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내대표 경선과 개각 및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내 친노그룹이 주도권 장악을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왼쪽부터) 염동연 당선자,문희상 당선자, 유시민 의원 | ||
여권 진용 대개편의 주요 계기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5월11일)과 개각(6월 하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7월 중 예정)를 앞두고 친노 그룹 구성원들이 노선과 성향에 따라 ‘각개약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노선-정책 대결과 ‘세(勢) 불리기’ 등 여권 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경쟁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친노 그룹은 노 대통령과의 이런 저런 인연을 매개로 형성된 집단이다. 그런 만큼 노선과 성향을 기준으로 정체성을 거론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분화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여권 내에선 친노 그룹을 대략 5개 소그룹의 느슨한 묶음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범위를 원내(院內)로 한정해 볼 때 5개 그룹은 대체로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
▲통추 그룹=김원기 열린우리당 최고상임고문, 원혜영 유인태 당선자 등.
▲노무현 캠프 출신=염동연(전 대선 후보 정무특보)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홍미영 선병렬 김기석 당선자 등.
▲청와대-내각 출신그룹=문희상(전 비서실장) 권선택 문학진 김진표 한명숙 변재일 당선자 등.
▲범(汎) 개혁당 그룹=김원웅 유시민 의원, 박명광 강혜숙 유기홍 당선자 등.
▲영남그룹=김혁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전 경남 지사) 조성래 윤원호 조경태 강길부 김맹곤 최철국 당선자 등.
이들은 그동안 열린우리당이 정동영 의장을 축으로 한 당권파와 김근태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당권파 간 주도권 다툼에서 비교적 중립을 지켜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4·15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안된 데다 당내 계파간 세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특별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내대표 경선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당권파가 천정배 의원(3선)을, 비당권파가 이해찬 의원(5선)을 각각 후보로 내세우면서 친노 그룹도 “노심(盧心)은 없다”는 노 대통령의 다짐과 관계없이 양분되는 양상을 노정했다.
이같은 흐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노 대통령 시니어 측근그룹의 핵심인 염동연 당선자. 초선이긴 하지만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호남권의 새로운 ‘맹주’(盟主)를 노린다는 염 당선자는 일찌감치 천 의원 지지를 선언하는 등 경선전에 적극 개입한 상태.
그는 특히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중식당 ‘외백’에 무려 53명의 초선 당선자가 모인 가운데 오찬회동을 가져 당 안팎의 주목을 끈 바 있다. 1백8명 초선 당선자 중 절반 가까이나 되는 참석 규모도 규모지만 원내대표 경선을 일주일도 채 남겨 두지 않은 민감한 시기에 염 당선자가 이들을 불러 모은 배경이 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이날 회동은 염 당선자와 강창일 김기석 김낙순 김영주 김현미 양형일 우윤근 당선자 등 주로 호남 또는 민주당 출신에, 정동영 의장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주도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복귀 이후 국정운영과 실용적 개혁주의를 적극 뒷받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모임의 취지”(염 당선자)라고 했지만, 실제론 독자세력화를 통해 당면한 원내대표 경선 등 당내외 현안에서 ‘트러블 슈터’(Trouble Shooter:해결사)의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란 평가다. 첫 회동에서 대표 선출도 없이 ‘열린정치를 위한 의원 모임’(가칭)이란 명칭과 함께 정례화를 추진키로 확정한 것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염 당선자는 6일 회동에서 상당수 당선자들에게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 의원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선자는 “염 당선자는 `천 의원이 2002년 대선 당시 현역 의원 중엔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인물인데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찬에서 천 의원 지지 얘기가 공식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으로 나중에 알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선자는 “염 당선자가 너무 오버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중립’을 선언한 터에 핵심 측근이란 사람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문제도 이만 저만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솔직히 찜찜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한 그런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모임을 운영하면 앞으론 멤버가 첫 회동 때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고 가세했다.
