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가 김성모 씨의 <사강흉악범> 앞부분. 감호소 동기 A 씨의 증언을 토대로 이낙성 씨의 은신행각을 예측해놨다. | ||
이낙성의 행적이 묘연해지자 세간에서는 밀항설, 자살설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죄조직이나 해외에 별다른 연고가 없는 이 씨가 거액이 드는 데다 위험스럽기까지 한 밀항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자유’를 위해 탈주를 감행한 이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게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낙성은 대체 어떻게 도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이 씨가 이러다가 신창원의 탈주 기록(2년 6개월)을 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이낙성의 숨겨진 진면목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씨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어수룩한 잡범’이 아니라 ‘성적 능력이 탁월하고 무서운 체력과 의지력을 지닌 범죄자’라는 것. 따라서 이낙성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낙성을 ‘감히’ 신창원과 비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려 2년 6개월간 신출귀몰한 탈주행각을 벌이다 검거된 신창원은 영리한 이미지에 남성적인 카리스마마저 풍기는 인물이었다.
반면 이낙성의 ‘알려진’ 이미지는 신창원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168cm의 보통 키에 펑퍼짐한 체형, 초점 없이 어수룩하고 흐릿한 눈매의 이 씨의 외모는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아저씨’ 스타일인 것이다. 이미지만으로 볼 때 이 씨는 그럴싸한 도주행각을 벌이기 어려운 소심한 잡범 정도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수사 관계자들과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이 씨가 지극히 평범한 인상을 갖고 있어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의 은신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씨의 오랜 도피 생활을 단순히 ‘지극히 평범한 이미지’ 덕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이 씨의 어떤 면면이 장기 도피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낙성의 진면목은 그의 알려진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는 주장에 한번쯤 귀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런 의문 때문이다.
‘범죄예방만화’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모 씨는 이낙성의 청송감호소 동기 A 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자신의 작품 <사강흉악범> 앞머리에서 이낙성의 은신행각에 대해 예측한 바 있다. 김 씨는 “이낙성과 함께 수감생활을 한 A 씨에 따르면 그의 어설픈 이미지는 ‘철저하게 계획되고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며 이 씨의 또 다른 면모를 소개했다.
감호소 내에서 이낙성은 항상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고 독거방에서 사색과 명상을 즐겼다는 것. 항상 무표정한 이 씨의 얼굴에 유일하게 생기가 도는 순간은 하루에 한 번 허용되는 운동시간이었다고 한다. 이 씨는 운동을 지독히 좋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는 것.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그냥 걷기도 힘든 운동장을 죽어라 달리는 이 씨를 두고 감호자들은 ‘미친 놈’이라며 수군거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 이낙성 | ||
당시 이 씨의 병세는 그냥 방치할 경우 항문이 썩어 들어갈 만큼 위험한 상태였는데 극한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찬물을 고수했다는 것은 그의 독한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씨가 치질수술을 위해 입원했다가 탈주한 사실로 볼 때 그가 애초부터 치질을 더 키워 치료를 틈탄 탈주를 계획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경찰은 탈주한 이 씨가 치질치료를 위해 병원에 찾아갈 경우를 대비해 이 씨의 행적을 쫓아 주변의 항문외과와 약국을 수색하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이 씨가 경찰의 동선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는 가정이 가능한데 이는 곧 그가 결코 어수룩한 3류 범죄자가 아니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실제 경찰은 이 씨가 체력을 길러왔다는 점에 주목, 일반인들이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그가 은둔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씨가 인적이 없는 산 속이나 외딴 섬, 노인들만 사는 오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씨가 수감생활 중 최악의 도피생활을 염두에 두고 극도의 추위와 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체력을 단련해왔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경찰은 이 씨가 1년 6개월 동안 혼자 도피생활을 이어오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시로 검문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 지방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연고지인 수도권 인근을 중심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은둔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씨는 인생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 탓에 이렇다 할 친척이나 지인이 없는 처지. 따라서 경찰은 교도소 동기나 이 씨와 정을 통한 여인이 그의 도피를 돕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도면밀하게 탈주를 준비했던 이 씨가 평소 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고 성적 능력 또한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섹스’를 도피의 수단으로 삼고 있을 개연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이 씨는 감호소 방 안에 섹스 관련 잡지 등을 쌓아놓고 읽다가 불시 검방 때 적발되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화가 김 씨는 이낙성이 정을 통한 여성의 품 뒤에 숨어 지낼 가능성과 함께 동성애자인 감방 동료 곁에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을 높이 거론하기도 했다. 이낙성이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감호소 내에서 동성애자의 상대 역할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은신처가 절박한 이 씨의 처지로 보아 당시의 감방 동료에게 은밀히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김 씨의 지적이다.
‘평범하고 어수룩한 잡범’과 ‘강인한 체력과 주도면밀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두 얼굴을 지닌 이낙성. 과연 그는 지금 어떤 ‘얼굴’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을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