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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씨들은 심드렁 업주들은 설렘.’ 월드컵을 앞둔 홍등가의 표정이다. 사진은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 ||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뜻밖의 이들도 있다. 바로 ‘밤꽃 거리’ 사람들.
대개 외국을 방문하면 그 나라의 윤락가에 한 번쯤 발길을 옮겨 보는 남성 관광객의 특성상 이들을 맞이할 ‘밤꽃 거리’ 사람들의 기대도 적지 않을 듯하다. 과연 서울의 밤꽃거리에선 어떤 월드컵 바람이 불고 있을까.
지난 5월25일 늦은 오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밤꽃 거리인 속칭 ‘청량리 588’.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지나는 손님이나 유리문 안에 자리잡은 아가씨들, 양쪽 모두 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아가씨들도 쪼그려 앉아 화장을 고치거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 전송에 열을 올리는 등 평상시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월드컵이요? 오히려 손님이 줄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다들 축구에 정신 팔려 여기까지 올라나 몰라.”
이곳 청량리에서 일한 지 이제 5개월째를 맞았다는 민지(가명?24)는 의외로 심드렁한 반응이다. 한마디로 월드컵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대할 건 없다는 말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해도 일본이나 홍콩, 중국 사람들을 제외하면 받지 않는 게 ‘관행’이니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
이곳의 ‘밤꽃’들 대부분이 위의 세 나라를 제외한 외국 남성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일단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기피는 위생상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청량리 588 내에서도 음지라 할 수 있는 안쪽 깊숙한 곳의 밤꽃들 이외에는 언감생심 말붙이기도 힘들다.
미군을 비롯한 서양 사람에 대한 거부반응은 ‘신체적’(?) 이유 탓이 크다고 한다. 성에 대한 문화 자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서양사람 특유의 체취 역시 밤꽃들에게는 두려운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민지 옆에서 ‘히빠리’(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던 윤아(가명)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기도 했다. “우리야 비록 몸을 팔지만 이웃 일본이나 중국 사람도 아닌 동남아나 서양 사람들에게만은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존심이 있다”며 나름대로의 ‘긍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고 있는 대다수 ‘밤꽃’들이 이런저런 이유들로 월드컵 특수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보이지 않는 데 반해, 남자들의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뜸한 골목 안쪽의 ‘마이너급’ 밤꽃들과 상당수 업주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특히 50대 중반의 한 여성 업주는 “그래도 국가적인 행사를 맞아 방문한 손님인데 이번만큼은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청량리에서 ‘장사’를 한 지 만 5년 됐다는 이 업주는 “월드컵을 맞아 우리나라를 찾아 왔으니까 손님으로 받아주기는 하되 서양 사람은 1백달러(약 12만5천원), 일본인은 1만엔(약 10만원)으로 공식가격을 정하고 그 이하는 안된다고 못박아두면 서로 좋을 것”이라며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몇 년째 6만원을 받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 업주는 “서양 사람의 특성상 직접 찾아오는 것보다 호텔을 미리 잡아놓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5백달러 이하는 안된다고 해야 한다”며 ‘출장’가격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월드컵 특수가 ‘매출증대’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이곳 업주들도 ‘기대 반 회의 반’이었다. 앞서의 한 여성 업주는 “재작년 아셈인지 뭔지 할 때 보면 평소와 거의 변화가 없던데 이번에도 섣불리 예상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곳 밤꽃거리 업주들은 나름대로 월드컵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이 지역 업주들의 모임인 자율정화위원회 조철민 위원장은 “월드컵을 맞아 우리도 과도한 호객행위를 자제하는 등 먼저 기초질서를 잘 지키기로 했다”며 “집집마다 수백만원씩 들여 홀을 깨끗이 단장하는 등 나름대로 손님맞이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월드컵 특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이곳의 기대심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셈.
낯선 외국 사람들에게만은 몸을 허락할 수 없다는 ‘밤꽃’들의 자존심과 월드컵 특수를 기다리는 업주들의 설렘이 교차하는 청량리 588의 밤거리. 분홍빛 네온사인이 하나둘 불을 밝힐 때쯤 ‘그들만의 장외월드컵’도 서서히 달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최성진 기자 vanita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