일부에선 염 당선자가 연청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동교동계에서 잔뼈가 굵은 점을 빗대 “염 당선자가 ‘제2의 권노갑’이 되고 싶은 모양”이란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염 당선자가 당권파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과거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그랬던 것처럼 여권 내 인사문제를 책임지는 정무조정위원장에 내정된 것을 두고도 이래 저래 말이 많다.
일각에선 아울러 그가 추진중인 모임을 김대중(DJ) 정권 시절 정균환 전 의원 등이 이끌던 중도개혁포럼에 비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도개혁포럼은 ‘DJ 직계’를 표방하며 당내 계파간 세력 균형추 역할을 자임했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반노’(反盧) 세력의 핵심거점이 된 바 있다.
당권파와 코드를 맞춰가고 있는 염 당선자와는 반대로 열린우리당 내에서 사실상 노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문희상 당선자(대통령 정치특보)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비당권파에 기울어 있다는 평가다. 문 당선자는 실제 당권파 핵심인 정 의장과 천정배 의원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문 당선자는 지난달 26일 입각을 꺼려하는 정동영 의장측을 향해 “만약 누구라도 대권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행정경험을 쌓는 것이 상당한 플러스가 될 것”이라며 압박한 바 있다.
또 원내대표 경선에 현안으로 등장한 언론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17대 국회 1년 안에 결실을 봐야 한다”(천정배 의원)는 당권파측 주장에 대해 “17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갈등이라고 보여지는, 언론개혁은 (개혁의) 우선순위가 아니다”고 반박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그는 나아가 “선수를 따져보면 5선인 이해찬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는 것이 순리 아니냐”는 입장을 펴고 있다.
문 당선자는 그러나 현안별로 노 대통령의 의중을 열린우리당에 전달하고, 경우에 따라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만 세력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염 당선자는 물론 개혁당 그룹과 차별성을 갖는다. 당내 현안을 두고 이른바 ‘노심’ 논란이 일 여지는 가급적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라 하겠다.
문 당선자의 이같은 노선에 대해 친노 그룹 중 김원기 최고고문 등 통추그룹과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당선자 등 청와대 출신 386그룹, 영남그룹들은 암묵적으로 지지 입장을 밝혔다는 후문이다. 비당권파도 문 당선자가 당내 계파간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조정역’을 맡을 경우 협조할 것은 협조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범 개혁당 그룹은 당내 주도권 장악이나 계파간 세력균형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여당 속 야당’을 목표로, 이념-정책-노선 경쟁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특히 당권파와 대척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선자 워크숍(4월26~28일)에서 당권파 중심의 실용주의 노선을 강력 비판한 것이나, 지난 4일 중앙위원회의에서 당권파가 제시한 당직 인선안 처리를 보류시킨 것이 비근한 사례로 꼽힌다.
범 개혁당 그룹도 지난 6일 국회에서 유시민 박명광 김태년 안민석 강기정 장경수 김재윤 정청래 김형주 장향숙 유기홍 당선자 등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여정치를 실천하는 의원들의 모임’(가칭)이란 독자 결사체를 조직했다. 이들은 앞으로 모임 멤버를 20여 명으로 늘리는 등 당내 ‘개혁 블럭’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유기홍 당선자는 “참여모임은 서로 연고가 없기 때문에 파벌은 아니지만, 가치 지향의 동질성면에서 ‘정파’라고는 볼 수 있다”고 말해 앞으로 당내외 주요 현안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지난 인연에 연연함 없이 사안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개혁당 그룹의 ‘좌장’격인 유시민 의원은 최근 “노 대통령이 당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 한 사람의 당이 아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노 대통령도 비판의 대상으로 결코 예외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권 내에선 친노 그룹의 분화가 7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탄핵 심판 후 노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배가될 것이 자명한 만큼, 어찌 보면 더 이상 친노 그룹이란 규정 자체가 의미없어질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대신 정책-노선상의 차별성에 기초해 당권파나 비당권파와의 제휴를 거친 후, 차기 대권경쟁 구도가 잡히는 시점에나 확고한 이질적 세력으로 분화가 마무리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