘잉글리시 유머’ 하나를 던진 뒤 전화를 끊었다.
“잉글랜드는 한국이나 일본 축구팬들과는 좋은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기간 중 우리 훌리건들은 최소한의 폭력만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폭력도 오로지 한국의 상대팀 포르투갈 미국 폴란드에 집중될 것이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기자는 그의 서늘한 유머에 즐거워해야 할지 괴로워해야 할지 잠시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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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최고(?)의 훌리건 클럽 ICF의 유명한 보스였던 캐스 페넌트. 앞의 말은 그의 자서전 제목이다. | ||
‘훌리건’ 매튜 클라크는 잉글랜드 훌리건 클럽 ‘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ICF) 소속이다. 이들은 프리미어 리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를 열렬히 응원한다. 런던에 위치한 이 클럽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조직화가 잘 된 것으로 악명이 높다.
ICF는 80년 중반 <훌리건>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주역으로도 등장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일약 ‘전국구’로 떠오르면서 훌리건 클럽 문화를 주도했다. 한때 이 클럽의 유명한 보스였던 캐스 페넌트는 <축하한다, 당신은 지금 ICF를 만나고 있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옛날 ICF의 역사와 활동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ICF와 함께 잉글랜드의 또 다른 유명한 훌리건 클럽은 밀월(Millwall)팀의 팬 클럽인 ‘밀월’이다.
두 클럽은 가장 오랜 라이벌이자 앙숙이었다. 이들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서 수많은 사망자를 낸 가장 폭력적인 사건의 단골 악역들이었다. 언론도 이 두 클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로 잉글랜드에선 유명한 훌리건 클럽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