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노 대통령이 직무 복귀 담화문 발표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노 대통령의 향후 경제 운영 구상은 한마디로 “민생경제를 최우선적으로 챙기면서 성장을 추구하되 개혁을 미루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안정, 성장, 개혁이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좇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한 정책전문가는 “최근 경제정책의 혼선으로 얘기되는 성장론과 분배론 또는 안정론과 개혁론의 문제는 더 이상 갈등이나 대결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구상 안에서 이미 하나가 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성장과 안정, 개혁이 모두 국가적인 과제이지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며, 결국 노무현 경제정책은 이 모든 것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좇는 것에 있다는 얘기다.
◆세 마리 토끼를 잡아라
첫째 토끼는 ‘민생안정’이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도 “당면한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는 말로 경제정책의 서두를 꺼냈다. 위에 언급한 정책전문가는 “노 대통령은 최근 고유가 등 대외적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내수 침체로 특히 서민들이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고 전제, “대통령은 민생안정이야말로 결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화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 토끼는 ‘성장력 키우기’다. 이 전문가는 “노 대통령은 민생안정이 성장이라는 동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노 대통령이 강조하는 성장력은 잠재 성장력이고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개혁을 토대로 한 성장력이란 점에서 이른바 성장주의자들의 논리와는 좀 다르다.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도 “몸이 허약해진 사람에게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주사 몇 대로, 영양제 몇 대로 당장 일으켜 세워서 걸어라 뛰라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착실하게 우리의 장기적인 잠재성장력을 키우고 지속적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다지는 일에 노력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세 번째 토끼는 ‘지속적인 개혁 추진’이다. 첫째와 둘째가 ‘집토끼’라면 세째는 ‘산토끼’ 또는 ‘들토끼’다. 이 전문가는 “세 마리의 토끼가 화동하는 게 결코 쉽지 않고, 혹 모순적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를 결합시키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담화에서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에게 불리한 정책을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위기를 확대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서도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읽힌다.
◆어떻게 잡을 것인가
상호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는 경제정책을 하나로 엮는 해법은 두 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 직접 ‘경제 총감독’으로서 뛰어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론자와 안정론자, 개혁론자들을 내각 등에 골고루 기용해 궁극적인 합일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서로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갖는 이들의 정책을 하나로 통합해내는 것은 노 대통령의 책무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챙기기’다. 여권의 한 핵심 경제통은 이와 관련, “복권 이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를 요약하라면 한마디로 정치는 뒤로 한 발, 경제는 앞으로 한 발 이동”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속내야 어떻든 간에 노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서 이를 지휘감독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대신 경제와 민생 챙기기 최전선에서 독려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오후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부처 장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헌재 기각 결정 이후 처음 경제상황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경제총감독’으로서의 자신을 내보이려는 측면이 강하다.
노 대통령은 정책기조와 관련, ‘성장과 시장개혁 병행 원칙’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24일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와, 25일엔 대기업 총수를 포함한 대기업 CEO와 각각 연쇄회동을 하는 등 경제불안심리를 다잡기 위한 적극행보를 계속한다.
노 대통령의 직접 챙기기로 밑에서의 의견 불일치나 티격태격은 사소한 일이 되고 말았다. 경제인력 운용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기본 컨셉트는 ‘무지개론’이다. 성장론자와 분배론자, 안정론자와 개혁론자를 청와대와 경제부처에 골고루 배치해 조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정책통은 “성장과 안정을 주요 가치로 여기는 이헌재 경제팀과 개혁과 분배를 중시해온 일부 각료 및 대통령 경제 참모의 공존은 이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의 절묘한 경제 운영 구상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경제개혁론을 설파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헌재 부총리 사이에 미묘한 시각차가 있다는 것은 호사가들의 평가다. 이 부총리는 지난 16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린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현 단계에서는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만큼 경제정책 기조를 ‘분배’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노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마인드에 반기를 든 것, 또는 제동을 건 것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이는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경제각료나 핵심 참모들이 노 대통령에게 재벌에 굴복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쪽에 지속적으로 경제 관련 조언을 하는 한 경제 전문가는 “정부가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기진작과 일부 재벌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요구를 혼동하거나 재벌들에게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종종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양자 또는 삼자의 주장이 모두 나오는 상황을 오히려 활용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청와대 유폐’ 기간 동안 성장론과 분배론, 안정론과 개혁론에 대한 스터디를 이미 끝냈으며, 이제 노 대통령에겐 각기 다른 성향과 정책들을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적시에 응용하는 일만 남았다”고 밝혔다. 다만 노 대통령의 경제개혁은 기존과는 다르게 “오늘부터 개혁하겠다”는 식의 큰소리치는 일 없이 차분하고도 조용히, 그리고 소문나지 않게 추진하려 한다는 점이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허소향 언론인