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현장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 DB
새정치민주연합 측 한 보좌관은 한숨과 함께 푸념 섞인 얘기를 늘어놨다. 최근 불고 있는 출판기념회 규제 바람과 관련해서다. 국회에서는 대부분 불만 섞인 목소리가 가득하다. 지역구 관리, 사무실 비용, 인건비, 회식 등 의정활동 유지를 위해서는 현행 후원금 1억 5000만 원(선거 기간에는 3억 원)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합법적’ 뇌물 통로라는 비아냥도 들리는 게 사실이다. 출판기념회는 선거 전 90일 동안 열 수 없다는 선거법 조항 외에는 모든 것이 자유롭다. 출판기념회 수입은 책을 팔아서 번 돈이기에, 온전히 개인 수입에 포함된다. 현행법상 기부자를 밝힐 필요도 없고 모금액 제한도 없다. 출판기념회의 횟수 제한도 없으며 선관위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법에 위반되지 않는, 교묘한 형태의 ‘눈 먼 돈’이라는 지적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출판기념회의 핵심은 바로 ‘모금함’에 있다. 올해 초 야권 유력인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는 한 관계자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당시에는 해당 인사가 몸값이 한창 올라가고 있을 때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모금함 박스 세 개가 흰색 돈 봉투로 꽉꽉 찼는데 나중에 봉투를 넣는 사람들은 거의 구겨가며 넣곤 했다”고 전했다. 모금함은 보통 종이박스에 흰색 종이를 감싸 내부가 안 보이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중에는 박스로는 부족해 화장실에서 쓰는 파란 쓰레기통이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두 개의 테이블 아래에 파란 쓰레기통을 놓고 테이블을 조금 벌려 놓는 식이다. 그 위에는 밑바닥이 뚫린 모금함을 올려놓는다. 한 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봉투를 무한대로 넣을 수 있게 ‘배려’를 하는 셈이다.
모금이 끝나면 그 액수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국회의원과 최측근 보좌관 외에는 액수가 얼만지 의원실 관계자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한 새누리당 의원 측 관계자는 “모금함은 굉장히 민감하게 관리가 되기 때문에 의원님 외에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라고 전했다. 측근 보좌관들조차 믿지 못해 ‘가족’들을 동원하는 의원도 있다. 가족들을 은밀히 불러 집에서 액수를 세고 모금액 전부를 부인이나 자녀들 계좌에 넣어 놓는 것이다. 전언에 따르면 지난해 출판기념회를 했던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기념회가 끝난 후 모금함을 직접 들고 나가는 바람에 의원실 관계자들이 모금함의 행방(?)을 찾아다녔다는 황당한 이야기들도 돌고 있다.
최근 강남 소재 한 기업이 1000만 원을 내고 한 국회의원의 책을 트럭째로 받았다가 되돌려 보내 로비 자금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렇다면 대체 출판기념회에서 오고 가는 돈 봉투의 ‘액수’는 어느 정도 될까. 단가는 딱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최소 10만 원’은 내야한다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0만 원부터 시작해서 조금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20만~30만 원’ 정도는 내야 체면치레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정가가 보통 1만 5000원인 점을 감안한다면 최소 10배에서 20배의 금액을 내는 셈. 책에 ‘금테두리’라도 둘렀느냐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 출판기념회를 갔던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그 자리에서 100만 원을 내고 와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재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한 새누리당 의원은 2만 원을 내고 5000원을 거슬러 가 ‘정말 지독하다’는 평을 얻은 적도 있다. 사실 책의 정가를 내는 게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정상적인 것이긴 한데, 두 정치인의 ‘배포 차’가 정치권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라고 전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정상적인 행동이 정치권, 출판기념회에서만큼은 비정상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지역 기업인들은 더욱 고달프다. 지역이 좁다보니 지방자치단체장의 출판기념회는 ‘필수 참석 코스’다. 특히 4년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청장이 난무하는데 지역 기업인들을 이를 ‘고지서’라고 표현한다. 경북 지역에서 오랫동안 건설업을 했던 한 관계자는 “하다못해 작은 건물 수의계약이라도 따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 출판기념회가 눈도장을 찍는 데는 괜찮다. 뒤끝이 없고 적당한 성의표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판기념회는 동료 정치인, 기업인, 정치 지망생들의 ‘친분과시와 로비의 장’으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세를 과시하는 동시에 실탄까지 장전하는 일석이조 효과 앞에 정치인들이 득달 같이 달려든다는 것.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향력이 크고 정권 실세인 정치인의 경우 출판기념회에 2000명에서 3000명이 참석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번에 5억 원에서 최대 ‘10억 원’을 벌어들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의원의 위치에 따라 출판기념회의 ‘흥행 기준’도 달라진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초선이나 재선일 경우 평균 ‘1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 중진 의원일 경우 ‘2억 원에서 3억 원’ 정도는 들어와야 행사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권력 실세에다가 알짜배기 상임위까지 겹치면 금액은 더욱 더 상승한다. 대필 작가를 동원해서라도 책을 최대한 빨리, 많이 뽑아내는 게 그만큼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정치권에 따르면 대필 작가를 쓰는 비용은 평균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의 정치권 관계자는 “책 수준을 보면 개인 일기를 써놨거나 명언 모음집 등 거의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다. 심지어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판매가 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출판기념회가 자체가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